전출처 : 생각하는 너부리 > 시작이 있으면 끝이,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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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준비는 되어 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에쿠니 카오리가 이번에는 헤어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좀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한때 사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아무 느낌도 느낄 수 없"게 되는 '정떨어짐'을 이야기 하고 있다. 늘 사랑의 시작과 사랑의 진행에 대해 말해왔기 때문에 이번 책은 읽으면서 마음이 좀 허전하고, 갑자기 현실로 확 끌어당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설속의 남자는 참으로 자상하고 부드럽지 않았던가, 소설속의 여자는 참으로 아름답고 애틋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않을 듯이 보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런 사랑도 있을거야 위안받고 부러워했는데.
그런데 그녀는 소설속에서까지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랑의 변색을 소설속에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 사랑이 끝난 사람들은 참 메마르고 삶이 무의미해 보인다. 여자는 이제까지 함께 살아온 남편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고, 늘 뻔한 말다툼과 화해가 반복될 뿐 도무지 전진이라곤 없다. 언젠가 사랑이 끝날 것임을 예견하고 있기에 행복한 지금 이순간처럼 내내 이대로이길 간절히 바란다. 이혼하기로 합의한 상태에서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시댁을 찾은 아내는 평소에도 좋지 않았던 시댁식구가 한층 지겨워진다. 돈독한 가족의 행복한 아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여자는 그러나 백화점에서 가족들의 물건을, 레스토랑에서 가족들의 도시락을 사서 묵직하게 들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가장하고 있을 뿐이다.
소설속의 주인공들처럼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지 우리들 스스로도 사랑에는 끝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영원한 사랑 따윈 어렵다는 거 잘 알고 있기에 우리가 영원한 사랑을 흠모하는거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조금 기운 빠지지만 사랑의 끝을 잠잠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겠다. 최소한 스스로를 속이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 아니라고 아니라고 부정하다 보면 더 헤어날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해버릴테니까.
다행인건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사랑에 끝이 있으면 또 다른 사랑이 시작될 수도 있겠지. 어쩌면 영원한 사랑이란건 그런게 될 수도 있겠다. 하나의 사랑이 끝나면 다음 사랑이 시작되어 영원히 여러가지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 거. 사랑이 많은 사람일수록 사랑없이는 못산다고 하니 굳이 한 사람과의 영원한 사랑을 꿈꾸기 보다는 늘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편이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