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원고 마감일을 일주일이나 넘겨버리고 있었다.

주말, 24시간의 하루, 낮과 밤 따위의 의미는
나 같은 족속에겐 별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이것은 몹시 불행하거나 그것의 반대일 것이다.

종지부가 어느 때쯤이면 찍히겠거니 하는 막연함만이라도 있다라면
구토 직전의 울렁임이 머리속에서 나를 그토록 멍하게 만들어 놓진 못했을 것이다.

그런 그 때였다.
그들은 진흙탕에서 나를 끌어내 듯,
그러면서 그런 나를 술 자리에 메뉴판처럼 내놓는 것을
전쟁판의 훈장처럼 여기고 있는 거였다.

"너는 실패한 인생이야"
"왜 되돌아왔니, 응?"

한 방 날리고만 싶었다.
그 녀석, 나 보다 두어살 더 먹었지만
너무 여려 보이던 인생이었다.
한 때 장애인였던 그가 지금 이렇게
자신에 대해 자만하고 있는 꼴을 보자니,
역한 비린내만 전해왔다.

연구실에 돌아와서
나는 그 녀석을 조롱하는 후배 녀석들의
혓바닥을 청소하고 있었다.
제길, 이런 건 아니었는데...


후배들을 쫒아 버리고,
혼자 남았다.
흠흠, 자유인가?
하지만
다이어리 속에 난 갖혀 있다.

또 내일이다.
또 내일 ...

 
 
   



사진과 글 |  김여흔
노래 |  김현식[가리워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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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2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ika 2004-07-12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첩 가득 빡빡한 일정속에서 또 다시 찾아올 내일의 바쁜 일정을 엿보고, 색색의 글씨에 여흔님의 깔끔함을 느껴봅니다. 오늘도 좋은 음악 선사해주시는군요...^^

김여흔 2004-07-1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카님,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그죠?
하루 하루, 할 일이 있다는 건, 참 즐거운 기분을 만들게 하는 것 같아요.
비록 일 속에 묻혀 있을 땐 벗어나고 싶기도 하지만요.
무더위가 찾아온다네요. 이 여름 건강 조심하시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