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화씨님께서 2003-09-24일에 작성하신 "2003. 9. 23. 화요일 - 깊고 푸른 밤, 하늘가득 별은 빛나고"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아침나절 예정대로 교육장을 청소했다. 마른걸레로 복도 마루를 밀며 먼지를 털어냈다. 청소를 하며 뒤를 돌아보면 마음이 개운해진다. 청소를 하면 마술을 거는 듯 걸레가 닿는 곳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무엇이건 손과 마음이 부지런히 닿지 않고는 빛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구나 살림살이를 보면 살림하는 아낙의 솜씨를 대충 알 수가 있다. 바지런한 아낙의 집기는 늘 빛이 나지만 게으른 아낙의 살림살이에서는 늘 퀴퀴한 먼지가 날린다. 손길이 닿는 곳마다 빛이 나는 사람이 있고, 손끝이 닿는 곳마다 부서지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속내가 겉으로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세상을 빛나게 하는 손을 가져야 할지니... 스스로 아름답게 살 수 있어야 가능하리라.

학교 마당에는 잔디가 심어져 있다. 올 봄에 족구장을 빼고는 넓은 마당에 모두 잔디를 심었는데 잘 정착했다. 줄을 맞추어 심어진 잔디는 남은 공간으로 팔을 뻗고 있다. 내년쯤이면 운동장을 전부 덮을 듯 하다. 웃자란 놈들을 낫으로는 베기가 어려웠다. 박 선생이 창고에서 잔디 깎는 기계를 가져왔다. 창고에는 없는 것이 없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모든 것이 다 나온다. 일부는 황토방 뒤에 쌓아놓은 나무를 정리해서 자르고 일부는 하교 주변의 잡초를 뽑았다. 낫으로 베고 손으로 뽑으며 학교는 점점 깨끗해졌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갈 무렵 양복을 입은 사람 둘이 찾아 왔다. 뺀질뺀질한 일로 평생을 살아 왔을 듯 한 전형적인 공무원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다. 박 선생 대신 기계를 잡았다. 일은 수월하지만 소란스런 기계음과 석유냄새가 반갑지 않다. 그래도 말끔하게 정리된 운동장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저녁을 먹고 작은 방에 불을 넣었다. 아궁이 앞에 앉은 짚씨는 이제 불 때는 일에 재미를 붙인 모양이다. 불길이 이젠 제법 잘 들인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주변에 지저분한 것을 태우고 싶어졌다. 아궁이 주변에 있는 쓰레기와 젖은 신문을 태웠다. 마지막 비질로 주변의 찌꺼기마저 몰아넣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그런 과정에서 손바닥에 가시가 들었다. 불을 다 들이고 사무실에 내려와 사과씨가 손에 든 가시를 빼주었다. 올리브씨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소독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 고맙다.

저녁 9시가 넘어서 불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밤낚시를 가잔다. 마다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이건 기회가 있을 때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마침 준기 씨가 시간이 있어서 함께 가기로 했다. 불씨와 준기 씨, 그리고 나만 슬쩍 갔다 올까 하다가 알리지 않고 가면 서운하다는 소리를 들을 듯 했다. 함께 가자고 했더니 여러 명이 동조했다. 홀씨, 불씨, 사과씨, 올리브씨, 짚씨, 준기 씨까지 모두 7명이다. 부득이 차를 2대 가지고 가야 했다. 도구를 챙겨 천천 야영장에 도착했다. 불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두움이다. 정말 오랜만에 이런 어둠을 접한다. 구름한점 없는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진다.

도시의 불빛도 없어서 주변을 둘러싼 산과 하늘에 경계가 없다. 산이 하늘이고 물이 하늘로 혼연 일체가 된 어둠이 머리 위에서만 별빛을 쏟아 내리고 있다. 모래 벌을 지나 자갈이 그득한 강가에 자리를 잡고 모닥불을 피웠다. 적막한 어둠 속에서 별을 그득히 이마에 얹고 밤낚시를 해 보는 일은 처음이다. 오기를 잘했다고 다들 말을 보탠다. 밤이 깊어갈수록 별은 선명해지고 여기저기서 고기를 낚았다는 얘기가 들린다. 빠가사리가 많은 물인 듯 하다. 전부 빠가사리만 잡힌다. 다들 출출한지 라면 타령을 한다. 준비해온 물에 라면을 끓였다. 이런 분위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또한 술이지 않은가? 대포알 한발을 터뜨리니 새벽 1시가 되었다. 주변을 정리하고 물가를 떠나려니 다들 아쉬운지 더 추워지기 전에 한번 더 오자고들 한다. 후일을 기약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대포알 한방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사과씨가 2차대전을 일으키자고 부추긴다.

집에 도착하니 남은 사람들은 다들 잠이 들었는지 불이 꺼져있다. 조용히 부엌문을 열고 2차대전을 시작했다. 오랜 얘기로 밤은 깊어가고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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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5 2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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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15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씨네 이야기를 읽다보면, 항상 서로를 배려하는 풀씨 식구들의 예쁜 모습을 훈훈히 느낄 수 있어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이고 하는 밤 낚시....그 뒤에 이어지는 대포 두 방....
어둠이 짙어가는만큼 영글어가는 풀씨 식구들 간의 정.... ^^

김여흔 2004-05-15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풀씨네 모임 있는 날인데 못갔네요. 홍화씨는 동강에 가셨다는데 일을 잘 된 건지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