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중심 미술사에 새로운 관점 제시
     
국제갤러리 3인 외국여성 작가전

오김승원 기자
2004-04-04 23:20:43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3명의 외국 여성작가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그들은 각각 이란과 이집트, 미국 출신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세 작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과 사회, 정치적인 관심을 표현해내고 있다.

이란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공부하고 활동 중인 쉬라제 후쉬아리(Shirazeh Houshiary)의 작품은 희미한 화면을 통해 깊이 있는 공간감을 획득한다. 멀리서 보면 구성된 공간 속으로 깊이감을 형성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세밀한 터치로 메꿔진 직조물처럼 보인다. 캔버스는 천으로 보이기도 하고, 너무 세밀하고 자연스러워 어떤 물성조차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물성이라는 개념과의 충돌이 다시금 물질이라는 것을 환기시키는 작용을 한다.

캔버스라는 화면과 메꿔가는 내용물의 혼합, 그 혼합이 절정에 이르면 공간감이 생겨난다. 그의 작업은 기록해가는 의미를 상실하지 않고 보존하면서 형태와 물질이라는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의미와 물질이 한데 어우러지는 다음 단계에서 그녀가 직조한 시간과 분위기가 새롭게 창조되고 있다. 이렇게 직조된 공간과 시간은 그녀가 만든, 자유롭지만 비현실적인 세계다.

그래서인지 서구의 미니멀리즘보다는 종교적인 색채가 더 강하다. 종교적인 명상의 세계, 뚜렷한 경계나 확고한 대상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희미한 공간감은 은연중에 피부에 스며들듯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세계관은 지배와 억압이 주가 되는 남성 위주의 현실세계를 벗어나 있는 동시에 어떤 대상에 대한 관찰에서도 한 뼘 물러나 있다. 그는 다른 세계를 직조하고 있다.


 

후쉬아리의 작품이 물성에 기초한 추상성을 획득하고 있다면 수 윌리암스(Sue Williams)의 작품은 보다 직접적이고 상징적이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활동하고 있는 작가다. 그의 작품생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추상화라는 환상에 저항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상을 넘어 계획하고, 그만의 방식을 화면에 풀어내고 있다. 지금까지 서구의 추상화는 정의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발현이나, 인간의 의지를 뛰어넘는 어떤 힘의 작용을 통해 폭로된다고 여겨져 왔다. 그의 추상화는 그에 비하면 훨씬 영리하다.

그의 작업은 인간의 육체를 그려낸다. 그러나 육체들은 각기 조각조각 흩어져 넓게 배열된다. 어떤 하나도 다른 것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채, 마치 넓게 대지에 퍼져있는 식물의 잎과 뿌리를 보는 것과 같이 화면 전면에 풀어헤쳐져 있다. 그가 사용한 형광의 색들은 성이라는 주제를 보다 가볍게 만들기도 하고 인간의 것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가 표현해 놓은 형태들은 자연스럽지만 가장 자연스럽지 않기도 하다. 마치 카툰풍의 선처럼 정확하게 매끄러운 선들은 성이라는 주제를 인간에게서 떼어내어 대량생산된 어떤 것, 조작된 어떤 것, 틀에 끼워졌다 뜯어낸 후 달콤하게 포장된 상품이라고 폭로한다. 그에게 있어 성의 문제는 과거 서구 남성화가들의 전례처럼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욕망의 발현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이집트에서 태어나 미국과 프랑스에서 공부한 후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다 아메르(Ghada Amer)의 작품들을 보자. 그는 스스로 병을 치유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왔고, 그림이 그 자신의 삶을 구원했다고 말한다. 그는 캔버스 천에 실로 박음질을 해 추상적인 선들을 만들어내고, 표면에는 아크릴물감으로 자유로운 형태들을 그려 넣고 있다. 박음질된 선들은 화면에 칠해진 색들로 인해 입체물처럼 그림 앞에 놓여있다.

그는 바느질이라는, 지금까지 여성 고유의 일로 여겨진 작업을 캔버스에 행함으로써 캔버스를 보다 일상으로 끌어들인다. 화면은 밝고 경쾌하며, 견고하고, 짜여져 있다기보다는 흩어져 있고 느슨하다. 박음질은 자유로우며 캔버스 천과 그 어떤 것보다도 잘 어울린다. 그는 그림이라는 행위가 갖는 피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억압을 자유로운 박음질 선으로 부수어낸다. 그의 박음질은 캔버스를 메꾸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반대로 물감으로 채워진 캔버스를 갈라내고 통과함으로써 그 화면에 저항하기도 하는 것이다.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 3.17~4.23

출처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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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4-0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두번째 그림, 맘에 들어요.^^

김여흔 2004-04-09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