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화씨님께서 2003-09-21일에 작성하신 "2003. 9. 21. 일요일 - 쨍그랑 깨지는 가을하늘, 허수아비 만들기"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아침. 흙으로 어설프게 만든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느라 쪼그려 앉았다. 찍찍찍 귀뚜라미가 울다가 도망간다. 동네는 온통 적막하다. 문득 맑은 소리가 들린다. 교회에서 울리는 차임벨 소리다. 도시에서는 소음이라고 틀지 못하는 저 소리를 시골에서는 마음 놓고 울릴 수 있는 모양이다. 조용하게 들리는 차임벨 소리가 오랜만이라 너무 반갑다. 할머니들이 마을길을 함께 내려가는지 갑자기 길이 소란스럽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소리로 짐작을 할 수 있는 할머니들의 소리는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우리 생을 관통하는 본질적인 힘이 과연 무엇일까? ‘울림’이리라는 짐작이 할머니들의 소리로 인해 느껴진다. 한 울림으로 와서 울림으로 살다가 울림을 어딘가에 남기고 우리는 떠나는 것이 아닐까? 화장실에 앉아서 별 생각을 다한다.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면 마음이 편하다.

마을을 방문한 손님들과 함께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나무에 짚을 붙이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혔다. 얼굴을 만들고 백일홍으로 눈을, 고추로 입을, 맥문동 꽃으로 코를 만들었다. 그 위에 자연보호라고 새겨진 모자도 씌웠다. 각자 만든 허수아비를 학교 입구에 세우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은 제 손으로는 처음 만들어 보는 허수아비를 끌어안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수연이와 지호가 보고 싶어진다. 어른들도 즐거워한다.

허수아비 만들기가 끝나고 어른들은 족구를 했다. 풀씨네가 한 팀, 방문한 아빠들이 한 팀을 이루었다. 족구를 하는 중에 이 지역 출신 국회의원 정세균 씨가 찾아왔다. 가까운 곳에 왔다가 잠시 들렀다는 그이와 인사를 하고 박천창 씨가 풀씨네를 소개했다. 오늘은 다른 일정이 많으니 다음에 정식으로 자리를 함께 하자는 약속을 하고 정세균 씨가 떠났다. 마무리하지 못한 게임을 위해 다시 뭉쳤다.

저녁은 재철 씨가 내겠단다. 재철 씨는 우리보다 먼저 능길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못하는 일이 없다. 농장에 있는 집을 고쳐서 짐을 들였는데 집들이 겸 저녁을 내겠다는 것이다. 저녁 식사는 준비하지 않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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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03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전 오지 여행을 하고픈데요. 그놈에 화장실에 대한 낯가림(?)이 심하여, 웬만한 민박에서조차도 짐을 풀지 못 해요...근데 언제나 자연의 일부같은 홍화 씨의 글을 읽으니 용기내어 재래식 변소에 앉아 해우하는 기분도 괜찮겠다 싶네요. ㅋ
글고 여러 분이 함께 만들었다는 허수아비도 보고 싶네요. 글고 그렇게 예쁜 허수아비가 어찌 참새를 쫓을 수나 있었을까 궁금키도 하구요. ㅋㅋ

김여흔 2004-03-04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생태화장실(퍼머컬쳐식)이라 해서 냄새도 없고 친환경적인 설계를 할 수 있다고 해요.풀씨네에도 건축을 전공한 도시처녀가 있죠. 처음엔 과연 저 사람이 저런 뒷간에서 볼 일을 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잘도 들락거리든데요. ^^ 음, 허수아비, 옛날 참새들은 자신보다 큰 무엇이 팔을 쫙 벌리고 있는 꼴을 보고는 지레 겁을 먹고 경계를 했다하네요. 21세기 참새들은 허수아비를 같잖게 생각한다죠. 그저 도시아이들을 대상으로 생태나 농촌체험, 교육 차원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