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문화연구에 있어 문화유물론의 의미
문화유물론의 이론적 전개 현대문화론선 19
앤드류 밀너 지음, 박거용 옮김 / 현대미학사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1.
1990년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의 지식사회는 '현장'과 '현장성'을 잃었다. 서구에서 이식된 이론의 탈피를 주장하고, 실제로도 그에 부응하는 일정한 움직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같은 주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론 중 하나가 역시 서구는 아니더라도 다분히 서구적인 '탈식민이론'이라는 것이 아이러니이긴 하다. 어쨌든 탈식민의 가장 구체적인 실천방법은 액면 그대로의 '민중 속으로(v narod)'일 테지만 구체적인 현장 없는 '민중 속으로'란 말만큼 추상적인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1980년대 민중운동의 퇴조 이후 문화 혹은 문화운동은 실천적인 담론으로 수렴되기 보다는 민중운동, 변혁운동의 현장을 상실한 운동가들의 새로운 발판이 되었다. 좋게 말해서 발판이지 나쁘게 말하면 퇴기들의 집합소가 된 셈이다.

어쨌거나 당대를 이끌었던 '과학적 유물론'의 퇴조 혹은 한계상황의 수렴을 이룬 여러 분야의 운동 가운데 하나가 문화운동, 문화연구였던 것이다. 영국에서 출발한 문화연구가 언제나 현장성을 강조해온 것 역시 이것이 하나의 학문적 체제 안에 포용되기 보단 그것을 포월하고자 했던 것이 당대 문화연구자들의 이상이었을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 체제의 부르주아 사회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피할 수 없는 딜레마에 대해 고민했다. 이 딜레마는 뤼시엥 골드만이 루카치의 개념을 적용하여 소설을 "문제적 인물이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방식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서사"라고 정의 내리는 것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

승리를 향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사적 전진은 특수한 성질을 갖는 과정인바, 그 특수성은 역사상 최초로 인민대중 자신이 모든 지배계급에 맞서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이 의지는 현존하는 사회를 넘어서, 그 외부에서만 실현될 수 있는 반면, 기존 질서와의 일상적인 투쟁 속에서만, 즉 기존 질서의 틀 내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로자의 말은 체제개혁이든 혹은 체제변혁운동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근본적 딜레마, '부르주아 사회에서 부르주아와 투쟁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부르주아적인 형식에 기댈 수밖에 없다'에 대해 말한다. 1980년대 변혁운동의 근본적인 쇠퇴에 대한 외부적 요인은 세계체제의 변화 등 다양한 부분에서 찾을 수 있으나 이후 운동의 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사실 위에서 인용한 로자의 말에서 찾아야 한다.

2.
불행히도 아직까지 한국에서의 문화연구는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만큼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뜻이고, 그 개념이 일반인에게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문화유물론"이란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해서도 이와 같은 절차들이 요구된다. 문화유물론을 거칠게 정의하자면 문화연구의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이미 수차례 전술한 적이 있는 것처럼 문화연구란 영국의 좌파 문학비평가였던 레이몬드 윌리엄스(R. Williams)가 소련에서 스탈린주의와 동구침공 등의 역사적 상황과 1960~70년대 영국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인간의 자기실현 가능성(해방)을 제약하는 강력한 힘(권력), 통제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출발한 것이다.

그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이같은 억압적 구조를 완벽하게 재생산하며 진화해나가는 삶의 총체적 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를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자신의 문학이론에 있어 초기 이론적 자양분 역할을 했던 마르크시즘을 통해 자신의 시대 상황을 분석하고, 대안을 도출할 수 있는 문화이론으로서 제기한 것이 문화유물론(Cultural Materialism)이다. 문화유물론은 마르크스의 '생산' 개념을 문화에 부여한다. 문화는 문화적 의미 생산의 공간이며, 억압적 구조가 재생산되는 의미 생산의 원천이고, 다시 이를 거부하고 새로운 대안적 삶의 양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다. 마르크스의 주장 가운데 가장 의미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 논란의 요소는 이른바 '경제결정론'이다. 누구나 들어보았음직한 이야기들, '인간의 의식, 관념, 세계관은 물질적 토대에 의해 결정된다'사실 이 명제는 오늘날 마르크스주의를 비난하는데 있어 가장 유용한 부분이지만, 동시에 마르크스가 인문학 영역에 는 물질적 토대에 의해 상부구조가 결정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가장 크게 기여한 부분이기도 하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그를 가장 중요한 이론가로 자리매김하는 원천이다.(나 같은 사람은 지금까지도 '이 말이 근본적으로 뭐가 틀렸는데?' 라고 생각한다. 흐흐) 여기에 나의 생각(어쩌면 이건 나의 생각이 아닐지도 모른다)을 조금 곁들이면 마르크스의 주장,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말 자체가 틀렸다기 보다는 이것을 지나치게 굳은 개념으로 받아들인 이들, 혹은 상호적인 것이 아니라 고정된 것으로 오해하도록 만든 마르크스의 오류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잘 아다시피 마크르스가 말한 상부구조는 철학, 사상, 문화, 예술, 종교, 법, 제도 등 인간이 사유하는 방식, 문화행위 전반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와 같은 인간의 의식은 그 시대 생산양식을 반영한 것이란 말이다.

문화유물론이란 이때의 '반영'이란 개념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이를 해체하여 재구성한 이론이라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상부구조가 수동적이고, 정태적인 굳은 것이 아니라 생산양식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와같은 영향의 주고 받음을 통해 인간의 의식이 결정된다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R. 윌리엄스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명제를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명제로 전환시켰다. 그는 우리의 의식이 사회적 과정(실체적인 영역)을 통해 결정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삶을 만들어가고, 역사를 변화시켜가는 근본적인 추동력으로서 물적 토대를 인정했다.(말하면 말할수록 꼬인다는 생각도 있지만, 다시 말해 문화유물론에선 문화 - 언어, 사상, 예술, 체제, 경제, 이데올로기 등등 -를 이해할 때 물질적 실체를 가진 것으로 정의하고,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과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3.
문화연구는 스스로를 정의하는데 매우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 이유는 문화유물론이란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평소 우리가 매우 이질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문화와 유물론을 결합시키는 것처럼 영국의 문화비평 전통과 마르크스주의라는 매우 다른 두 가지 전통이 문화연구라는 한 지붕 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문 아닌 학문이 매력적인 까닭은 이것이 그간 학문적이든, 혹은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다른 어떤 영역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불편한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요새 유행하는 말을 빌어 '통섭'이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부분을 개별적으로 이해하고, 연구하고 있는데, 근본적인 부분에서 접근하자면 우리는 인간이 의미 생산을 통해 자기 실현을 해나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노동, 여성, 소수자, 생태 등 많은 영역의 운동들이 개별화되고, 파편화되어 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많지만 미립자처럼 분절되어 있는 이들 사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해낼 만한 영역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문화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연구는 스스로를 학문이 아닌 실천담론으로 규정하는 희한한 이론체계인데, 그 까닭은 문화연구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비판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와 실천행위로서의 문화(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 같은)에 양 다리를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앞의 이야기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딜레마는 오늘날 문화연구 영역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1990년대 초중반 우리 사회의 지식담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들은 요즘에도 가끔씩 TV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이른바 '문화평론가'라는 존재들이다. 1980년대 지나치게 정치적이어서 도리어 비정치적이었던 운동들이 퇴조하면서 '문화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던, 그들은 서태지와 오렌지족으로 상징되는 '신세대담론', '소비담론'의 주역들이었다. 크게 보았을 때 현재도 이 같은 흐름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1997년 IMF위기 이후 한 마리 제비가 되어 봄을 알렸던 철(?) 없는 문화평론가들은 그 겨울에 다 얼어죽어야 했지만, 상당수는 살아남아 아카데미의 품 안에 깃들었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문화연구에서 문화유물론을 빼면, 문화연구가 이데올로기적인 불온함을 상실하는 순간, 이에 대한 고민이 없는 문화연구는 다만 문화산업, 문화정책, 문화콘텐츠(그렇다고 이 영역들이 반드시 그렇다는 뜻은 아니지만)를 위한 도구, 무뇌아적 학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문화가 곧 정치다." 그것이 문화유물론의 기본 정신이기 때문이다.(다행히도 지난 겨울의 위기 이후 일부는 정신을 차렸고, 일부는 여전히 정신이 없다. 그러나 원래 학문의 세상이란 것도 바깥 세상과 그리 다를 바 없다.) 앤드류 밀너의 "문화유물론의 이론적 전개"는 이론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읽어내기 쉽지는 않겠지만 문화연구에 대한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 번쯤, 아니 두 번쯤 충분히 숙독해둘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는 문제는 어떻게 잃어버린 현장성을 되찾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과거의 운동이 '민중 속으로'였다면 오늘의 운동은 역으로 민중이 나에게 오도록 만들거나 아니면 내가 곧 민중인 상황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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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넘게 함께 살던 친구가 성남으로 이사를 갔다. 말 그대로 동고동락하던 사이였다. 나이는 찼지만 아직 공부하는 학생이라 책 이외에는 별반 짐이 없을 것 같더니만 이것저것 꺼내놓으니 한 살림이다. 며칠 전 흩어지는 것을 기정사실화 했을 때까지만 해도 무심했는데 꾸려 놓은 짐 보따리를 보니 왜 이렇게 처량하고 쓸쓸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녀석의 고향은 지방인데 형편이 넉넉지 않아 쉽게 방 한 칸 구할 사정이 못 되었다. 갖추고 덤벼도 억울하고 힘든 일이 넘쳐나는 서울살이가 하염없이 고달플 텐데 그 딱한 사정을 알면서도 떠나는 친구를 붙잡지 못하는 내 처지가 야속하기 짝이 없다. 집을 떠나야 하기로 결정이 된 이후로 가뜩이나 마른 몸이 더 패이고 바짝 타들어 가는 입술도 애써 못 본 척 했기 때문이다.


트럭에 짐을 싣고 떠나는 모습은 끝내 지켜보지 못했다. 떠나는 사람 짐이라도 몇 더미 날라주고 싶어 어떻게든 일을 미뤄보려고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두고두고 후회가 될 일이 분명하다. 연일 따뜻한 날이 이어지더니 오늘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추웠는지……


초라한 이사 짐을 실은 트럭의 앞좌석에 앉아본 사람은 안다. 자신의 삶이 떠밀려 가는 고단함과 스쳐가는 낯선 풍경이 던져주는 불안함을. 온갖 상념들이 왜 이렇게 결연하게 느껴지는지를. 길을 잘못 든 것만 같은 낭패감과 속절없이 무너지는 청춘의 서러움을.  


얹혀산다고 까다로운 내 성정도 묵묵히 다 견뎌 준 친구의 고마움을 언제쯤 절실하게 깨닫게 될까.


몸이 멀어졌지만 마음만은 멀지 않길 간절히 바랄밖에.


친구여! 잘 살거라. 부디 건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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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2-12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소이부답님의 마음 친구분이 아실 것 같은데요. 소중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고이 간직한 체 아마도 친구분이 이사하셨을 듯 하네요. 두분의 우정이 서로를 감싸주는 고운마음이 부럽기만 합니다. 두분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마노아 2007-02-12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분이 이사하셨는데 소이부답님의 심회가 이사하는 사람 못지 않습니다. 채 표현하지 못한 마음도 친구분은 이미 아셨을 것 같아요. 새 터전에서는 고단함이 바래어지길 바래봅니다.

이게다예요 2007-02-1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찡하네요. 예전에 친구 자취방에 얹혀살았던 기억도 떠오르고...
같이 공부했던 친구가 저때문에 상처받으며 떠났다고 5년도 훨씬 넘은 일을 얼마전에 울면서 고백해서 아주 당황스러웠던 기억까지 다시 떠오르네요. 참..

나비80 2007-02-14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며시 지나갔으면 하는 일들이 있는데 사람 사는게 참 쉽지 않네요.
아직 어른이 못되어 그런 모양입니다. 마음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몇 주 전부터 금요일에는 공교롭게 일이 없어 쉬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은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게 보통이다. 미뤄둔 책도 끌어당기고 더러 TV도 보면서 소일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휴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날은 으레 전화가 없기 마련인데(사실 걸려온 전화도 고의적으로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난 금요일에는 모두 합쳐 세 통의 수신을 치렀다(?).


첫 번째 통화는 가족 여행 차 2주 동안 중국에 다녀오신 선생님이 점심이나 들자며 불러내는 내용이었다. 무슨 바람이 나서 점심까지 사주신다고 부러 불러내시나 했더니 중국가기 직전에 선생님이 연구 논문을 쓰실 때 자료 조사와 허드렛일을 몇 차례 도와드렸던 게 못내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사실 그 일이 연구원 보조금이 어느 정도 지원이 되는 사업이어서 나도 의무감 반, 아르바이트 하는 마음 반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내가 그러모은 자료가 시원찮았는지 아니면 중간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연구원 보조금이 출납이 안 돼 나는 그저 손을 털고 일어나야했다. 약간의 아쉬운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그런 사정 쯤 이해 못할 것도 없어 기억에서도 지워두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내내 마음이 쓰인 모양이었다.

덕분에 성북동인지 삼청동인지 모르겠지만 한 상 반듯하게 나오는 식당에서 정식을 얻어먹었다. 선생님은 밥을 먹으며 여행 다녀오신 이야기를 이것저것 늘어놓으셨고 나는 곁에서 추임새나 몇 마디 거들며 낯선(?) 음식들을 바지런히 집어 먹었다. 밥을 먹고 난 뒤 선생님은 예고도 없이 나를 차를 태워 서울산성 꼭대기까지 데리고 올라가 자판기 커피가 아닌 노점에서 아주머니들이 좌판을 차려놓고 파는 커피까지 사주셨다. 아까 한정식 집 차림표에 ‘찌개’가 ‘찌게’로 잘못 적혀있었다는 둥 당신은 학기보다 방학이 훨씬 더 좋다는 다 알만한 말씀도 싱긋싱긋 웃으며 건네는 둥 그럭저럭 괜찮은 점심 풍경이었다.


두 번째 통화는 예전에 내가 잠깐 가르쳤던 학생이었다. 모르는 번호였다면 받질 않았을 텐데 예전에 내 전화기를 가져가 이것저것 눌러대더니 그때 자기 전화번호를 저장해 놓았던 모양이었다. ‘천재지아ㅋ’라는 수신자가 화면에 뜨는 걸 보고 뜬금없었지만 반갑게 받았다. 아이는 곧 설인데 잘 지내시느냐는 기특한 말을 건네왔다. 그예 나도 이제 고3이 되어 한참 힘들 것 같아 "공부 열심히 하고 힘내"라는 다소 뻔한 말을 하던 참이었다. 내가 연이어 “지금 학원 다니고 있니?”라고 묻자 아이는 눈치 챌 만큼 목소리가 흔들렸다. 실수였다.

가르치면서도 흐뭇한 마음이 들 정도로 영특한 아이였고 명민했는데 집안 사정이 안 좋아져 전에 다니던 학원도 그만둘 정도였단 걸 깜빡 잊고 있었다. 천성이 밝은 아이였지만 넉넉하던 집안이 갑자기 스러져 요즘 아이로서는 어울리지도 않는 장녀 노릇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이는 큰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을게 분명했다.

“학원은 다니지 않는데... 방학 보충수업 비가... 굉장히... 비싸요. 논술만 해도 한 달에... 20만원이고 몇 과목 더... 들으면 웬만한... 학원비와 맞먹는 걸요.” 라는 짧은 문장 속에 몇 번의 침묵과 훌쩍거림이 섞여들었다. 공부도 잘해 집은 강남이 아니었지만 학교는 강남 사립고를 다니고 있었다. 잘 알지 못하지만 강남 쪽은 학교 보충수업비도 만만찮은 모양이었다.

그 전날 나는 희한하게도 우는 꿈을 꾸었다. 처음이었다. 원래 꿈을 잘 꾸지 않는데다가 그날은 꿈속에서도 이게 꿈이라는 건 알겠는데(나는 간혹 꾸는 꿈 속에서도 ‘이건 꿈이야’라고 인지한다) 내가 왜 우는 줄을 모르겠는 거다. 꿈 값 치고는 뼈아픈 전화였다.     


세 번째 통화의 수신자는 ‘울지말고강해져’였다. 나는 ‘레터링’이라는 이동통신사의 무료서비스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건 내가 저장해 놓은 이름이 아닌 발신자가 정해놓은 이름이 화면에 뜨기 때문이다. 자주 통화를 하는 사이면 금방 누군지 알겠지만 낯선 레터링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일례로 짓궂은 친구 녀석의 레터링은 ‘노량진경찰서’였다. 

여자 후배였는데 대뜸 하는 일이 고되다는 푸념이었다. 원래 그런 내색을 잘 하지 않는 녀석이었던 데다가 사실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나눌 만큼 그 후배에게 나란 존재가 앞 차례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오죽이나 했으면 나한테까지 전화를 꾹꾹 눌렀겠냐는 생각을 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커졌다. 일이 힘들고 사는 것 자체가 두려운 사람이 한 둘이겠냐 마는 곁의 사람들만은 나쁜 것들이 조금 비껴갔으면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울지말고강해져’라는 문구 속에는 더 많은 말들이 숨어있을 것이다. 그 말을 적어 넣기 까지 겪었을 수많은 고초를 헤아려 보니 ‘레터링’을 덮어놓고 싫어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자신의 심사를 명료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것도 없겠다.


밥과 꿈과 일에 관련된 전화 세 통 덕분에 모처럼 쉬는 금요일 하루를 말끔하게 소진해버리고 말았다. 팔과 다리가 부러지면 병원에 가듯 마음이 패이면 전화 통화가 약이 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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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7-02-10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부답님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네요.
그래도 레터링은 참 곤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나비80 2007-02-10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심한 맛이겠지요^^

짱꿀라 2007-02-11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아주 친근감 있게 저에게 다가옵니다. 잘 읽었습니다. 역시 글을 쓰시는 분이라서..... 저는 오늘 보문산성 답사를 갔다가 저녁 9시쯤에 들어왔습니다. 오랫만에 큰 지역을 돌고 와서 그런지 힘이 드네요. 주말 잘 보내시고요.

나비80 2007-02-11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 답사는 한 나절쯤 걸리시더니 오늘은 많이 늦어지셨군요.
날씨도 추웠는데 고생스러우셨겠습니다.
그래도 고깟 추위가 산타님의 눈과 마음의 뿌듯함을 당해낼리 있겠습니까.^^

마노아 2007-02-11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갈한 느낌이 드는 글이었어요. 제 마음도 차분하게 정리가 되네요. 주말 잘 지내고 계시죠?

로드무비 2007-02-1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터링이란 게 있군요.
'울지 말고 강해져' 같은 제목은 좀 거시기하지만
재밌네요.^^

나비80 2007-02-11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님/ 저렇게 금요일을 보낸 대가로 지금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로드무비 님/ 역시 구세대시군요.ㅋㅋ 별게 다있답니다. 가장 최근에 본 엽기적 레터링은 어느 여성분의 '공주님의대화신청'이었습니다.
 
 전출처 : 기인 > 해방 후 한국 민중의 수난사에 대한 한 판의 씻김굿
백년여관
임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읽었던 혹은 읽어야했던 소설들이 광주의 5.18과 제주도의 4.3에 관한 소설들이었다. 선배들과 함께 세미나를 하면서, ‘국가’라는 것이 항상 우리 편(?)만은 아니라는 것에 큰 충격을 얻었고, 국가와 군인‘아저씨’야말로 가장 끔찍한 괴물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분노했고, 그 때부터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변해갔다. 어린 시절 외국에서 생활을 했고 고등학교는 강남에서 다녔을 뿐 아니라, 아버지가 경상도 출신이고 어머니는 충청도 출신이라서 나는 대학 새내기 시절까지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실존하는 것인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광주에 관한 소설과 책들을 읽고, 광주에 다녀온 이후 이러한 생각이 많이 변하게 되었다. 이는 실재였다. 이런저런 선거 때마다 도경계에 따라서 확연히 구별되는 당선 정당들. 그리고 이에는 뚜렷한 역사적 배경이 존재했다.


이렇게 세상을 보는 눈을 많이 변하게 해 준 소설 중 하나가 임철우의 <<봄날>>이다. 읽은 지 5년도 넘은 지금에야 읽었을 때의 충격 외에는 별반 기억나는 것이 없지만, ‘문학’이란 무엇이다라는 것에 대한 기존 내 생각들을 산산이 부서져 내리게 한 경험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고등학교 때는 나름 ‘문학소년’ 비슷한 존재라서, 시도 쓰고 소설도 꽤나 읽었다. 언젠가는 ‘내가 필요한 것은 나를 속여 줄 시나 소설 뿐’이라고 일기에 끄적인 적도 있다. 내가 문학은 나를 속여 줄, 지겨운 일상을 잊게 해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임철우의 소설은 어떠한가, 또 박완서의 전쟁 관련 소설들, 방현석의 소설은? 이는 끊임없이 ‘망각’에 저항하고, ‘현실’을 점유하려는 지배 해석들에 저항한다. 그들은 잊혀지면 안되는 과거에 대해서 고백하고, 그 과거를 잊으려는 사람들과 잊게 만드려는 지배 세력들에게 저항한다.


임철우가 <<봄날>> 이후에 쓴 이 소설 또한 한국전쟁, 제주도 4.3, 광주항쟁에 관한 기억에 대한 소설이다. 사람들은 시대가 변했다고 한다. 동구권의 몰락, 대학생 사회 운동진영들의 쇠퇴, 그리고 남한의 ‘민주화’. 임철우 또한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대한 자의식을 털어놓는다.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입을 빌어.


까놓고 말해서, 한국 소설은 역사나 정치에 대한 과도한 집착, 그 고질병이 문제야. 전쟁이니 분단 따위 민족 내부의 지엽적 소재만 가지고 지난 수십 년간 어지간히 우려먹었잖아. 외국 독자들한테 그런 시효 지난 케케묵은 소재 치켜들고 나가봤자 어디 씨알이나 먹힐 거 같아? 문학도 어차피 상품인데. (19면)


이에 대한 작가의 자의식.


시효? 유효기간이라고? 그 따위 폐품들을 이제 와서 어디에다 쓰겠느냐고? 야, 짜식들아. 함부로 지껄이지들 마. 세상엔 그것이 자신의 ‘전 생애’ 이거나 평생의 족쇄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어.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것이 끝내 벗겨낼 수 없는 굴레가 되어버린 사람들, 그래서 그 저주받은 시간에 사로잡혀 평생 유령처럼 살아가야만 하는 삶들 말이다. 그들은 지금도 이 땅 어디에나 있어. 너희들이 시효 지난 폐품이라고 부르는 그 시간들이야말로 바로 그들의 삶이고, 그들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과 감각의 구체적 실체야. 살아 있는 한, 고통이 여전히 지속되는 한, 그건 과거가 아니라 그들에겐 엄연한 현재야. (21-22면)


그렇다면, 문제는 이를 어떻게 ‘다시’ ‘새롭게’ 풀어나가느냐이다. 기존의 <<봄날>>을 뛰어넘어, 다른 여타의 역사적, 민족적 문제를 형상화한 기존 작품들을 일신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백민석은 알레고리와 폭력으로서 광주를 재현하고 (헤이, 우리 소풍간다), 심윤경은 소년의 성장과 통과의례의 배경으로서의 광주를 삽입하기도 한다(나의 아름다운 정원). 물론 임철우는 이들과 다르고,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는 전라도인이며, 광주항쟁 ‘속’에 있었음으로.


‘새로움’은 세대와 지역적 확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광주에 대한 기억과 정작 투쟁에는 참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소설가 ‘당신’(임철우의 자전적인 자아), 제주4.3 사건 때문에 일가족이 몰살당한 경험을 갖고 있는 강복수와 김요안, 베트남 전쟁에서 팔을 잃고 그 때 미군들이 살포했던 고엽제와 전쟁 때 살해 경험으로 괴로움을 겪는 문태, 그리고 한국전쟁 때 인민군과 ‘국군’ 사이의 처절한 보복에 의해 학살당한 일반 시민들을 내세워 이 소설은 ‘한국’의 역사를 일종의 상처의 구술사처럼 짜내려가고 있다. 이는 해방 후 한국 민중의 수난사를 생생하게 재구성할 수 있게 한다.


예전에 한 술자리에서, 1930년대 전라도 출생 남성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80년대 말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 한 분의 이야기였는데, 일제시대 초등교육을 받고, 청소년기에는 태평양전쟁과 병참기지화로 인해 고통을 받고 해방 후에는 좌우익의 싸움터에 휩싸이고, 분단 후에 조금 안정이 되나 싶으니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그 와중에 엄청난 고통을 받고 사람들을 불신하게 되고, 장년층이 되어 사회에서 한창 활동할 시기에는 광주 5.18이 터지고, 끝내는 한국을 등지게 되었다는 것.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그 분, 그 세대의 생각이 났다. 왜 우리가 끊임없이 그 기억들을 망각의 저편에서 떠올려야 하는지를, 왜 우리는 끊임없이 국가의 폭력이 일정 선을 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역사에서 밖에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세대적ㆍ지역적 확장을 통해, 해방 후 한국 민중의 아픔을 복원시키는데 성공했다. 소설의 말미에 이러한 아픔으로 인한 수천의 원혼들이 한 판 굿에 의해서 승천하게 된다. 이러한 씻김굿 배경 속에서의 개기월식과 검은 바다 이미지는 장관이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부자연스러운 대사를 너무 많이 하고, 결말의 화해도 너무 급작스러운 느낌이 든다. 물론, 임철우에게 이 소설은 한 판 씻김굿이 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결말 부분의 다음과 같은 말은, 조금 맥이 빠진다.


그래. 결코 지난 날들을 잊어서는 안 돼. 망각하는 자에게 미래는 존재하지 않아. 기억해. 기억해야만 해. 하지만 친구야. 그 기억 때문에 네 영혼을 피 흘리게 하지는 마. (336)


너무 구태의연하게 내가 사고하는 듯하지만, 임철우에게 개인을 넘어서는 전망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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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딸기 > 기다렸던 책.
테러 시대의 철학 - 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화 현대의 지성 120
지오반나 보라도리 지음, 손철성.김은주.김준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대형 테러가 났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회사에서 두 명의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에 부딪쳤다고, 큰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TV를 켰다. CNN방송은 아무 설명도 없는 채로, 불타오르고 있는 무역센터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죄로 부랴부랴 선배들에게 연락을 하고 회사로 달려가 호외를 만들었다.
그 뒤로 두달 동안은 정신이 없었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정신없이 외신을 들춰보고 기사를 '써제꼈던' 날들이었다. 나는 그때 임산부였고, 뱃속의 아이는 아마 태중에서 '테러'와 '전쟁'이라는 두 단어를 가장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 아이가 태어나 살아가야 할 '테러시대'라는 것에 대해 나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조지 W 부시가 선언한 대로 '테러와의 전쟁'은 계속됐고, 결국 이라크전이라는 고전적 의미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라크 파병논란, 김선일씨의 피살 등의 사건들을 '후일담'으로만 치부할 수 없듯이, '테러시대'는 이제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9.11 사건 이후로 나의 의식에는 여러가지 변화가 생겼다. 중동에 대한 관심은 전부터 있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공부 아닌 공부를 하게 됐고 이라크를 방문하게 됐다. 이후 3년 동안 내 머릿속에는 언제나 '중동' '이슬람'이라는 단어들이 맴돌았다. 신경과민증 혹은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머리와 마음으로 중동을 찾아 헤맸다. 중동 내지는 이슬람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다소 안목이 생긴 것도 있지만 언제나 머리가 '고팠다'고 할까, 항상 뭔가 결핍된 듯한 느낌이 있었다.

9.11 이 있은 직후에, 선배 한 분과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몇년 지나면 이 사건에 대해 역사적, 철학적인 분석들이 쏟아져나오겠지, 이 사건이 세계사에서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될지 궁금하다...
<테러시대의 철학>은 그런 의미에서,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런 책이었다. 미국 바싸르대학 교수라는 저자는 9.11 테러가 일어나고 두 달 뒤, 뉴욕에서 하버마스와 데리다를 각각 만나 인터뷰했다. 책은 두 사람과의 개별 인터뷰와 함께, 두 '석학'의 이야기를 풀어 설명해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하버마스, 데리다. 얼마나 저명한 '철학자들'인가!

하버마스의 이야기는 그닥 인상적이지 못했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것은 데리다와의 대화 부분이다. 두 사람의 인터뷰 스타일은 정반대였던 듯하다. 하버마스가 간결하게 '신사처럼' 얘기했다면, 데리다는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가운데에서 정곡을 찌르는 스타일이랄까. "9.11은 대사건이 되겠지요"라는 질문에, 데리다는 "무엇이 '대' '사건'인가"를 되묻는다. 9.11이라는 숫자들로 '명명'함으로써 이 사건을 반복해서 되뇌이게 만드는 동시에, 현재진행형인 테러/테러시대/테러시대를 불러온 모순들을 마치 '종결된 사건'인 양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데리다, 하면 생각나는 키워드는 뭐니뭐니 해도 '해체'다. (데리다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아무튼) 데리다는 우선 9.11 이라는 '이름'을 해체하고, '테러' 혹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말이 얼마나 모호한 것인지를 지적한다. 무엇이 공포(terror)인가. 이 '공포'의 원인은, 그것이 미래에 맞닿아있다는 점이다. 더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 이런 일은 언제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냉전이라는 최소한의 균형조차 깨어진 뒤에 찾아온 '팍스 아메리카나'. 9.11은 모두가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던 '미국'이라는 안전판을 강타하고 부숴버린 것이었고, 거기에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생겨난 것임을 지적한다.
데리다의 관점에서 보자면(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미국이 지목한 '테러리스트'들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생겨난 존재들이다. 데리다는 이를 특유의 '자가-면역' 논리로 해석한다. 스스로의 면역체계를 부수면서, 안에서부터 생겨난 병리학적 존재들.

테러와의 전쟁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는, 지금의 이라크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폭력적인 교조주의에서 근본주의자들 스스로가 해방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데리다라고 해법을 알까. 철학자에게 '현실적 해법'을 내오라고 주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의 문제의식으로 족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언제부터인가 '똘레랑스(관용)'라는 말이 유행을 했던 것 같은데, 재미난 것은 '관용'에 대한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정반대되는 평가다. 하버마스는 비록 '관용'이라는 말이 어떤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하더라도, '민주적인 사회'에서라면 그 한계가 다수의 뜻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정될 것이라면서 '관용'의 유효성을 높이 평가한다.
반면 데리다는 '관용'이라는 개념이 갖고 있는 기독교적 성격을 지적하는 동시에, 관용은 어디까지나 '문턱'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는 이러저러하지만, '너'의 행동도 이러저러한 수준까지는 봐줄 수 있다, 까놓고 말하면 관용은 그런 것 아니냐는 얘기다. '봐줄' 수 있는 한도, 그것이 관용이다. 관용이라는 개념에 반대하면서 데리다가 내놓는 것은 '환대'라는 개념이다. 네가 비록 이러저러할 지라도 나는 받아들인다- 보라도리는 데리다가 말한 '환대' 혹은 '초대'의 개념을 '용서'와 연결짓는다. 무조건적인 환대, 무조건적인 용서, 무조건적인 책임.
내 집에 누가 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손님을 환대한다면-- 반가운 손님이 올 수도 있고, 강도가 칼을 들고 들어와 나를 찌를 수도 있다. 환대는 나에게 엄청난 위험부담을 가져다주는 그런 개념이다. 관용을 넘어선 '완전한 환대'는 법적으로, 국제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데리다 역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불가능한'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한, 기존의 논리를 해체하고 새롭게 상상하지 않는 한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 해체주의자의 지적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지성을 대표하는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문제의식은 결국 '유럽' '계몽주의'의 문제를 향해 간다. 이성, 합리화, 이런 것들로 특징지어지는 계몽주의-근대화의 프로젝트를 포기해야할 것인가.
타리크 알리 같은 사람은 "9.11 이후에 변한 것이 과연 있는가" 라고 반문하면서, 9.11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평가절하한다. 과연 9.11은 어떤 사건이었나.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이 미-소 양극체제에 일격을 가한 사건이었다면, 냉전이 끝나고 10년만에 일어난 9.11은 미국 일극체제를 향해 폭탄을 터뜨린 사건이었다. 빈 라덴같은 근본주의자들은 미국을 '적'으로 명시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화에 반기를 들었다. 빈라덴의 선전포고를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화/계몽주의 시대에 대한 총체적 반대'로 해석할 수 있을까?

데리다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를 통칭해서 '아브라함적 종교'라 부른다. 하버마스는, 이 아브라함적 종교들 중에서 '구미'의 종교에 해당되는 기독교의 경우 근대에 이르러 '세속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유일신교 특유의 배타성과 폐쇄주의를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슬람교는 (여러가지 역사적, 경제적 원인이 있겠지만) 이같은 세속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상태에서 모순이 축적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지경(근본주의의 발흥)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성을 찾는 것, 합리화와 근대화(표현이 좀 이상하군)는 더더욱 계속해서 진행되어야 할 과제라고 본다. 이 부분에서는 데리다 또한 문제의식이 일치한다. 미국에 맞서는 (척하고 있는) 지금의 유럽에 한정해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에서 시작된 계몽주의의 이상'이라는 의미로 '유럽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책 말미에는 이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지난해 두 사람이 프랑스와 독일에서 동시에 발표한 '공동선언문'이 실려있다.

9.11의 의미와 계몽주의의 문제-- 이것은 너무나 거대한 이야기이기에, 하버마스와 데리다가 던진 짤막한 이야기는 그저 '분석의 시작'에 불과하다. 이런 분석작업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어갈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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