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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물론의 이론적 전개 현대문화론선 19
앤드류 밀너 지음, 박거용 옮김 / 현대미학사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1.
1990년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의 지식사회는 '현장'과 '현장성'을 잃었다. 서구에서 이식된 이론의 탈피를 주장하고, 실제로도 그에 부응하는 일정한 움직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같은 주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론 중 하나가 역시 서구는 아니더라도 다분히 서구적인 '탈식민이론'이라는 것이 아이러니이긴 하다. 어쨌든 탈식민의 가장 구체적인 실천방법은 액면 그대로의 '민중 속으로(v narod)'일 테지만 구체적인 현장 없는 '민중 속으로'란 말만큼 추상적인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1980년대 민중운동의 퇴조 이후 문화 혹은 문화운동은 실천적인 담론으로 수렴되기 보다는 민중운동, 변혁운동의 현장을 상실한 운동가들의 새로운 발판이 되었다. 좋게 말해서 발판이지 나쁘게 말하면 퇴기들의 집합소가 된 셈이다.

어쨌거나 당대를 이끌었던 '과학적 유물론'의 퇴조 혹은 한계상황의 수렴을 이룬 여러 분야의 운동 가운데 하나가 문화운동, 문화연구였던 것이다. 영국에서 출발한 문화연구가 언제나 현장성을 강조해온 것 역시 이것이 하나의 학문적 체제 안에 포용되기 보단 그것을 포월하고자 했던 것이 당대 문화연구자들의 이상이었을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 체제의 부르주아 사회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피할 수 없는 딜레마에 대해 고민했다. 이 딜레마는 뤼시엥 골드만이 루카치의 개념을 적용하여 소설을 "문제적 인물이 타락한 사회에서 타락한 방식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서사"라고 정의 내리는 것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

승리를 향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사적 전진은 특수한 성질을 갖는 과정인바, 그 특수성은 역사상 최초로 인민대중 자신이 모든 지배계급에 맞서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이 의지는 현존하는 사회를 넘어서, 그 외부에서만 실현될 수 있는 반면, 기존 질서와의 일상적인 투쟁 속에서만, 즉 기존 질서의 틀 내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

위와 같은 로자의 말은 체제개혁이든 혹은 체제변혁운동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근본적 딜레마, '부르주아 사회에서 부르주아와 투쟁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부르주아적인 형식에 기댈 수밖에 없다'에 대해 말한다. 1980년대 변혁운동의 근본적인 쇠퇴에 대한 외부적 요인은 세계체제의 변화 등 다양한 부분에서 찾을 수 있으나 이후 운동의 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은 사실 위에서 인용한 로자의 말에서 찾아야 한다.

2.
불행히도 아직까지 한국에서의 문화연구는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만큼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뜻이고, 그 개념이 일반인에게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문화유물론"이란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해서도 이와 같은 절차들이 요구된다. 문화유물론을 거칠게 정의하자면 문화연구의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이미 수차례 전술한 적이 있는 것처럼 문화연구란 영국의 좌파 문학비평가였던 레이몬드 윌리엄스(R. Williams)가 소련에서 스탈린주의와 동구침공 등의 역사적 상황과 1960~70년대 영국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인간의 자기실현 가능성(해방)을 제약하는 강력한 힘(권력), 통제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출발한 것이다.

그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이같은 억압적 구조를 완벽하게 재생산하며 진화해나가는 삶의 총체적 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를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자신의 문학이론에 있어 초기 이론적 자양분 역할을 했던 마르크시즘을 통해 자신의 시대 상황을 분석하고, 대안을 도출할 수 있는 문화이론으로서 제기한 것이 문화유물론(Cultural Materialism)이다. 문화유물론은 마르크스의 '생산' 개념을 문화에 부여한다. 문화는 문화적 의미 생산의 공간이며, 억압적 구조가 재생산되는 의미 생산의 원천이고, 다시 이를 거부하고 새로운 대안적 삶의 양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다. 마르크스의 주장 가운데 가장 의미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많은 논란의 요소는 이른바 '경제결정론'이다. 누구나 들어보았음직한 이야기들, '인간의 의식, 관념, 세계관은 물질적 토대에 의해 결정된다'사실 이 명제는 오늘날 마르크스주의를 비난하는데 있어 가장 유용한 부분이지만, 동시에 마르크스가 인문학 영역에 는 물질적 토대에 의해 상부구조가 결정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가장 크게 기여한 부분이기도 하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그를 가장 중요한 이론가로 자리매김하는 원천이다.(나 같은 사람은 지금까지도 '이 말이 근본적으로 뭐가 틀렸는데?' 라고 생각한다. 흐흐) 여기에 나의 생각(어쩌면 이건 나의 생각이 아닐지도 모른다)을 조금 곁들이면 마르크스의 주장,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말 자체가 틀렸다기 보다는 이것을 지나치게 굳은 개념으로 받아들인 이들, 혹은 상호적인 것이 아니라 고정된 것으로 오해하도록 만든 마르크스의 오류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잘 아다시피 마크르스가 말한 상부구조는 철학, 사상, 문화, 예술, 종교, 법, 제도 등 인간이 사유하는 방식, 문화행위 전반을 지칭하는 말인데, 이와 같은 인간의 의식은 그 시대 생산양식을 반영한 것이란 말이다.

문화유물론이란 이때의 '반영'이란 개념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이를 해체하여 재구성한 이론이라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상부구조가 수동적이고, 정태적인 굳은 것이 아니라 생산양식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와같은 영향의 주고 받음을 통해 인간의 의식이 결정된다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R. 윌리엄스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명제를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명제로 전환시켰다. 그는 우리의 의식이 사회적 과정(실체적인 영역)을 통해 결정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삶을 만들어가고, 역사를 변화시켜가는 근본적인 추동력으로서 물적 토대를 인정했다.(말하면 말할수록 꼬인다는 생각도 있지만, 다시 말해 문화유물론에선 문화 - 언어, 사상, 예술, 체제, 경제, 이데올로기 등등 -를 이해할 때 물질적 실체를 가진 것으로 정의하고,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과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3.
문화연구는 스스로를 정의하는데 매우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 이유는 문화유물론이란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평소 우리가 매우 이질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문화와 유물론을 결합시키는 것처럼 영국의 문화비평 전통과 마르크스주의라는 매우 다른 두 가지 전통이 문화연구라는 한 지붕 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문 아닌 학문이 매력적인 까닭은 이것이 그간 학문적이든, 혹은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다른 어떤 영역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불편한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요새 유행하는 말을 빌어 '통섭'이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부분을 개별적으로 이해하고, 연구하고 있는데, 근본적인 부분에서 접근하자면 우리는 인간이 의미 생산을 통해 자기 실현을 해나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노동, 여성, 소수자, 생태 등 많은 영역의 운동들이 개별화되고, 파편화되어 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많지만 미립자처럼 분절되어 있는 이들 사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해낼 만한 영역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문화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연구는 스스로를 학문이 아닌 실천담론으로 규정하는 희한한 이론체계인데, 그 까닭은 문화연구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비판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와 실천행위로서의 문화(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 같은)에 양 다리를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앞의 이야기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을 듯 하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딜레마는 오늘날 문화연구 영역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1990년대 초중반 우리 사회의 지식담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들은 요즘에도 가끔씩 TV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이른바 '문화평론가'라는 존재들이다. 1980년대 지나치게 정치적이어서 도리어 비정치적이었던 운동들이 퇴조하면서 '문화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던, 그들은 서태지와 오렌지족으로 상징되는 '신세대담론', '소비담론'의 주역들이었다. 크게 보았을 때 현재도 이 같은 흐름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1997년 IMF위기 이후 한 마리 제비가 되어 봄을 알렸던 철(?) 없는 문화평론가들은 그 겨울에 다 얼어죽어야 했지만, 상당수는 살아남아 아카데미의 품 안에 깃들었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문화연구에서 문화유물론을 빼면, 문화연구가 이데올로기적인 불온함을 상실하는 순간, 이에 대한 고민이 없는 문화연구는 다만 문화산업, 문화정책, 문화콘텐츠(그렇다고 이 영역들이 반드시 그렇다는 뜻은 아니지만)를 위한 도구, 무뇌아적 학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문화가 곧 정치다." 그것이 문화유물론의 기본 정신이기 때문이다.(다행히도 지난 겨울의 위기 이후 일부는 정신을 차렸고, 일부는 여전히 정신이 없다. 그러나 원래 학문의 세상이란 것도 바깥 세상과 그리 다를 바 없다.) 앤드류 밀너의 "문화유물론의 이론적 전개"는 이론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읽어내기 쉽지는 않겠지만 문화연구에 대한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 번쯤, 아니 두 번쯤 충분히 숙독해둘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는 문제는 어떻게 잃어버린 현장성을 되찾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과거의 운동이 '민중 속으로'였다면 오늘의 운동은 역으로 민중이 나에게 오도록 만들거나 아니면 내가 곧 민중인 상황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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