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넘게 함께 살던 친구가 성남으로 이사를 갔다. 말 그대로 동고동락하던 사이였다. 나이는 찼지만 아직 공부하는 학생이라 책 이외에는 별반 짐이 없을 것 같더니만 이것저것 꺼내놓으니 한 살림이다. 며칠 전 흩어지는 것을 기정사실화 했을 때까지만 해도 무심했는데 꾸려 놓은 짐 보따리를 보니 왜 이렇게 처량하고 쓸쓸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녀석의 고향은 지방인데 형편이 넉넉지 않아 쉽게 방 한 칸 구할 사정이 못 되었다. 갖추고 덤벼도 억울하고 힘든 일이 넘쳐나는 서울살이가 하염없이 고달플 텐데 그 딱한 사정을 알면서도 떠나는 친구를 붙잡지 못하는 내 처지가 야속하기 짝이 없다. 집을 떠나야 하기로 결정이 된 이후로 가뜩이나 마른 몸이 더 패이고 바짝 타들어 가는 입술도 애써 못 본 척 했기 때문이다.


트럭에 짐을 싣고 떠나는 모습은 끝내 지켜보지 못했다. 떠나는 사람 짐이라도 몇 더미 날라주고 싶어 어떻게든 일을 미뤄보려고 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두고두고 후회가 될 일이 분명하다. 연일 따뜻한 날이 이어지더니 오늘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추웠는지……


초라한 이사 짐을 실은 트럭의 앞좌석에 앉아본 사람은 안다. 자신의 삶이 떠밀려 가는 고단함과 스쳐가는 낯선 풍경이 던져주는 불안함을. 온갖 상념들이 왜 이렇게 결연하게 느껴지는지를. 길을 잘못 든 것만 같은 낭패감과 속절없이 무너지는 청춘의 서러움을.  


얹혀산다고 까다로운 내 성정도 묵묵히 다 견뎌 준 친구의 고마움을 언제쯤 절실하게 깨닫게 될까.


몸이 멀어졌지만 마음만은 멀지 않길 간절히 바랄밖에.


친구여! 잘 살거라. 부디 건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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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2-12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소이부답님의 마음 친구분이 아실 것 같은데요. 소중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고이 간직한 체 아마도 친구분이 이사하셨을 듯 하네요. 두분의 우정이 서로를 감싸주는 고운마음이 부럽기만 합니다. 두분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마노아 2007-02-12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분이 이사하셨는데 소이부답님의 심회가 이사하는 사람 못지 않습니다. 채 표현하지 못한 마음도 친구분은 이미 아셨을 것 같아요. 새 터전에서는 고단함이 바래어지길 바래봅니다.

이게다예요 2007-02-1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찡하네요. 예전에 친구 자취방에 얹혀살았던 기억도 떠오르고...
같이 공부했던 친구가 저때문에 상처받으며 떠났다고 5년도 훨씬 넘은 일을 얼마전에 울면서 고백해서 아주 당황스러웠던 기억까지 다시 떠오르네요. 참..

나비80 2007-02-14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며시 지나갔으면 하는 일들이 있는데 사람 사는게 참 쉽지 않네요.
아직 어른이 못되어 그런 모양입니다. 마음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