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기록하다 - 침몰·구조·출항·선원, 150일간의 세월호 재판 기록
오준호 지음 / 미지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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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드문 논픽션의 수준높은 경지를 보여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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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 바이 미 - 스티븐 킹의 사계 가을.겨울 밀리언셀러 클럽 2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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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볼 때의 애처로움과

그렇게 노력하는 자의 마음을 어떻게든 헤아려보려는

소년들의 우정이 주는 찡한 느낌

"제일 중요한 일들은 말하기도 제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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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D] 페드르 큰글 세계문학전집 9
장 바티스트 라신 지음, 장성중 옮김 / 큰글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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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라신, 페드르, 만남 출판사

 

페드르: 하느님 맙소사! 오늘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지? 이제 내 남편이 나타날텐데. 그리고 그의 아들도 함께. 내 정념의 불길을 목격한 그 증인이 내가 어떤 낯으로 자기 아버지에게 다가가는지 주시하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게 되겠지. (73~74)

 

페드르: 그의 안하무인의 눈빛 속에 나의 파멸이 분명히 적혀 있구나. (79)

 

 

이 희곡은 어릴 적 장세니즘(Jansenism)의 중심지인 포르 루아얄에서 교육을 받은 라신의 이력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으로는 신의 예정과 은총의 절대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원죄 이후의 인간의 무력함을 강조하는 장세니즘은 <페드르>에서는 정념에 무력한 페드르의 모습과 무고한 죽음을 맞는 이폴리트를 통해 표현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붙어 있는 각주 117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여기서, 사랑에 버림받은 자의 정념에 대한 어떤 공식이 성립된다. , 그들은 정념에 이끌린 비참의 절정에서 상대방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자살을 할 것인가의 기로에서 어느 한 쪽의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인간이 아무리 선행을 한다고 해도 구원을 받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신은 인간에게 철저히 무관심하다. 최근 바디우와 아감벤이 말하는 사도 바울의 사상 역시 이러한 장세니즘과 연관되어 있다.

 

선행(virtue)과 은혜(grace)의 이러한 엇갈림에 대해서는 지젝이 히치콕과 함께 라깡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것에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79쪽 페드르의 대사가 "그의 불손한 응시 속에 나의 파멸이 크게 써 있도다"라고 번역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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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 관리되는 민주주의와 전도된 전체주의의 유령
셸던 월린 지음, 우석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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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미국이 건강한 민주주의 체제였다면, 이 사건을 야당을 점화시켜 의회에서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기간 동안, [선거] 쿠데타를 고발하도록, 그 적법성을 두고 싸우도록 했을 것이다. 선거라는 협상불가능한, 민주주의의 한 가지 주춧돌에 대한 냉소적 전복이라는 사태에 대응해, 전국적으로 거대한 저항 운동이, 적어도 총파업과 시민 불복종 운동이 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우리가 목도한 것은 불만의 물결이 미미한 가운데 거행된, 적법성에 하자가 있는 대통령의 취임식이었다. 축하 행사의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이 취임식이 모든 과거 취임식과 유사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전을 기했다. 정치적으로 공화당원들에게 일찌감치 패배한 바 있는 전임 대통령[빌 클린턴]이 지켜보는 가운데, 권한이 이양되고, 연속성은 보존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로써 헌정 민주주의는 사망했다. 대통령 만세!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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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이 국내에서도 꽤 인기를 모으는 중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만화 속에서 우익적인 혐의를 발견해내고 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생겨나고 있다. 이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우선 「진격의 거인」이 전제하는 세계관이 자존감을 다시 찾기 위해서라도 다시 나가서 싸워야 한다는 일본 극우파의 주장과 겹친다는 데 있다. 헌법 개정을 통해 당당히 군대를 보유하고 자신들의 삶을 자신들의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가, 무기력과 패배주의에 빠진 동료들에게 거인에 맞서 싸우기를 주장하는 「진격의 거인」 속 주인공의 태도를 통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작가가 블로그에 존경한다고 밝힌 인물이 러일전쟁의 영웅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라는 것이 드러난 이후 심증은 굳어졌다. 극 중 인물 이름인 ‘미카사’가 러일전쟁에서 활약한 함대의 이름이라는 지적도 한몫했다.

하지만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에는 문제가 간단치 않다. 우선 아직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거인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인공의 주장 자체가 미봉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서사가 진행될수록 인류를 잡아먹는 것으로 설정된 무시무시한존재로서의 거인만이 인류의 ‘적(敵)’이 아니라, 오히려 적이 누구인지 확실치 않은 상황 자체가 문제시 되고 있다. 기득권층 일부만 세계의 진실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대다수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적을 ‘거인’이라고 단정 지은 채 비합리적인 체제에 순응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던 중 마침내 주인공의 존재론적 기반을 흔드는 결정적 질문이 제기되기에 이르는데, 그것은 바로 “적이 뭐라고 생각하는가”이다.

이것은 왜 결정적 질문인가? ‘적’의 실체가 사실은 불명확하다는 것이 이 질문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진정한 적은, 적이란 오직 ‘거인’뿐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명목으로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인을 죽이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실업자들을 무방비 상태로 성 밖으로 내보내는 지배층, 아니면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조작해내는 종교 집단이 주인공의 적일수도 있다. 심지어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조차 냉소하거나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는 일반인들도 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일본의 상황에 적용했을 때, 국민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고 전쟁을 외치는 극우주의자나, 위안부 문제를 외면하고 신사참배를 강행하는 등 ‘역사인식의 착오’를 보여주는 정치인들,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국민이야말로 일본 내부에서 맞서싸워야 할 적인 것이다.

그런데 ‘역사인식의 착오’ 속에서 “21세기의 문제를 20세기 방식으로 풀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일본에 국한된 이야기일까? ‘내란음모죄’라는 진부한 상상력으로, 자기 조직의 존립을 위해 ‘국익’이라는 이름을 너무도 손쉽게 이용하는 양 진영 간의 진흙탕 싸움 속에서,국민들의 ‘삶’의 문제들은 뒷전으로 내팽개쳐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진격의 거인」의 주인공이 그러했듯, 불가능한 과제에 도전하는 것인지 모른다. 손쉽게 판단을 중지시켜 버리는, 내란음모죄냐 아니냐하는 이분법에 맞서, 어떻게 그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것인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진격에 맞서 반격을 할 때, 벽인 줄 알았던 것이 문이 될 수 있다.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20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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