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그랜드북스 47
T.윌리엄스 / 일신서적 / 199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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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947년 발표된 테네시 윌리암스의 작품이다. 전쟁 후에 박인환이 이 작품을 번역해서 서울에서도 초연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꽤나 빨리 소개된 작품인 셈이다. 이 작품을 번역했던 박인환의 심사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여튼 책에는 <성공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프롤로그가 실려 있는데(뉴욕 상연 4일전에 쓴), 이 글이 재미있다. 당시 <유리 동물원>의 성공이후 윌리엄스는 뜻밖의 성공으로 인해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너무' 성공해버려서 생이 실감이 나지 않는 지경이 된 것. 이것은 무엇보다 예술가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난 계기는 눈수술을 하게 되면서 일어났는데, 앞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격조했거나 무례하게 대했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다시금 정답게 들리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테네시 윌리엄스는 예술가에게는 현실보다 작가가 창출한 세계가 더 강렬하며 실재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무기력한 세계의 유혹에서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할 적은 궁핍이 아니라 사치이며, 그리고 이 적의 무기는 성공의 여신에게 으레 따르게 마련인 허영, 자만심, 느즈러짐 같은 것-이런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그것으로 위험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위치까지는 적어도 다가선 셈이다./이런 경우 명성을 날리고 있는 현재의 유행아로서의 자기는 거울에 비쳐진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과, 참다운 가치가 있는 자기란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존재하고 현재까지 해온 활동의 총화이며, 따라서 언제나 의지에 의해서 지배할 수 있는 고독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의 자기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 사람은 깨닫고 있는 것이다-이것을 깨닫게 되면, 그야말로 이 사람은 성공의 여신의 대재난을 뚫고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8쪽)

 

이 희곡의 제목은 원래 <포커의 밤>이었는데 후에 바꾼 것이라고 한다. 밋밋한 제목보다는 다소 선정적이더라도 직접적인 쪽을 택한 듯하다. 영화에서는 비비안 리가 블랑슈의 역할을 맡은 데서 알 수 있듯이, 복잡한 성격을 지닌 블랑슈 뒤부아가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남성을 유혹을 하는 요부의 위치에서, 자기의 과거에 쫓기다가, 한 남자에게 순정을 바치기를 결심하는 순간 다시금 배신을 당하고 자신의 욕망에 걸려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극락'역이라든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명명에서 알 수 있듯이 교훈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디테일을 살려나가면서도, 무엇보다 테네시 윌리엄스가 공을 들인 것은 이 블랑슈 뒤부아라는 인물의 성격이 아닌가 한다. 어쩐지 우디 앨런의 <블루 재스민>을 떠올리게 하는 블랑슈와 스탠리의 묘한 관계는, 귀족적인 취향이 싸구려 히스테리가 되어 버리고 대신 거칠고 폭력적인 남성자본의 힘이 그것을 압도하는 상황을 그려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박인환은 블랑슈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이 극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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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 그 페허의 문학과 인간
고은 지음 / 향연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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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다보면 길이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한다. 그동안 별 생각 없이 받아들여졌던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길이 보이는데, 그 길이라는 것이 도무지 해결될 수 없는 꼬인 실타래와 같은 것임을 깨닫고는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의 심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여행 다녀와서 겨우 일주일 동안 책을 읽어놓고는 할 수 있는 푸념치고는 다소 성급한 감이 있지만.

 

어쨌든 이번 고은의 책은 전에 읽은 <이중섭 평전>에 비하면 여러 모로 실망스러웠다. 밀도도 떨어지는 것 같고 관점도 갈팡질팡하는 것 같다. 이 책은 1973년 겨울에 출간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지금은 '낡고' 심지어 '잘못된' 사실들(특히, 6.25전쟁에 대한 서술)도 많은 것 같다. 검열을 인식해서 인지 월북인사들에 대한 반공주의적인 인식이 드러나 있는 것이나 맥아더에 대한 찬양논조는 읽기 불편할 정도였다. 그래서 개정판 서문에서 고은은 자신이 이 글을 쓸 때와 자신은 아주 현저하게 '어긋나' 있다면서 이 책을 재출간하는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는 향수에 잠기는 것을 싫어한다면서 자신의 과거를 지나치게 가볍게 취급하는 듯...

 

여튼 "문학의 본질에는 반드시 폐허가 있다!"라는 2005년 개정판 서문의 고은의 말은 내 논문의 요지나 다름 없다. 하지만 고은 자신은 그 '폐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만의 잘못이라기보다 근대성을 피상적으로 이해해왔던 '식민지 지식인'의 공통된 한계이겠지만. 6.25 이전의 문학을 성황당 문학으로 본다거나 하는 관점...더구나 고은의 괴상한 문장들을 글을 읽어나가는 과정을 내내 괴롭게 만들었다. 너무나 많은 비문들이 이해 자체를 어렵게 하였다. 이제 당분간 고은의 글은 읽을 수 없을 것 같다.

 

1920년대 데카당스 문학을 비판하는 관점은 한국 문학사에서 일반적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고은에게서도 발견되는데, 심지어 고은은 50년대 데카당스가 더 '구제 불능'의 것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언급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 주목할 부분. <적어도 1920년대 이후의 문제로서 작가의 원형에 심리적으로 자극해온 데카당스가 1950년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관련된 어법으로 등장함으로서 폐허의 동의어인 폐허의 작가를 예술적 충동으로 지속케 한 것은 사실이다> 그 역시 데카당스가 지닌 최소한의 시대적 역할에는 주목한 셈이다. 이처럼 고은이 갈팡질팡 하는 이유는 서구의 데카당스 문학에 비해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하다가도 이 시대의 방황과 패배밖에는 이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을 그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모방은 모방이 아니라, 오히려 당대적 상황에 대한 반응(respond)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뭐가 진짜 데카당이냐 아니냐를 논하는 건 이제는 촌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물론 1950년대가 '폐허'였다는 말은 어쩌면 아무런 의미도 전해주지 않는 말일지 모른다. 전쟁이 끝난 후 한국의 현실이 얼마나 피폐했는지를 설명하는 수식어로서밖에 이해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이러한 폐허와 초토에서 예술은 허무를 자본으로 삼아서 생겨났음을 또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과 삶이 지척에 있는 순간을 경험한 이들은 그 자신의 생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예술과 생이 구분되지 않는 지경에서 이들은 퇴폐적인 삶을 향유한다. 이때의 퇴폐는 도덕적인 가치가 붕괴되어 있는 상태로서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갖지 못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다시 질서를 찾아간다. 1950년대의 허무주의는 실존주의의 수용으로 나타났고, 사르트르나 지드의 행동주의적 실존주의로 나아간다. 절대적 가치가 붕괴된 이후 방탕과 퇴폐로 삶을 탕진하던 이들은 동시에 붕괴된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 자신을 실존적 기로에 선 주체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1950년대에 길이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몰락하기를 선택했던 이들의 고뇌를 접할 수록 이들의 목소리에 빠져든다. 50년대에는 누구나 예술가였다는데, 그것은 누구나 삶이 허무하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허무에 대한 인식만으로 생을 지탱할 수는 없지만, 허무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생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인간은 자신이 고독하다고 느끼는 순간에야말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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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이름 따라, 명동 20년 지만지 고전선집 531
이봉구 지음, 강정구 엮음 / 지만지고전천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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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출판된 이봉구의 <그리움 이름 따라-명동 20년>(유신문화사)에서 35%만을 발췌한 것. 명동 20년의 문단 일화를 기록한 이 책은 해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허구와 사실의 기록이라는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는데, 그런 점에서 책의 내용은 과장이 섞인 사실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지만, 나로서는 무엇보다 이 당시에 문단이 어떠한 분위기였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읽은 책인 만큼 그 부분에 주목하면서 읽어나갔다. 이봉구는 이 책을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나는 천년의 세월을 지나온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보드레르'는 말하였다.

또 누구는 말하기를 술의 중량과 싸우는 것은 인생의 중량과 싸우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하였다"(27)

 

여기서 '보드레르'는 보들레르를 말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 엮은이 강정구는 당시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작가는 그것을 시와 술, 그리고 다방으로 본다. 정치, 근대화, 도시화 등이 합리성과 지성을 중시하는 아폴론적인 것이라면, 이봉구가 주목한 것은 인간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본능과 욕망을 강조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일제 말기부터 근대성의 파탄은 예고된 것이었고, 해방은 당시로만 보기에는 근대성이라는 이름의 합리성이 아주 잠깐이나마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일제 말기 구인회에 참여했던 김기림, 정지용을 비롯해 오장환 등이 갑자기 퇴폐를 배격하면서 '정신을 차린 것'처럼 이념의 투사로 변신한 데는 근대성에 대한 믿음을 회복한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해방기를 지나면서 환멸로 변했을 테지만 말이다.

 

전쟁을 거치며 근대적 합리성에 대한 회의는 더욱 극에 달했을 것이다. 폐허의 공간에서 이들은 다방과 술집을 드라들며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다. 이 예술혼들의 절망과 허무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보들레르가 말하던 '악의 꽃'이 다시 피어나던 시기? 물가의 폭등 등으로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조차 버거웠던 시절에 이들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의 절망의 탐닉했다.

 

이봉구의 이 책은 해방을 시작으로 전쟁을 전후로 2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당시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것은 오장환의 <병든 서울>, 그리고 김기림의 <우리들의 팔월로 돌아가자>이다. 프랑스 샹송가수 '다미아'의 '어두운 일요일(sombre dimanche)'을 들어가며 방황하다 죽을 줄 알았던 상처받은 보헤미안들은 해방을 맞아 흥분에 병이 날 정도였다.

 

해방기에 미군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흑인병사와 친구가 된 배인철이라는 인물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흥미롭다. 그는 미국의 흑인작가 리처드 라잇(Richard Wright)의 소설을 옆에 끼고 다니며 번역하겠다고 말했다고. 도대체 당시 지식인들은 어떠한 책들을 어떻게 구해다가 본 것인지 모르겠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이념에 따라 분열되기 시작한 양상이 나타난다.

 

<거리엔 좌우합작에 뒤이어 남북협상이 외쳐지고 이를 위해 김구 선생은 삼팔선을 넘어 평양으로 간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 새 소식을 제일 먼저 알게 되는 것이 명동 거리의 다방이요, 대폿집이다.>(87)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부산에서 명동으로 돌아온 예술가들은 다시 명동을 찾는다. 이들은 피난을 갔던 대구, 부산에서 그러했듯 다방을 드나들며 연애를 하고 시를 외웠다. 당시 소병화의 제5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는 삼판까지 직었다고 한다. <어수선하고 살풍경하고 인간들만 우굴우굴한 환도 직후의 명동을 보고/외투가 무거워 드는 북국의 서야/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 가에서/맥주를 들면/여기는 명동 '미락' 부근//생존에 맹렬하는 허전한 군상들이/도시의 고독을 비비고/명동/굽은 시야의 계단을 오르내린다.//(...)>

 

박인환은 술을 마시며 "나는 오늘 이상이 때문에 마신다."라고 말하고는 자신이 지은 <명동 샹송 세월이 가면>('그 사람은 이름은 잊었지만')을 불렀다고. 박인환이 죽고 이중섭이 죽었다. 그리고 이봉구는 이 당시의 분위기를 <명동도 이제 낭만이고 분위기고 한물가고 있다는 졸곡제>라고 묘사한다. 이봉구의 생생한 묘사도 인상적이고 기존의 책에서 볼 수 없는 일화들이 많다. 아무래도 원본을 대충이라도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이제 박인환이 술이 취하면 얘기했다던 '콕토'의 영화를 봐야지.

 

* 오장환은 서정주보다 이상과 각별한 사이였던 것 같다. 이봉구는 식민지시기 관훈동에 오장환이 낸 책방에 이상의 자화상이 걸려 있었다고 말한다.

<이상이 살아 있던 날 그와 함께 이상이 경영하던 '제비''쓰루''무기'라는 다방과 술집으로 돌아다니는 동안 정이 들어 이상이 마지막 서울을 탈출할 때 정표로 자기의 자화상 한 폭을 오장환에게 주고 간 것이다. / 이상이 세상을 떠난 지 여러 해 후 오장환은 서점을 개업하면서 옛 친구를 생각하고 그 자화상을 서점 정면 벽에 걸어 놓았다./ 연필로 그린 것인데 머리는 무성한 잡초였고 수염은 깎지 않고 버려둬 갈대밭 같아 손님들은 자화상 앞에서 고개를 기웃거리었다.>(40-41)

 

*김수영이 1950년 집들이를 하는 자리에서 자기 시 <거리>를 읊조렸다고 하는데(94), 전집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원본 김수영 전집]을 확인해봐야 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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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저널리즘 : 동아시아의 문화지정학 아이아 총서 3
마루카와 데쓰시 지음, 백지운.윤여일 옮김 / 그린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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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하는 세미나 준비차 읽게 된 책이었는데 여러 모로 유익했다. 리저널리즘은 '지역주의'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인데, 번역으로 인해 오히려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될 것을 우려하여 원래 발음을 살려서 번역한 것 같다.

 

1부의 제목이 <방법으로서의 '리저널리즘'>인 데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를 말한 다케우치 요시미의 관점에 주목한다. 일제 말기 문학을 연구하면서 다케우치 요시미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음에도 이 책을 통해 그 관점이 보다 명확하게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이 책은 1장에서는 유럽 근대의 확장 과정과 관련해서 지역주의적인 관점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데, 밤에 잠이 안 와서 별 생각 없이 책을 펼쳐서 읽다가 '우어~'하고 자세를 고치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저자가 책을 서술하는 방식 자체가 (일본 연구서의 특징일 수도 있지만) 연구서답지 않게 필요한 부분만을 간략히 설명하고 넘어가는 식인데, 그러한 몇 문장의 언급들 가운데 반짝반짝 통찰력이 빛나는 것들이 많아서 주의를 기울이면서 정독하게 된다.

 

<지중해>에 주목함으로써 '나름' 지역성에 주목하고자 했지만 결국 기독교 세력 대 이슬람 세력이라는 구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브로델로부터, 유럽 중심의 '세계사'를 상대화하려고 한 이집트 출신의 경제학자 사미르 아민,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칼 슈미트에 대한 언급. 전쟁사가 군사기술사에서 전제되는 매끄러운 발전성 연속성을 불편해 했던 슈미트를 알튀세르와 연결시키면서 <발전적 연속성으로 측정할 수 없는 유동성으로서, 단기 중기 장기라는 시간의 파동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우연적인 '힘'의 계기>를 파악해야 한다는 지적에서 감탄이 나왔다.

 

<다시 말해, 알튀세르가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세계의 중심을 경유하는 인식경로를 벗어나서는 자신을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그런 세계/인식/구조이다. 스스로에 의해 스스로를 아는 것, 그것은 세계의 중심으로부터 인용되거나 그 본질의 정의를 거치지 않고서는 결코 실행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다.>(39)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현대사를 둘러싼 '냉전'이라는 전후 세계질서의 문제성이 아닐까 한다. 냉전체제의 문제성이 아시아 식민지배 과정에서 만들어진 일본의 왜곡된 아시아인식의 문제로까지 이어져 있음을 지적하면서, 2장과 3장에서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가 어떻게 요동쳐 왔는지에 대해 분석하게 된다. 역사주의의 덫에 빠져 역사를 상대화하는 데 실패하기가 얼마나 쉬우며, 또한 그로 인해 왜곡된 민족의식에 사로잡혀 동아시아를 비롯한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이 책에서의 관점은 더 소중하게 생각된다.

 

역사에서 '만약'은 금물이라고 해도 알튀세르가 말한 <측정할 수 없는 유동성>을 생각하며 역사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과거에 이뤄내지 못했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것, 한편으로 그러지 못했다는 점을 반성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의 윤리성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역사를 자기 합리화의 기제로 이용하려는 자들과는 달리, 그러지 않을 수 있었음을 지속적으로 말하는 작업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실감한다.

 

이런 점에서 다케우치 요시미와 함께 저자가 긍정하는 내셔널리즘이란, <우리 안의 당사자성을 불러내는 실천>(118)이라고 할만한 것으로, <주체로서의 책임을 지는 자세>이다. 45년 8월 15일을 '굴욕'으로 기억했던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이 <동서냉전의 서쪽 진영에서 미국 극동정책(군사, 경제, 정치)의 모범생으로 착실히> 사는 전후의 현실을 비판한다. 이와 같은 지점에서 나 역시 '45년 8월 15일'의 의미를 묻게 된다. 45년의 '해방'이 한반도에서 과연 '해방적'이었다고만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이 또 다른 종속의 시작이자 혼란의 기점으로 볼 수 있다고 할 때 '해방'의 의미는 되물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3부의 3장 <한국전쟁으로 돌아가라>는 한국 전쟁을 국공내전의 자장 안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면서 중국과 북한의 핵 전략이 한국전쟁 당시 중국의 전쟁 참여와 관련된 것임을 밝힌다. 이러한 맥락을 살펴보면 단순히 '핵 반대'라는 구호가 현실에서 당위로만 되풀이될 뿐 현실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들이 이해가 된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동아시아에서 핵의 근절은 한국전쟁의 종전, 즉 동아시아에서 한국전쟁의 전후처리를 완결하는 순간에 이루어질 것>(191)이라고 판단한다. 저자가 이 글을 쓴 2006년으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북한 핵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곱씹어볼만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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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 평전
이경철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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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서정주의 시가 왜 좋은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다. 여기서 좋은 시라고 하면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의 차원을 말하는 것으로, '좋은 시'의 객관적인 조건들과는 무관하다. 서정주의 시를 '좋은 시'라고 하는 글을 읽으며 '아, 그래서 서정주 시가 좋은 시구나'라고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서정주의 시를 읽으며 감동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

 

이번에 서정주의 평전을 읽으면서도 초반부터 너무 서정주가 얼마나 위대한 시인인지를 강조해서 거부감이 없지 않았다. 김수영과 김춘수의 양대 산맥 이전에 서정주가 있었다는 평가는 과연 타당할까. 서정주의 삶을 돌아보면서도 한국 현대사와 시사, 그리고 시인의 생애가 얼마나 난맥상으로 얽혀있으며 또한 그에 따라 기존의 평가들이 다소 도식적으로 위에 말한 세 가지 맥락의 역사들을 구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서정주의 시는 '전통' 서정시라고 분류되지만 사실 그의 초기시부터를 '전통 서정시'의 계보 속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사집>에 나오는 그 징글징글한 이미지들에서는 원시주의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당시 모더니즘 시인이나 비평가였던 김기림으로부터 서정주의 시가 극찬을 받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서정주와 함께 생명파로 분류되는 오장환의 시만 해도 야수파적인 색채가 짙다. 이런 시를 썼던 서정주가 어째서 이후에는 '전통 서정시'라고 명명되는 시를 창작하기 시작했는가. 이것이 문제적인 것이 아닌가.

 

이와 관련해서 서정주, 하면 늘상 이야기되곤 하는 친일 부역 문제와 전두환에 대한 지지발언 등 '무뇌아적' 정치행보라고 일컬어지는 그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문제만 나오면 문학과 정치는 분리해야 한다거나 분리할 수 없다거나 항상 반복되는 이분법적 논의가 나오는데, 사실 이 문제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서정주는 친일 문학자니 그의 시는 가치가 없다고 폄하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특히 서정주처럼 위대한 시인은 이러한 문제로부터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식의, 그러니까 위대한 시인이 아니면 문제삼아도 된다는 식의 논리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오히려 이러한 정치적 성향과 그의 문학적 성향이 어떻게 맞물리고 있는지가 중요하면 이는 최현식 선생님의 연구(서정주 시의 근대와 반근대)를 비롯해 최근의 국문학 연구들이 지향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다만 여기서 덧붙여서 드는 생각은 그렇다고 문학 텍스트에서 친일의 내적 논리를 발견하는 방식, 즉 서정주의 전통 서정시로의 회귀, 샤머니즘 지향 등을 바로 파시즘적인 것으로 해석할 때의 문제가 아닐까. 이런 논리로는 서정주의 시를 '좋다고' 하는 이들의 관점과 완전히 양립하게 된다. 한쪽에서는 위대한 시인이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그것이 파시즘의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내가 왜 서정주의 시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않는 걸까, 라는 의문으로 돌아왔다. 이는 다분히 감수성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지만, '전통' 서정시의 게보에 있으며 샤머니즘의 영향 아래 설명할 수 있는 김소월의 시를 읽을 때와 서정주의 시를 읽을 때의 느낌이 (나로서는) 전혀 다르다는 것은 이때의 감수성이 어떠한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이런 점에서 여전히 국문학계 내에서도 '샤머니즘'을 어떻게 설명할 지에 대해 논의가 정리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김현만 해도 문지를 창간할 때 샤머니즘을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고 했다가 말년에 가면 전통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에 대한 태도를 전환하는 것 같다. 시 연구에서는 샤머니즘이 일종의 만능키처럼 쓰일 때가 많은데, 그러다가도 파시즘에 경도되었던 친일 문학자에 대한 연구에서 샤머니즘은 함께 매도당하기 일쑤다.

 

서정주 평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삼천포로 새 버렸다. 최근에 고은이 쓴 이중섭 평전을 비롯해서 평전들을 읽으며 해당 인물들의 생애뿐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까지 읽어보려고 하고 있는데 재밌는 내용이 많다. 고은이 쓴 평전이 특유의 입담과 생생한 증언들이 인상적이었다면, 이경철의 서정주 평전의 경우 기자 출신이자 현직 시인답게 풍부한 자료와 특유의 문학적 감식안을 만날 수 있다. 논문과 관련해서도 서정주가 쓴 시 <꽃>이 그의 시 세계에 있어서 획기적 전환점을 가져왔다는 부분을 새롭게 알게 되어서 굉장히 감사했다. 앞서 이야기한 시인의 생애와 시 세계의 변화를 연결시켜 보았을 때 이때의 전환점은 결코 작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1943년, 그러니까 서정주가 문학소년의 열정과 패기를 단념하고 매문에 들어서면서 일종의 '세속화'의 과정을 거치던 시기였음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전환점은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단순히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지점이 있다. 논문에서는 이 부분을 파고들어볼 생각이다.

 

서정주는 이중섭이 그러했듯, 전쟁을 거치면서 정신줄을 놓아 버린다. 헛소리를 듣기 시작하고 의처증이 생겨서 아내와 아들을 때리기도 하였으며, 말이 나오지 않는 지경에 이르러 괴로운 시절을 보냈다. 이승만 평전을 허락 없이 발간했다가 그가 겪었던 공포의 시간을 떠올려보면 그가 얼마나 심약한 인간인지를 알 수 있다. 험난한 시기에 시인은 그 자신을 지키기조차 벅찬 것이다. 그러면서도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관청에 취직하기도 지인들에게 부탁해 교사로 지내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과연 그에게 산다는 건 무엇이었고, 시란 무엇이었을까.

 

서정주 시는, 또한 그의 삶은 그래서 나에게 고민을 던져준다. 이념에 빠져서 문학을, 인간을 단죄하는 데 그 누가 찬성하겠는가. 그렇다고 윤리적인 고뇌가 느껴지지 않는 문학 역시 마냥 긍정할 수 있을까. 다만 서정주가 자신의 시에 담아내려 했던, 그 떠돌이의 '에스프리'라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 이제 다시 서정주의 시를 읽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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