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그랜드북스 47
T.윌리엄스 / 일신서적 / 1993년 1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1947년 발표된 테네시 윌리암스의 작품이다. 전쟁 후에 박인환이 이 작품을 번역해서 서울에서도 초연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꽤나 빨리 소개된 작품인 셈이다. 이 작품을 번역했던 박인환의 심사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여튼 책에는 <성공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프롤로그가 실려 있는데(뉴욕 상연 4일전에 쓴), 이 글이 재미있다. 당시 <유리 동물원>의 성공이후 윌리엄스는 뜻밖의 성공으로 인해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너무' 성공해버려서 생이 실감이 나지 않는 지경이 된 것. 이것은 무엇보다 예술가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난 계기는 눈수술을 하게 되면서 일어났는데, 앞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격조했거나 무례하게 대했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다시금 정답게 들리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테네시 윌리엄스는 예술가에게는 현실보다 작가가 창출한 세계가 더 강렬하며 실재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무기력한 세계의 유혹에서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할 적은 궁핍이 아니라 사치이며, 그리고 이 적의 무기는 성공의 여신에게 으레 따르게 마련인 허영, 자만심, 느즈러짐 같은 것-이런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그것으로 위험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위치까지는 적어도 다가선 셈이다./이런 경우 명성을 날리고 있는 현재의 유행아로서의 자기는 거울에 비쳐진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과, 참다운 가치가 있는 자기란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존재하고 현재까지 해온 활동의 총화이며, 따라서 언제나 의지에 의해서 지배할 수 있는 고독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의 자기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 사람은 깨닫고 있는 것이다-이것을 깨닫게 되면, 그야말로 이 사람은 성공의 여신의 대재난을 뚫고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8쪽)

 

이 희곡의 제목은 원래 <포커의 밤>이었는데 후에 바꾼 것이라고 한다. 밋밋한 제목보다는 다소 선정적이더라도 직접적인 쪽을 택한 듯하다. 영화에서는 비비안 리가 블랑슈의 역할을 맡은 데서 알 수 있듯이, 복잡한 성격을 지닌 블랑슈 뒤부아가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남성을 유혹을 하는 요부의 위치에서, 자기의 과거에 쫓기다가, 한 남자에게 순정을 바치기를 결심하는 순간 다시금 배신을 당하고 자신의 욕망에 걸려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극락'역이라든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명명에서 알 수 있듯이 교훈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디테일을 살려나가면서도, 무엇보다 테네시 윌리엄스가 공을 들인 것은 이 블랑슈 뒤부아라는 인물의 성격이 아닌가 한다. 어쩐지 우디 앨런의 <블루 재스민>을 떠올리게 하는 블랑슈와 스탠리의 묘한 관계는, 귀족적인 취향이 싸구려 히스테리가 되어 버리고 대신 거칠고 폭력적인 남성자본의 힘이 그것을 압도하는 상황을 그려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박인환은 블랑슈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이 극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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