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이름 따라, 명동 20년 지만지 고전선집 531
이봉구 지음, 강정구 엮음 / 지만지고전천줄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1966년 출판된 이봉구의 <그리움 이름 따라-명동 20년>(유신문화사)에서 35%만을 발췌한 것. 명동 20년의 문단 일화를 기록한 이 책은 해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허구와 사실의 기록이라는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는데, 그런 점에서 책의 내용은 과장이 섞인 사실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지만, 나로서는 무엇보다 이 당시에 문단이 어떠한 분위기였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읽은 책인 만큼 그 부분에 주목하면서 읽어나갔다. 이봉구는 이 책을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나는 천년의 세월을 지나온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보드레르'는 말하였다.

또 누구는 말하기를 술의 중량과 싸우는 것은 인생의 중량과 싸우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하였다"(27)

 

여기서 '보드레르'는 보들레르를 말하는 것으로, 이에 대해 엮은이 강정구는 당시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작가는 그것을 시와 술, 그리고 다방으로 본다. 정치, 근대화, 도시화 등이 합리성과 지성을 중시하는 아폴론적인 것이라면, 이봉구가 주목한 것은 인간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본능과 욕망을 강조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일제 말기부터 근대성의 파탄은 예고된 것이었고, 해방은 당시로만 보기에는 근대성이라는 이름의 합리성이 아주 잠깐이나마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일제 말기 구인회에 참여했던 김기림, 정지용을 비롯해 오장환 등이 갑자기 퇴폐를 배격하면서 '정신을 차린 것'처럼 이념의 투사로 변신한 데는 근대성에 대한 믿음을 회복한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해방기를 지나면서 환멸로 변했을 테지만 말이다.

 

전쟁을 거치며 근대적 합리성에 대한 회의는 더욱 극에 달했을 것이다. 폐허의 공간에서 이들은 다방과 술집을 드라들며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다. 이 예술혼들의 절망과 허무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보들레르가 말하던 '악의 꽃'이 다시 피어나던 시기? 물가의 폭등 등으로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조차 버거웠던 시절에 이들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의 절망의 탐닉했다.

 

이봉구의 이 책은 해방을 시작으로 전쟁을 전후로 2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당시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것은 오장환의 <병든 서울>, 그리고 김기림의 <우리들의 팔월로 돌아가자>이다. 프랑스 샹송가수 '다미아'의 '어두운 일요일(sombre dimanche)'을 들어가며 방황하다 죽을 줄 알았던 상처받은 보헤미안들은 해방을 맞아 흥분에 병이 날 정도였다.

 

해방기에 미군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흑인병사와 친구가 된 배인철이라는 인물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흥미롭다. 그는 미국의 흑인작가 리처드 라잇(Richard Wright)의 소설을 옆에 끼고 다니며 번역하겠다고 말했다고. 도대체 당시 지식인들은 어떠한 책들을 어떻게 구해다가 본 것인지 모르겠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이념에 따라 분열되기 시작한 양상이 나타난다.

 

<거리엔 좌우합작에 뒤이어 남북협상이 외쳐지고 이를 위해 김구 선생은 삼팔선을 넘어 평양으로 간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 새 소식을 제일 먼저 알게 되는 것이 명동 거리의 다방이요, 대폿집이다.>(87)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부산에서 명동으로 돌아온 예술가들은 다시 명동을 찾는다. 이들은 피난을 갔던 대구, 부산에서 그러했듯 다방을 드나들며 연애를 하고 시를 외웠다. 당시 소병화의 제5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는 삼판까지 직었다고 한다. <어수선하고 살풍경하고 인간들만 우굴우굴한 환도 직후의 명동을 보고/외투가 무거워 드는 북국의 서야/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 가에서/맥주를 들면/여기는 명동 '미락' 부근//생존에 맹렬하는 허전한 군상들이/도시의 고독을 비비고/명동/굽은 시야의 계단을 오르내린다.//(...)>

 

박인환은 술을 마시며 "나는 오늘 이상이 때문에 마신다."라고 말하고는 자신이 지은 <명동 샹송 세월이 가면>('그 사람은 이름은 잊었지만')을 불렀다고. 박인환이 죽고 이중섭이 죽었다. 그리고 이봉구는 이 당시의 분위기를 <명동도 이제 낭만이고 분위기고 한물가고 있다는 졸곡제>라고 묘사한다. 이봉구의 생생한 묘사도 인상적이고 기존의 책에서 볼 수 없는 일화들이 많다. 아무래도 원본을 대충이라도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이제 박인환이 술이 취하면 얘기했다던 '콕토'의 영화를 봐야지.

 

* 오장환은 서정주보다 이상과 각별한 사이였던 것 같다. 이봉구는 식민지시기 관훈동에 오장환이 낸 책방에 이상의 자화상이 걸려 있었다고 말한다.

<이상이 살아 있던 날 그와 함께 이상이 경영하던 '제비''쓰루''무기'라는 다방과 술집으로 돌아다니는 동안 정이 들어 이상이 마지막 서울을 탈출할 때 정표로 자기의 자화상 한 폭을 오장환에게 주고 간 것이다. / 이상이 세상을 떠난 지 여러 해 후 오장환은 서점을 개업하면서 옛 친구를 생각하고 그 자화상을 서점 정면 벽에 걸어 놓았다./ 연필로 그린 것인데 머리는 무성한 잡초였고 수염은 깎지 않고 버려둬 갈대밭 같아 손님들은 자화상 앞에서 고개를 기웃거리었다.>(40-41)

 

*김수영이 1950년 집들이를 하는 자리에서 자기 시 <거리>를 읊조렸다고 하는데(94), 전집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원본 김수영 전집]을 확인해봐야 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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