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보다는 심리학의 바운더리에 가까운 두 사람을 깔끔하게 잘 정리해냈다. 아무리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더라도 동류 경제학자들이 잘 인용(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군나르 뮈르달이야 '비주류'여서 그렇다고 쳐도, 수리모델로 이론을 전개해서 경제학과 친화성이 높음에도 여전히 경제학 교과서에서 한줄 짜리 인용에 그치는 대표적인 이들이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과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이다.
사이먼의 책은 석사 때부터 언제건 봐야지 하면서도 정작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는지 스스로도 의아해했다고 전해지지만, 사실 그는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폰 노이만 급의 인지도를 지닌 인물이다. 인간 역시 IPS(Information Process System)의 하나로 보고 컴퓨터와의 근친도를 탐색한 그의 문제의식은 탁월한 것이었다. 요컨대, 컴퓨터와 인간의 의사결정 사이에 질적인 차이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고 보면, 컴퓨터 하드웨어의 한계에 따라서 컴퓨터의 능력 및 프로그램의 설계방식이 정해지듯이, 인간 역시 그 인지력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합리성의 제한이 불가피하다. 주먹구구 식의 규칙, 즉 휴리스틱이란 이런 합리성의 제한이 인간의 의사결정 방식에서 드러내는 특징과 원리를 일컫는 말이다.
책에는 빠져 있지만, 휴리스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학습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때, 경쟁적인 휴리스틱 간의 선택과 진화의 과정은 이 문제를 사회의 차원으로 확대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는 이른바 진화경제학의 연구 패러다임이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사이먼의 휴리스틱의 의사결정론에 근거한 사회 시스템의 형성, 재현, 진화는 최신 진화경제학의 연구 경향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한편, 그들이 의도했든 아니든,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프로스펙트 이론은 기존 경제학에 대해서 보다 도발적이다. 카너먼은 경제학의 중핵에 감춰진 '경제인Homo Economicus'을 세심하게 해부하고 회의했다. 특히, 불확실성 하에서 합리성의 기준으로 널리 받아들여져 온 폰 노이만의 "기대효용" 가설이 그 수리적인 정합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현실적인 선택의 맥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거부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카너먼의 연구 프로그램은 경제학이 지주로 삼는 금과옥조들이 제법 배운 사람들, 곧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하리라 기대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다양하게 발굴했다. 예를 들어, "매몰비용에 연연하지 말라"(지난 것은 잊어라)는 가르침은 본전생각이 아쉬운 도박판에선 잊혀지기 십상이다. 그들이 모두 무지한 중생들일까? 일부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시중에 나와 있는 "인생"과 "경제학"을 합쳐놓은 대부분의 책들이 그렇게 목놓아 아우성을 질러대고 있다). 그래서, 이런 무지와 오류는 경제학의 중요한 계몽 대상이 된다. 하지만, 열렬한 계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이 계속해서 망각한다고 해도, 여전히 이들을 고수해야 할까? 당위, 규범과 실증 사이에 쌓아 둔 경제학의 견고한 만리장성이 살짝 허물어질 것도 같은 순간이기도 하다.
여전히 주류에 입성한 것은 아니지만, 카너먼의 연구프로그램은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라는 정식 간판까지 내걸고 업계에서 꽤나 성업중이다. 실험을 통해 경제학의 가르침을 허무는 부정적인 성향이 여전히 강하지만,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심리적, 행동적 속성에 근거하여, 즉 프로스펙트 이론의 성과를 인정하면서 보다 실용적인 정책적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는 긍정적인 방향 역시 생겨나고 있다. 실제로, (책에 있는 용어 대로라면 "기준점과 조정 휴리스틱"이라고 할 만한) 조삼모사의 원리는 미국에서 기업 단위의 연금 저축을 늘이는 방안으로 활용되어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짚고 가자. 책은 사이먼과 카너먼의 연구의 내용을 요령있게 소개하고 있지만, 이에서 파생된 보다 구체적인 최근의 경제학의 연구들은 다루지 않고 있다. 심리학의 편에 선 저자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될법 하지만, 책 후면에 적힌 추천사 마냥 "좁은 전공 영역을 고수하려는 편협한 국내의 지적풍토"를 여전히 넘지 못하고 답습한 것은 아닐까? 아울러, 경제학의 선택이론이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소개되는 것 역시 업계의 편협함에 물든 나에게는 꽤나 불만이었다. 책에서 일괴암적인 듯 서술된 경제학의 선택이론 역시 꽤나 다양하게 분화된 것이 오늘날의 학문적 현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입문용 도서로 추천할만 하나, 심리학의 편에서만 그렇다.
김영사에서 야심적으로 기획한 듯한 "지식인 마을 시리즈"에 대해 두 가지만 지적하겠다. 우선, 이 시리즈의 기획의도를 잘 모르겠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타겟으로 삼고 있는 독자층을 나로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구성을 보면, 대입용 고급 논술 참고서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 관한 한) 그 내용을 보자면 논술시험의 무기로 쓰이기에는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세부적이다. 해당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지닌 대학생 이상을 타겟으로 했다면 수험용에나 적합할 법한 지도 그리기 대신 보다 상세한 설명을 할당하는 게 옳다. 전략적으로 시리즈의 기획이 뭔가 안맞는 느낌이다. 출판사가 시장을 무시하고 장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논술이라는 달콤한 과실 때문에 발생하는 타협과 왜곡이 그리 개운치는 않다.
두번째로, 100권으로 마감 예정이고 현재 50인까지 분양을 확정한 이 마을에는 아직 경제학자가 단 한 명도 입주해있지 않다. 이걸 보니, 역시 경제학은 끼리끼리 똘똘 뭉치는 성격이 가장 강한 학문이었다! "아담 스미스 & 칼 맑스", "존 메이나드 케인즈 &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같은 거대한 그림까지 바라지도 않겠다. "가장 제국주의적인 학문"이라는 시기와 비난을 함께 달고 다니는 현대 경제학의 빛과 그림자 정도는 끼워주는 편이 옳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