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연쇄살인 - 희대의 살인마에 대한 범죄 수사와 심리 분석
표창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연쇄살인자(serial killer)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아마도 데이비드 핀처의 <세븐>의 오묘한 분위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하고, 존 맥노튼의 <헨리: 연쇄 살인자의 초상>이 준 커다란 문화적 충격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원래 슬래셔 무비를 좋아하는 '악취미' 가 어느덧 이쪽으로 슬쩍 물꼬를 틀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책을 고를 때 "연쇄 살인"은 어느덧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 있었다(뭐 그렇다고 내가 이쪽으로 매우 많은 책을 탐독했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

우선, 이 방면에서 영화/소설에서 단편적으로 엿본 내용(혹은 편견)들을 그나마 체계적으로 다듬게(혹은 교정하게) 해주었던 책은 레슬러의 [살인자들과의 인터뷰]였다. 프로파일링 기법을 현장에서 개척하고 다듬었던 장본인 답게 그 사례들이 매우 생생했고 수사관 레슬러의 체험과 얽혀있는 살인의 추억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희대의 살인마들의 진짜 후일담을 만나는 즐거움(혹은 관음증) 또한 쏠쏠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다만, 개인적인 경험과 뒤섞여 있어서 그런지 개념의 정립이나 사건의 재구성이 그닥 치밀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나중에 원본을 아마존에서 찾아보니, 이 책은 전문 작가와 함께 집필된 대중적으로(아울러 꽤나 자극적으로) 기획된 책이었다.  

문득,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책을 읽으면 그렇지 아니하랴만) 우리의 상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전형적인 의미의 연쇄 살인범은 없다는데, 과연 그래? 연쇄 살인은 누군가 주장하듯이 도시 및 자본주의 발달과 연결된 그 무엇일까?(에릭 라슨의 베스트셀러 [화이트 시티]는 이 점에서 도시가 창출해내는 이성과 광기의 이중주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풍경화를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유영철 등의 범죄에서 드러나는 바, 최근 급증하는 한국의 연쇄살인적 징후를 담게 된 범죄들은 역으로 한국의 자본주의 발달 정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나? 문득, 한국에 범죄사를 이런 시각에서 살펴본 책이나 연구는 없을까 궁금해졌지만 취미로 파고들기에는 너무 깊이 들어가는 탐사라서 레슬러의 책을 덮은 후로는 쭉 잊고 지냈다.

이런 기억들이 되살아 난 것은 최근 표창원 교수의 책이 출간되고 난 이후였다. 원래 TV 고발 프로에서도 살인 관련 프로를 꼼꼼히 챙겨봐서인지 그의 얼굴이 그닥 낯설지 않았는데, 차분한 말투와 학자적인 신중함을 이미 인상깊게 눈여겨 봐둔 터였다. 한마디로 이 책은 연쇄살인을 한국의 맥락에서 (그것도 대중과 호흡하면서) 접근하려는 하는 꽤 야심적인 시도이다. 대개, 이런 대단한 시도들은 처참하게 실패하기 마련이어서 다소 걱정이 앞섰지만, 적어도 찌는 듯한 여름 날씨를 잊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며 책을 집어들고야 말았다.

도입부로 들어간 최인구 사건을 제외하면 책은 연쇄살인에 대한 이론과 제반 개념을 정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의 연쇄살인을 역사적으로 풀이해가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한국의 연쇄살인'사史'라고 이름 붙여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앞 부분에 해당하는 이론적 접근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것은 연쇄살인(serial murder)와 연속살인(continuous murder) 간의 개념 정리이다. 분명한듯 하면서 번역 자체에서부터 제법 애매한 개념인데, 저자는 이 부분을 꽤나 명쾌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연속살인은 단속없이 감정의 흥분상태가 지속되면서 이루어지는 "spree murder"에 가깝다. 그에 반해 연쇄 살인은 하나 하나의 살인 사건이 독자적인 계획과 실행의 단위 지니면서 중간 중간의 냉각기를 거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연쇄 살인에 대한 널리 알려진 기준과 조건들을 나열하며 대중 문화를 통해 과장되고 왜곡된 통념(증거를 남기지 않는 치밀한 살인, 특이한 시그니쳐 등)에 대한 일정한 교정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 역시 눈여겨 봐둘만 하다. 레슬러의 책처럼 연쇄살인범에 대한 프로파일링은 그들에 대한 심리 분석을 통해 범인의 성격에 대한 공통점을 추려내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레슬러의 책에도 그 과정과 연쇄 살인의 특징이 어느 정도 서술되어 있으나 이 책이 보다 정돈되고 간결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도 책의 장점이다. 하지만, 심리학적 접근에서 흔히 접하기 쉬운 요인 나열식 분류와 서술 방식은 뭔가 결정적인 한방이 빠진 다소 맥빠진 느낌이다. 이러한 느슨함은 저자의 한계라기 보다는 아직까지 연쇄살인범의 재구성에 있어 보다 온전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프로파일링 기법의 한계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책에서 프로파일링 기법의 현단계와 그 쟁점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는 점이 그래서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프로파일링 기법이 더욱 많은 사례와 보다 꼼꼼한 항목으로 정리 분류되는 단계를 겪는다면, 통계학적인 방법을 통해 양적으로 보다 정교한 접근을 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즉, 프로파일링의 다양한 세부 항목들과 범죄의 성향 수법들 및 각종 전과 및 범죄 자료들을 통계학적으로 연관시키는 시스템이 가능하다면 전문가들의 질적 진단에 의한 오류를 최소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 말이다. 책에서도 프로파일링이란 것 자체가 수사에 혼선을 초래하고 되려 범인의 검거를 방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럽게 추구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지만, 이를 보정하기 위한 별다른 대책이나 방법이 소개되어 있지는 않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궁금하다면 범죄심리학 문외한이 너무 앞서 나간 것이 될까?

좌우간, 이렇게 잘 정리된 이론부를 지나고 나면 1970년대부터 2000년대의 유영철까지 연쇄살인범죄의 궤적들이 빼곡하게 수록된 역사로 나아가게 된다.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건들의 내막을 알게 되면서 느끼는 경이와 두려움에 책장을 정신없이 넘기고 말았다. 저자의 말처럼, 이렇게 생각보다 많은 연쇄살인 사건들 앞에서 화성 사건은 되려 너무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우리에게 유달리 사회적 균열의 틈새에 놓인 찰스 맨슨형의 연쇄살인자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실제 부자들에 대한 공격이라는 형태로 실현되었건 아니면 엉뚱하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우회되었건 간에, 사회에 대해 느낀 소외감이 그들의 범죄에 주요한 동기이자 뒤틀린 정당화였다는 점은 일견 놀랍기도 하다. 하지만, 어찌 보면 급속한 사회이동의 자취에 남겨진 집단 정신병의 상흔인가 싶어 뒷맛이 씁쓸하다.  

그간 우리가 언론에서 단편적으로 때로는 선정적으로 접해온 사건들에 대해 저자가 많은 자료를 접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레슬러의 책에서 보듯 프로파일링의 핵심이 실제 범인과의 면밀한 접촉을 통한 이론화/유형화에 있다고 할 때, 책의 서술이 수사 자료 및 알려지지 않았던 후일담에 대한 재구성과 분석에 치우친 듯한 느낌은 꽤나 아쉽게 다가온다(실제로 저자가 범인들에 대한 프로파일링의 기회를 가졌는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범인에 대한 심리분석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할 뿐 뇌리의 현들을 튕겨주는 듯한 탄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저자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레슬러는 자신의 책에서 연쇄살인자를 형장의 이슬로 허무하게 보내기보다 이들을 거름삼아 연쇄살인범을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러한 프로파일러의 호소는 그것이 공익의 차원에서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현행의 법 체계 내에서 제도적으로 수용되기도 힘들 듯 하거니와 직접적인 형태의 복수를 원하는 대중의 불같은 정서와도 부합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학자의 길을 걷기 전에 경찰에 직접 몸담았던 저자가 들려주는 수사 과정의 이모저모는 <살인의 추억>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아서 인지, 황당함과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한다. 관할 구역 간의 보이지 않는 텃세와 내부의 정치적인 고려사항 혹은 쓸데없는 시국관리에 치안력을 낭비하는 동안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거나 한번 잡았던 범인들을 종종 놓치게 되는 대목들에서는 자연스레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반면, 이 모든 악조건들 속에서도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가 분했던 시골 형사의 자세 마냥), 발로 죽어라 뛰어 범인을 잡아내고 말았던 대한민국 형사들의 근성 앞에서는 솔직히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참고로 말하면, <살인의 추억>에 등장하는 형사중 누구편이냐고 묻는다면 공식적으로 서울 형사 편이라고 말하겠지만, 심정적으로는 시골 형사라고 고백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어쨌든, 이래저래 아쉬운 점은 있지만 [한국의 연쇄살인]은 전체적으로 균형 잡혀 있으며 유쾌하지는 않을지라도 재미 삼이 읽기에 나쁘지 않은 책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문득 미셸 푸코의 근대에 관한 연구의 메스가 (정신)병원을 향해 있음을 떠올리게 되었다. 과거 병원이야말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재판소와 같은 역할이었고, 바로 그 작용에 근대와 함께 성립한 이성의 권력이 함께 작동하고 있었다고 그는 보았다. 아마도 한국의 연쇄살인범에서 한국의 근대화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만들어낸 권력 작용의 집단적인 병적 징후들에 대한 '고고학적인 발견'을 이룰 수 있지는 않을까 공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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