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8. 19.
















파쇄읽기. 파과의 팬들을 위한 팬서비스까지만 기대하고 읽으면 좋을 작품으로 읽혔다. 건조하면서 긴박한 전개와 만연체의 조화는 파과에서 맛보았던 그대로.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을 이어서 읽는다. 일요일에 스캔론의 계약주의를 읽었고 일기에 요약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잊어버리고 그냥 올려버렸다. 오늘 읽었던 부분은 1부에서 배운 윤리 이론(덕 이론, 공리주의, 의무론, 계약주의)을 토대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초점을 둔다.


24. 8. 20.














백온유 작가의 경우 없는 세계를 읽다. 유원을 읽을 때부터 관심 있게 보았던 작가였고 이어서 읽었던 페퍼민트도 감탄하면서 읽었기에 이번 작품은 어떨지 호기심이 있었다. 가출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세계의 대한 묘사는 생생했고 캐릭터의 개성도 살아있는 느낌(성연은 청소년 소설에서 자주 보았던 익숙한 느낌이었지만). 다만 읽던 중 아이들의 악착같고 너덜너덜하고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 없는 하루하루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24. 8. 21.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2부까지 마침. 윤리적 피로감, 오버톤 윈도, 무임승차자 사고실험, 실패를 받아들이고 나아가기.















『교수처럼 문학 읽기』의 머리말과 서문까지 읽음. 개정판을 사서 (읽지 않은) 구판을 처분할까 생각했는데 머리말을 읽다가 구판도 남겨두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어떤 것이든 쟁여놓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24. 8. 23.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읽기. 피터 싱어로 시작한 윤리 딜레마와 너무 복잡해진 사회에서 윤리적으로 행동하기의 어려움에 대한 문제.


이러한 윤리 딜레마는 우리 세대에게 특히 두드러진다.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어떤 정보든 구할 수 있는 시대라서 의도치 않게 나쁜 결정을 내리면 죄책감을(아니면 망신을) 피할 길이 없다. 기원전 340년에는 개인의 선택이 야생생물 생태계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아무도 몰랐다. 지금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설사 모르는 게 있어도 어딘가에서 잘 아는(최소한 아는척하는) 수많은 사람이 나타나 아주 친절하고도 철저하게 우리의 죄를 일깨워준다. 윤리 딜레마의 2단계 공격이라 할 수 있겠다. 윤리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시도한 행동이 의도치 않게 또 다른 윤리 딜레마를 불러오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거야말로 엄청나게 배배 꼬인 프레첼 같은 상황이다. 거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접근법을 들고 와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리스토텔레스, 할 수 있는 모든 덕을 끌어모아 행동했어요. 그러고도 여전히 배를 걷어차일 가능성에 대체 얼마나 신경 써야 하나요? (262쪽)

24. 8. 27.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읽기. 뒤로 갈수록 무거운 이야기들도 나오기 시작한다. 실존주의를 지나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야기. 출발선이 동등하지 않기에 모두가 이런 윤리적 질문을 오랫동안 고민해볼 여력이 없을 수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운의 가능성을 인정할 것. 그리고 롤스의 무지의 베일. 마지막 챕터만 남겨두었고 제목은 '사과하기'이다.


'능력주의'를 적극 찬양하는 현대 서구의 사회정치 사상에는 계통이 있다. 이들은 모든 사회는 능력주의 사회여야 하며 어떤 이유로든 한쪽 집단의 이익에 치우친 법을 통과시키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대학 입학에서 소수집단을 우대하는 법은 사라져야 하고 성평등 인력 특별법도 발의해서는 안 된다. 뛰어난 사람은 알아서 눈에 띄게 마련이다!

이들(보통 이성애자이고 부자에다 백인 남성이며 책장은 아인 랜드 소설로 가득하다)은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회가 노동과 개인 의 성공을 제대로 평가하고 축하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사회 속 사람들이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쉽게 잊는다. 그렇지 않으면 뛰어나다고 그냥 눈에 띄지는 않는다. 원래부터 정상에 가까웠던 사람들이 먼저 정상에 오르는 상황에서는 능력주의 개념은 산산조각 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가짜 능력주의다. 가짜 능력주의 사회는 아버지에게 10억 달러를 물려받은 메이플라워 가 남성이 이뤄낸 업적과 가혹한 인종차별법을 시행 하는 주에서 레드라인 지역(미국에서 인종에 따라 주거지를 나누고 표시해 그 지역 주민에게는 대출이나 모기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차별 관행-옮긴이)의 가난한 집에 태어난 흑인 여성이 이룬 업적 사이의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는다(오래된 속담처럼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선수는 결승선 10미터 앞에서 출발하고 또 다른 선수는 위원회의 구조적 편견 탓에 경주에 참여하지도 못하는 상황을 능력주의라고 부를 수는 없다. (326-327쪽)


아이들이 무언가를 나누려고 할 때(케이크든 M&M 초콜릿이든 무엇이든) 부모는 한 아이에게 그것을 나눈 다음 다른 아이에게 먼저 고르게 하라고 이야기한다. 무지의 베일은 더 철저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와 같은 개념이다. 롤스는 사회 규칙을 정할 때 '원초적 상태original postion'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자가 사회에서 맡을 역할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연봉이나 그 밖의 사회자원을 분배할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주장이다. 규칙을 정할 때 앞으로 무엇이 될지 모르는 채 무지의 베일 뒤에서 상상해보는 것이다. 모두가 배아 상태일 때로 돌아가 앞으로 성인이 될 사람들을 위해 규칙을 정하는 셈이다. 롤스는 이렇게 함으로써 상당히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며, 나아가 그 사회에서는 모두가 그것을 정당하다고 여길 것이라고 한다. (342쪽)


롤스의 주장은 스캔론과 사촌지간 정도인 것 같다. 스캔론은 합리적인 사람이면 누구나 거부하지 않을 규칙을 제안한다. 그리고 롤스는 우리가 세상에 나와 돌아다니고 무언가를 하기 이전의 상태에서 시작하기를 원한다.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규칙을 정한다면 분명 모두가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지의 베일 뒤에서는 누구도 상황을 미리 알고 통제할 수 없다. 이 문을 통과해 어떻게 될지는 똑같이 아무도 모른다. 스캔론의 개념은(파멜라 히에로니미가 알려주었다) 롤스와 거의 대칭을 이루지만 그 과정의 후반부에서 살짝 달라진다. '합리적인 사람' 공식 역시 비슷한 상황을 논하긴 하지만 문을 이미 통과해(비유다) 삶이 어떻게 흐를지 알고 난 후라는 점이 다르다. 어떻게 될지 안 이후에도 자신의 삶과 필요, 욕구를 타인의 것과 동등하게 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점에서 스캔론이 좀 더 낙관적이다. 행운을 더 누린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리라는 전제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장에서 논의한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롤스의 주장이 더 효과적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오직 자신만의 공으로 성공을 이뤘다고 생각하고 그 삶에 운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무시하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 현실 말이다. (344쪽)


24. 8. 28.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완독. 마지막 챕터는 맺음말처럼 읽힌다. 사과하기의 중요성은 결국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매 순간 실패를 겪지만, 이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기 위한 과정에 사과가 있기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 진짜 맺음말은 자신의 아들과 딸에게 보내는 당부로 끝난다.


사과가 어려운 이유는 사과라는 행동을 하는 순간 겪는 것, 즉 다른 사람 앞에서 잘못을 인정할 때의 민망함과 굴욕감 때문이다. 치유와 성장, 문제 해결이라는 장점은 보기 어렵다. 사과가 그 자체로 '윤리적' 행동은 아닐 수 있지만 내 생각에는 거의 비슷하다. 윤리적 행동의 핵심이 타인을 향한 배려와 지속적인 노력이고 실패는 피할 수 없는 결과라면 사과는 그 실패의 퇴직자 면접exit interview(퇴직 예정자와 면접을 진행해 퇴직 원인을 밝히고 조직 내 기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옮긴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지? 왜 그렇게 했지? 그게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지? 사과할 때의 그 불쾌한 감정, 그러니까 우리가 잘못한 상대에게 잘못을 시인할 때 얼굴이 붉어지며 수치심이 몰려오는 건 좋은 것이다. 잘못으로 인해 고통을 느낀다는 의미이자 잘못을 부끄러워한다는 뜻이 아닌가(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명예를 모르는 것이란다). 이 느낌은 감기 증상과 같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치유하기 위한 몸의 반응이다. (351쪽)




24. 8. 29.
















『서울리뷰오브북스 14호』 뒤늦게 읽기. 뉴스레터에서 곧 15호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읽기 시작. 이번 특집은 '믿음, 주술, 애니미즘'이다. 시작부터 王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무당에 대한 민족지 서술을 다룬 서평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전통적 주술 문화가 여성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제주도의 굿이 4.3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소환되는 장으로서도 기능했다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 특집 리뷰까지 읽기를 마쳤다.



24. 9. 1.

에버노트에서 업노트(UpNote)로 갈아타며 에버노트의 기록들을 옮겨보는 중. 2주치 일기들을 정리하면서 보니 휴식기가 끝나고 다시 일을 시작했음이 실감난다. 독서량은 현저히 줄었고, 메모량은 훨씬 더 줄었다. 점점 단어 위주의 글쓰기가 늘어가고 주술 호응이 맞지 않는 문장도 자주 눈에 띄어 오랫동안 손을 봐야 했다. 읽으면서 바로바로 기록을 하기 때문에 주로 폰으로 메모를 하는 것도 이러한 글쓰기 방식과 관련이 있을까? 시간을 좀더 잘 쓰고 싶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고 무언가를 꾸준히 실천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것도 체력과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걸 실감하는 2주 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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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심장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1
조지프 콘래드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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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은 미지의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편집증적 망상이 아닐까. 다양한 프레임으로 읽어낼 수 있지만, 오랫동안 남는 것은 어둠의 갑갑함을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묘사와 그것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말로의 서술. 어둠 같은 문장들 사이에서 빛도 없이 헤매다 빠져나온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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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8. 12.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의 의무론 부분을 다 읽음. 칸트의 의무론에 대해선 중학교 시절 배웠고 그때는 너무 딱딱하고 예외적인 상황에 적용이 어렵다 정도로만 기억했었는데, 실제 저자가 드는 예시나 트롤리 딜레마에 적용해보니 더 갑갑한 이론이었다. 굿 플레이스의 치디를 보니 더더욱. 굿 플레이스는 시즌 3를 순항 중.




24. 8. 16.















조금씩 어둠의 심장읽기. 약속 가는 길 지하철에서 보다가 카페에서 시간 기다리며 본문 완독. 등장하기 전까지의 커츠는 신비의 베일에 싸인 주술사와 같은 이미지였다면, 등장한 이후의 커츠는 광기 그 자체인 모습으로 읽힌다. 신비로움과 광기는 멀어 보이지만 결국 통한다는 느낌처럼.


24. 8. 18.

굿 플레이스시즌 4 피날레를 보았고, 이후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 처음엔 자신들이 굿 플레이스에 가기 위해 좌충우돌했던 네 인물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생각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마무리가 있었나 싶다. 사후 세계의 모습, 어떤 행동이 윤리적인지에 대한 질문,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 등의 문제를 가볍고 코믹하게 풀어내지만, 마지막까지 보고 남는 것은 '그래서 지금 우리는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하며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 무엇이 '더 좋은 삶'인가라는 질문 같기도 하고, 프로그램의 제작자들은 그 답을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take it sl'eazy." 살면서 사소한 실수들을 하겠지만, 그것이 인간적이고 실수들을 통해 성장하는 것.

https://blog.naver.com/iio7yun/222242612309 

(└굿 플레이스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 있음)



어둠의 심장의 해설 부분을 다 읽음. 책을 이번에 처음으로 읽으면서 내내 느낀 것은 미지(未知)의 숲속을 대변하는 어둠의 이미지가 주는 갑갑함, 그 어둠을 더욱 갑갑하게 만드는 말로의 서술 방식이다. 황유원 번역가의 해설과 정희진 서평가의 발문이 작품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정희진 서평가는 뭔가 더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지면의 한계로 글이 갑자기 끝나버린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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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8. 5.















집에서 읽던 속죄를 지하철에서 마저 읽는다. 2부는 장의 구분 없이 로비의 시점으로 쭉 전개된다. 아수라장 같고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전장에서, 브라이어니의 속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밖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스타벅스에서 본문을 완독했다. 말미에 가서 만난 놀라운 반전. 그리고 그 다음에 만나는 또다른 반전. 이 상황에서 브라이어니의 속죄는 진정한 속죄일까? 아니면 자기 위안을 위한 것일까?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문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수많은 물음표가 생기고, 소설의 여운은 오래도록 남았다.


빛과 돌과 물에 대한 장황한 묘사, 세 명의 관점으로 나뉜 서술방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끝없이 계속되는 고요. 그 어떤 것도 그녀의 비겁함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녀는 정말로 남을 모방한 소위 현대적 글쓰기 방식 뒤에 숨어서 의식의 흐름그것도 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속에 죄책감을 익사시킬 수 있다 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녀의 소설에 없는 것은 그녀의 삶에도 없었다. 그녀가 삶에서 정면으로 부딪치길 원치 않았던 것은 소설에서도 빠져 있었다. 진정한 소설이 되기 위해 빠져서는 안 될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소설의 척추가 아니었다. 그녀 자신의 척추, 그녀 인생의 척추였다. (458)


24. 8. 6.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쇼펜하우어 부분을 읽었고,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을 읽기 시작. 작가가 드라마 굿 플레이스의 작가인 것을 알고 시리즈가 궁금해졌다. 웃기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머리말부터 유머가 넘친다.




└젖기 전에 피자를 먹으면 되잖아!


24. 8. 7.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에피쿠로스 챕터 읽기. 에피쿠로스의 쾌락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24. 8. 8.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시몬 베유 챕터를 읽음. '관심'이라는 키워드가 잘 들어 오지 않는다. 생각을 유보하고 일단 기다리는 것? 조급함에 판단을 내리지 말고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는 게 내가 이해한 정도다.



24. 8. 9.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간디 챕터를 읽음.



속죄의 밑줄 부분을 정리함. 리뷰를 쓰고 싶은데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아직까진 모르겠다. 오해와 혼동, 속죄의 진정성과 완성의 여부, 전쟁, 현실에서 문학의 역할 등등.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의 저자가 제작한 굿 플레이스를 계속 보고 있다. 미국식 유머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지만 재치있는 설정과 캐릭터들, 그리고 재미 때문에 계속 보게 된다. 윤리적인 문제를 어떻게 이리도 가볍게 풀어내는지도 감탄스러운 부분. 짧게 요약하면, 살면서 나쁜 행동만 하고 살던 엘리너(크리스틴 벨)가 위쪽(?)의 실수로 착한 사람만 죽어서 간다는 '굿 플레이스'에 떨어지게 되고, 그곳에서 만나는 인물들과 함께 벌이는 별별 소동이 주된 내용.


 

출처: IMDb


24. 8. 11.

굿 플레이스시즌 2까지 시청을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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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7. 29.














『여름의 끝』 계속 읽기. 엘리와 플로리언의 관계를 보며 안타까움과 쓸쓸함을 느낀다. 처음부터 기울어진 관계는 어떻게 끝날까. 작가는 이 안타까운 관계와 인물들의 감정을 휘몰아치듯 쓰지 않고 담담하게, 그래서 더 쓸쓸하게 쓴다. 지하철역에 내려서 약속을 기다리며 완독. 끝이 이렇게 될 거라곤 짐작했지만 끝을 보니 더욱 쓸쓸한 마음.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려는 그 풍경에서 한국 제목이 더욱 실감났다.



24. 7. 30.
















알라딘 중고서점에 책을 처리하러 방문. 알라딘의 매입가와 판매가는 항상 불만족스럽지만 책을 둘 공간을 마련하려면 불가피한 과정이다. 다 처리한 뒤 돌아보다가 책을 또 구입하고 마는데...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와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알라딘 옆 스벅은 사람이 차 있어서 다른 카페로 건너왔다. 『에로스의 종말』 마저 읽기. 한병철의 책은 항상 부정성의 소멸과 긍정성의 과잉, 성과사회, 자기착취 등의 개념들의 자장에서 맴돈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 기억할 부분은 절대적인 것에 대한 헤겔의 정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절대적인 것은 결론이다 -> 맺는 능력), 사랑과 죽음의 친연성, 자본주의와 포르노그라피(전시화와 비속화, 그리고 아감벤 까기) 등등... 투비에 장별로 난잡하게 정리를 하고 있는데(기억하기의 일환으로), 저번에 쓰다가 두 번이나 날려먹은 적이 있어 조심스럽다.



24. 7. 31.

새벽 수영을 처음 다녀온 날(발차기만 한 시간 동안 했던 날). 잠깐 자고 일어나서 『에로스의 종말』 마저 읽기. 사유의 중요성(부정성)을 강조하는 것은 심리정치와 닮았다. 플라톤에 대한 해석은 새롭고 도전적. 완독하고 투비에 정리도 마침.
















『속죄』 읽기 시작. 가계도를 만들면서 봐야 하나 싶을 정도로 한 집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24. 8. 1.
















성수 가는 지하철에서 이북 읽기. 크레마S를 오래 전에 생일 선물로 받았는데 익숙해지지 않아 이북도 꽤나 구입해놓고 서랍에 둔 지 오래되었다(50년 대여 이벤트가 뜰 때마다 대여도 해 놓았는데 말이지). 이북에 친숙해질 겸, 『속죄』는 너무 무겁기도 하고 해서 챙겨오는 길에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읽기. 가볍게 주제를 풀어가는 저자의 글솜씨가 익살스러워 웃음짓게 된다.

















성수를 돌아보다가 너무 더워져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와 마저 읽는다. 같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나도 읽었는데 왜 난 저런 구절을 본 것 같지 않은지?




24. 8. 2.

늦은 점심을 먹고 필름도 맡기고 필름카메라 수리도 맡기러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에 이북으로 마저 책 읽기.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내가 아는 철학교양서라기보다 저자의 철학자 (심연) 탐방기에 가깝다. 각각의 철학자에 대한 주제를 잡고 이를 이정표 삼아 자신의 삶에 적용해보는 방식. 소크라테스는 대화였고, 루소는 산책이었고, 소로는 (어슬렁거리며) 보기였다.


필름카메라를 맡기고 문득 이리카페를 오랜만에 다시 가보자는 생각에 다시 지하철을 탄다. 아주 운 좋게 내가 들어올 때 나간 일행이 있어 남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더위를 식힌다. 그리고 『속죄』 읽기.




24. 8. 3.














블루도어북스 방문. 들어가자마자 아늑한 공간 인테리어에 반하고 이리저리 둘러보다. 책들과 소품들도 너무 아름답고 읽을 자리들도 아늑하다. 책에 온전히 파묻힐 수 있게 해주는 직원들의 친절함까지. 중간중간 인센스? 디퓨저를 실은 카트를 끌고 한 바퀴를 도신다. 가져간 책 말고 서가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쭉 읽음. 해설 전까지 읽고 시간이 다 되어서 나왔다. 해설을 못 읽은 것은 아쉽지만 이북 어딘가에 전집 해설 모음집이 있었던 것 같은데...






24. 8. 4.

집에서 쉬며 『속죄』 1부를 다 읽음. 세실리아와 로비, 브라이어니 사이에서 일어난 사소한 실수와 오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벌어진 비극. 이렇게 긴 분량으로 켜켜이 쌓아올린 비극의 총성이 이제 울렸으니,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읽을수록 가장 중요한 대목은 수요일에 읽은, 혼동과 오해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덧) 2주차 일기는 아이폰 메모에 적었으나 컴퓨터로 옮길 때 어려움이 있어 이번엔 에버노트로 적어 보았다. 확실히 휴대폰과 컴퓨터를 오갈 때 편리하여 계속 사용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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