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들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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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까지는 단편집이기 때문에 이 제목에 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처럼. 맨 앞에 실린 작품이 모르는 사람이어서 더욱 그런 확신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작품을 전부 다 읽은 다음에는 괜히 책의 제목을 그렇게 붙인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각기 다른 여덟 편의 단편들은 모두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들은 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 아는 것이 없었던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잘 모른다는 진실에 직면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부자 관계일 텐데, 이승우 소설에서 행적과 성격이 베일에 싸여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드문 소재가 아니다. 다만 이전까지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버지가 일반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에 열중하거나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이번 단편집에서 나타나는 아버지의 모습은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로 그려진다는 게 차이점이다(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앞에 실린 네 편이 모두 아버지의 숨겨진 면모를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은 여전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당신을 이해한다는 단정 아래 만들어진 이해는 사실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해하지 않는 것보다 위험하(21), 이 이해가 인물들을 진실이라는 이름의 잔혹한 현실로 내몰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내가 당신을 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거나(모르는 사람, 복숭아 향기), 끝까지 진실을 부정하며 자신이 세운 이해의 벽에 그를 가두거나(윔블던, 김태호), 부정의 끝에 이르러 그의 전철을 밟기도 한다(강의).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당신이라는 하나의 인격을 온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를,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는 기이한 일(161)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를 읽는 동안 종종 실감했다. 그것은 누군가가 겪었을 고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세상은 견디는 것이다라는 아버지의 말은 깊은 울림을 낳는다. 이해한다는 것 역시 실패라는 귀결을 낳을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견디며 나아가야 한다는 울림을.

 

인물들이 겪는 여정은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여정의 종착점에서 얻는 부분적인 이해는 이해하려고 했던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모르는 사람에서의 이다. 아버지의 삶에 대한 추적에서 그가 얻은 것은 남편이 있는 동안에도 그의 부재를 겪어야 했던 의 어머니다. 생의 이면에리직톤의 초상에서 보였던 성()과 속()의 관점을 가져오면 자신의 운명을 좇은 아버지의 삶이 성()이고 어머니의 삶이 속()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 발견한 것은 평생을 속()의 풍파 속에서 살았던 어머니에게 발현되는 성()이다. 이것은 작가가 앞서 언급한 두 장편에서 일관되게 말하던 ()은 속()의 한복판에 있다는 관점과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넘어가지 않습니다에서도 마찬가지다. 두려움 속에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거부하던 그녀는 어떻게든 무료 와이파이를 통해 전화를 쓰려는 틴 카우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 그녀가 이해하게 되는 것은 틴 카우가 아니라 그녀 자신, 정확히 말하면 그를 마주하면서 세균처럼 퍼졌던 두려움의 정체다. “세상을 견딘다는 것은 나를 견딘다는 뜻이기도(35) 한 까닭이다. 자신의 두려움이 죄책감과 얽혀 있음을 이해하고 그를 안으로 들이려는 그녀와 절대 집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으려는 그의 모습은 안타까움과 슬픔을 자아낸다. 생뚱맞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장면을 보며 어떤 문장을 생각했다. “네 탓이라고 누군가 노려볼 때 그게 왜 내 탓이냐고 항변하고 싶은데 생각하고 보면 내 탓인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삶. 멀쩡하게 사는 것 같다가도 불규칙한 주기로 돌아오는 혜성 같은 그런 심정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

 

거칠게 정리하면 소설집 안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자신이 잘 알지 못했던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들이다. 그 과정들은 작가가 동어반복으로 직조하는 문장의 힘을 얻어 치열함과 깊이를 더한다. 누군가에겐 군더더기로 보일 문장들을 사유의 깊이로 구축할 줄 아는 그의 문장은 언제나 감탄스러운 것이지만, 그 솜씨는 단편보다 장편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읽는 동안 자주 했다. 그 생각은 밀어두었던 그의 장편소설들로 눈을 돌리며 나를 재촉한다.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를, 나아가 작가의 작품을 읽는 자신을 이해하는 여정이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 이해는 결코 완전해질 수 없다는 것, 그것을 견디는 것도 이해의 한 과정이라는 것도.

 

 

(*) 황정은, 작가노트, 2014 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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