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장소만 적절하다면 언제라도 괜찮죠. 잠자는 시간 빼고는.. 사실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소파인데, 등을 푹 기대고 다리를 쭉 편 채로 책을 읽을 때 가장 잘 읽힙니다. 여기에 커피 한 잔만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까페나 도서관 등에서도 자주 책을 읽지만 저에게 책을 읽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주변의 소리이기 때문에, 시끌벅적한 공간에서는 잘 읽지 않습니다. 조용하기만 하면 지하철 안에서 서 있는 동안에도 책은 읽을 수 있죠. 그래도 소파가 제일 낫습니다.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거의 종이책을 읽습니다. 전자책보다 더 집중이 잘 되고, 전자책은 책의 형태가 아니라 텍스트 파일 같이 변형되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라서.. 움베르토 에코의 퍼포먼스가 보여주듯, 시간이 지나도 종이책이 전자책을 넘어서지는 못할 겁니다. 책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다면야..

독서 습관은.. 예전에는 책을 굉장히 깨끗하게 읽었는데, 문득 '어차피 이 책들을 내가 팔지도 않을 거고, 누구한테 주지도 않아 온전히 내 책이 될 텐데 이렇게 애지중지 하듯 모실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불어 점점 기억력이 나빠지고 집중력도 떨어지기 시작해서, 책장을 접고 밑줄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치기 시작하니까 거침없이 긋게 되더라구요.. 밑줄은, 일단 문장이 마음에 들면 치고, 책을 읽으면서 기억해야 할 부분이면 치고, 나중에 따로 정리할 때 참고해야 할 부분에 칩니다. 그리고 밑줄을 친 페이지는 항상 접죠. 보통 밑줄 친 페이지의 아랫부분을 접는데, 읽으면서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거나, 윤문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부분은 윗부분을 접습니다. 이렇게 접고 밑줄을 쳐도 나중에 보면 '내가 여기에 왜 밑줄을 쳤지..?'하고 고민할 때가 많아서 이따금 포스트잇(그 뭐냐.. 큰 거 말고 책갈피처럼 표시할 수 있는 그거요)에 핵심어만 적어놓고 붙여놓기도 하죠. 나중에 그걸 보고도 기억나지 않을 때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Q3. 지금 침대 머리 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지금 제 침대에는 골격이 없습니다. 사실 침대가 아니라 그냥 매트리스... 침대에 엎드려서 책을 읽는 시간이 거의 없어지기도 했고, 요즘 아침하고 밤에만 집에 있는 일이 많다보니, 집에서는 책상에서 잠시 읽다가 올려놓고 침대로 가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지금 제 책상에는 카뮈의 『시지프 신화』, 페소아의 『불안의 책』, 우석영의 『철학이 있는 도시』, 그리고 『로쟈의 인문학 서재』가 놓여 있네요. 『시지프 신화』를 제외하고는 아직 책갈피가 꽂혀 있습니다. 페소아 책은 읽기 시작한지 세 달이 다 된 거 같은데 아직도 반을 넘기지 못했네요. 『시지프 신화』는 읽으면서 밑줄 친 부분을 정리하려고 놓아둔 건데, 너무 많아서 엄두가 안나요. 아마 오늘도 이 문답 다 적으면 또 미루겠죠...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일단 전집별로 구분을 해놓고, 그다음엔 같은 작가들끼리 구별을 해놓죠. 이렇게 놓다 보면 가끔씩 난감한 경우가 생기는데, 카뮈의 다른 책들은 전부 전집(책세상)으로 사놓고 『페스트』만 민음사본으로 사 놓은 경우라든가, 새로 나온 『이방인』 개정판이 전집과 다르게 양장본이라든가, 아멜리 노통브처럼 문학세계사랑 열린책들 판본이 뒤섞여 있는 경우도 있죠(이건 디자인도 너무 확 달라서 난감합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작가를 1순위에 두고 정리를 합니다. 요즘엔 이런 고민이 적은 편인데, 난감한 일이 생기지 않아서라기보단 책을 꽂을 공간이 점점 줄고 있어요. 책 위에 책을 얹을 수밖에 없는... 정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지금은. 저는 책을 헌책방에 다시 내놓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간소하게 줄이는 일 같은 건 없을 거 같네요.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책을 딱 한 번 팔아봤습니다. 되게 후회하고 있지만, 다시 사진 않았어요..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음... 얼마나 어렸을 때인지.. 어렸을 때 집에 90권짜리 동화책 세트가 있었는데 엄청 많이 읽었죠. 몇 번씩이나 계속.. 그때부터 책 읽기를 취미로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과를 갔을지도...ㅎㅎ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인데, 그 당시에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었죠. 자신의 상상력을 이렇게까지 밀고 나가면서 지식이 채워져 있는 소설을 처음 봤으니까.. 그 덕분에 본격적으로 책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고, 독서 경험이 한 단계를 넘어서는 계기가 되었죠. 지금은 더 이상 팬이라고 하기 그렇지만, 그 때 그 경험은 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경험입니다..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진짜 열심히 찾아봤는데, 없네요.. 너무 뻔한 사람이라 그런가.. 전공서적이나 수험서 아니면 (인)문학 서적밖에 안 보이네요. 그나마 놀랄 만한 건... 고등학교 졸업 앨범? 표지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노려보고 있어요..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전에는 작가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썼을까, 하는 생각이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고 그랬는데, 지금은 별로 그런 생각이 들지 않네요. 물론 가끔 책이 정말 이해가 안될 때면 만나서 묻고 싶을 때가 있긴 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따지면서.. 그럴 때를 제외하면 딱히 만나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작가의 말을 듣는다고 해서 몰랐던 내용을 이해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셰익스피어는 만나보고 싶네요. 책 내용이 궁금한 건 아니고 그를 둘러싼 논란의 실체를 알고 싶어서.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너무 많은데... 일단 박경리 작가의 『토지』가 있죠. 전권을 사놓고 여태 한 페이지도 안 읽어본... 먼지만 쌓이고 있고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도 있습니다. 여섯 권으로 분권되어 있는 걸 샀는데, 계속 미루고 있어요. 맨날 궁금해하기만 하고... 만약 합본이었으면 엄두도 못냈겠죠? 롤랑 마뉘엘의 『음악의 기쁨』(전 4권)도 계속 미루고 있는 책 중에 하나죠. 전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음악을 들으며 보내기도 하고, 클래식 음악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 싶어서 산 책인데, 이것도 계속 미루기만 합니다.. 그리고 『돈키호테』. 고등학교 때 시공사판(그땐 아직 1권밖에 없었어요)으로 3분의 2 정도까지 읽다가 그만 둔 뒤에(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열린책들판 두 권을 샀어요. 이미 줄거리도 거의 다 잊어버린 상태라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지 읽어야지 말만 하다가, 정작 책은 펴지도 않고 해설서인 『돈키호테를 읽다』를 사버렸죠. 원작을 읽어야 해설서를 읽든지 말든지 하는데...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최근은 아니지만, 이태준 작가의 『문장강화』를 다 못 읽고 덮어 두었어요. 내용이 못 읽겠어서는 (절대!!) 아니고, 읽던 중에 이러저러한 일들이 계속 겹쳐서 몇 달 동안 놓고 있었더니 흐름을 놓쳐버려서... 소설의 줄거리 같은 흐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책을 읽을 때의 흐름을 놓치면 끝까지 못 읽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될 것 같아요. 『문장강화』는 글쓰기를 위한 교과서 같은 책입니다. 글쓰기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왔지만, 이 책만한 글쓰기 교본을 찾긴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어요. 예문이 워낙 오래 전 것이라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도 다 못 읽고 있는 책이지만 아직 내려놓지는 않았는데, 자꾸 읽어야 할 책이 생기다보니 차일피일 미루고 있네요. 외적인 사정도 있지만, 200개의 조각난 소아르스들을 보고 나서 남은 200여 개의 파편들을 읽어낼 생각을 하니 엄두가 안 나기도 하고.. 소아르스의 일기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정서가 좌절, 우울함, 절망 같은 것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음... 일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강의』를 가져가고(안 그러면 계속 안 읽을 것 같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을 가져갈게요. 앞의 두 권은 아직 안 읽은 책이라 그렇고, 최승자 시인의 시집은 위로삼아.. 안 그래도 혼자라서 외로운데 가장 애정하는 시에라도 기대야죠. 이 시집을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외로움의 폭력」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 근데 『마의 산』이 분권되어 있으니까 두 권으로 치는 건가?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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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23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교육열이 높은 어머니의 강요로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안 좋았지만, 다행히 독서의 특별한 재미를 알게 된 덕분에 지금도 책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

아무 2016-04-23 12:03   좋아요 0 | URL
전 강요를 받진 않았지만, 환경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었죠. 집에 장난감이 없었거든요.. 의도하셨던 것 같긴 합니다만.. ㅎㅎ
어릴 때도 활동적이지 않았던 저는 책이랑 티비 보는 걸 제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 덕에 안경을 일곱 살 때부터 끼고 있죠^^;;

2017-12-23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3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