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하지 않으면 자칫 지나치기 쉽다. 몇해 전 태풍에 날아간 간판 자리에 페인트를 찍어 그냥 손으로 서점이름을 썼다. 연남서점(02-302-8407).
덜컹덜컹 미닫이를 열면 작은 종이 딸랑거리고 책 틈으로 주인의 얼굴이 비스듬히 보인다. 사람좋은 표정의 김일균(57)씨의 얼굴에 텔레비전의 형광빛이 어른거린다.


정사각형 사방으로 천장까지 책이 꽂혔고 가운데 정사각 평상 역시 배꼽높이부터 책이 쌓였다. 들어서면서 시계방향으로 어린이책, 시집, 실용서·소설, 학술, 불교·기독교 서적, 참고서 순으로 꽂혔다. 가운데 평상에는 여성잡지와 미술, 기독교 서적이다.


4~5년 나카마(중간상)를 거쳐 1979년 서대문구 연남동에 과일과 센베 가게를 열었다. 한켠에 헌책을 놓고 장사를 하다가 86년께 책방으로 완전히 업종을 바꿨다. 그리고 89년 이곳 북가좌동으로 자리를 옮겨 16년째다. 책을 거두고 팔며 30여년을 꾸렸다. 한학기 남은 막내의 대학 등록금은 은행융자를 받을 참이다.


“그때가 좋았지요.” 주말이면 즐비한 청계천 헌책방 거리. 전공 책을 찾는 대학생과 아이들 책을 사려는 주부들로 붐볐다. 주말이면 목록을 적은 쪽지를 들고 어깨를 부비며 다녀야 했다. 고물상 등을 돌아다니며 책을 모아두면 청계천 사람들이 쓸어갔다. 책을 모으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파는 것 또한 걱정 없었다.


“요즘요?” 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걱정이다. 예전처럼 책을 즐겨 읽고 소중하게 보관했다가 필요없다고 생각될 즈음 헌책방에 넘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쓰레기에 섞여 버려지고 일쑤고 그나마 한두 권씩 흩어져 수습하기 힘들다. 그는 요즘도 하루에 한 차례 근처 고물상 5~6곳을 돈다. 불이 켜진 채 문이 잠겼으면 책을 구하는 중이라고 보면 된다.


1차 책방이니만큼 많이 풀린 베스트셀러나 어린이책이 많은 편. 책 상태는 대체로 고만고만하다가 괜찮은 책이 들어오기는 느닫없다. 때로 강운구 사진집 <우연 또는 필연>이나 학술잡지 <한국학보>가 무심하게 놓여있고, 들춰보지도 않은 듯한 <스칼렛> 원서 소설책이 구석에 숨어 있다.
손님들은 대부분 근처 사람들. 이사갔던 이가 근처에 왔다가 들르면서 아직도 있냐며 반가워한다고 했다. 책값을 치르고 다음에 가져간다며 맡겨놓은 책뭉치도 여럿이다. 구제금융 무렵 맡겨두고 지방으로 내려간 사람이 아직 연락이 없다면서 형편이 아직 안 핀 것 같다고 말했다.


어느 날 젊은이 둘이서 디지털 카메라를 찍고 묻고 하더니 인터넷에 책방을 소개한 모양이라면서, 그 글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위치를 묻는 전화에 “수색역과 증산역 딱 가운데. 증산3교로 불광천을 건너 사거리를 지나면 10여미터쯤”이라고 설명해 주고는 “나는 찾기 쉬운데 남들은 찾기 어려운 모양”이라며 웃었다. 명함 대신 메모지와 볼펜을 넘겨준다. 89년에 500장 찍고는 그만이라면서.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 한겨레신문 05.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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