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기론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에서 가깝고, 어림잡기는 용산 미군기지에 궁둥이를 대고 있다. 우리서점(011-346-1589) 입구 계단은 건물의 나이만큼이나 닳았다.


느른한 오후 혼자서 커피를 타던 주인 남순종(65)씨는 동무를 만나 반가운 듯 한잔을 더 탔다.
18평 2만여권의 책이 가득한데 여느 책방하고는 조금 다르다. 반듯한 책꽂이에 분야별로 깔끔하게 정리돼 있어 잔손이 많이 간 흔적이 역력하다. 인문사회 특히 문학쪽 책이 많고 최근에 나온 책들도 꽤 많다.


“원래 출판사에 딸린 서고였는데 7개월 전에 책방으로 바꿨습니다.”
조금 다른 표정이 바로 그런 탓이다. 글벗사. 어린이책과 문학 관련 책 1천여종을 냈다. <건국대통령 이승만>(이종구 지음)이 최근작이다. 출판사 명패가 달린 작은 방 컴퓨터는 먼지를 썼고 아들이 업데이트한다는 사이트(gulbutsa.co.kr)는 한산하다.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면서 시난고난 출판사는 시들고, 급기야 5~6명 직원을 모두 정리하고 집을 팔아 전세로 옮기며 빚잔치를 했다. 출판사 이름을 유지한채 일감이 들어오면 아르바이트를 써서 책을 낼 따름이다.


책이 좋아서 책동네와 40년 인연. 출판사가 잘 나갈 때는 하루에 책 5권을 낸 적도 있고, 종로 6가 대학천시장에서 신간도매를 하기도 했다.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헌책방을, 오산고교 앞에서 새책방도 해 보았다.


“출판사가 안될 때는 책방을 겸했지요.”
책을 낼 때 참고자료로 쓰려고 모아둔 것과 책동네의 지인들이 가져온 책들이 지금 매장에 나앉은 상품들이다. 출판사로는 돈을 만지기 어려웠는데, 요즘은 하루매상 7만~8만원을 올린다. 큰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문인 친구하고 점심은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놀아도 이곳에서 놀고 일을 해도 이곳에서 일을 한다는 남씨는 차라리 서점이 속 편하단다. 매장 분량만큼 쌓였다는 집안의 책도 이 참에 끌어내와 쏠쏠한 책방으로 만들 계획이다. 특별히 보여주는, 유리문 달린 책장에 귀중본들이 꽂혔다. 값만 맞으면 판다는 샘플들이다. <문학개론>(김기림, 문우인서관, 1946), <시집 호롱>(서창수, 청구출판사, 1951), <푸른 별>(김용호, 남광출판사, 1952), <조선문자 급 어학사>(김윤경, 조선기념도서출판관, 1938) 등 꾸리꾸리하다.


경기에 따라 떠올랐다 잠겼다를 거듭해온 책방. 남씨는 다시 책을 활발히 낼 꿈을 꾼다. 문예 계간지 <문예와 비평>를 11년째 거르지않고 내 온 것도 그런 연유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꿈으로 그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구제금융의 그늘은 그만큼 깊고, 출판동네의 세월은 빨라 늙은 그가 끼어들 곁을 주지 않는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 한겨레신문 05.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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