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 노벨서점(02-308-2701)은 외롭다. 응암동 대림시장을 지나 철물점이 하나쯤 있을 법한 자리에 철물점 같은 간판을 달고 있다. 동네시장의 철물점이 어색하지 않듯 헌책방이 하나쯤 있는 것이 자연스러울 터.  

 
문을 열면 금방 숨이 턱에 바칠 정도로 책이 그득하다. 사방벽과 가운데 쌓인 것을 흐뜨리면 책방공간의 반은 고일 터이다. 처음 마주치는 만화책이 그나마 숨통을 틔워준다. 깐깐한 역사, 국문학 서적이 꽂힌 오른쪽 벽을 돌아 코너 위쪽 <전당서()>에 눈을 줄 즈음 안쪽 구석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책무지 사이에 고인 공기에 숨을 대고 있는 주인 김창렬(69)씨다.


 “책과 가까이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하루종일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도서관에서 빌려온 ‘새책’이 헌책 사이에 끼어 4권이나 됐다. 책방의 책은 독자용이라 건드리지 않는 것일까, 서재의 책은 주인용이라 이미 다 읽은 것일까. 그는 이곳을 책방 겸 서재라고 했고 손님을 독자라고 불렀다.
 그는 4년 전 오거리 근처에서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스무 트럭 분량의 책을 파지간에 넘겼다. 건물 주인이 바뀌면서 갑자기 두 배로 올린 월세를 감당할 길이 없어 넓이를 3분의 1로 줄여 이곳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30여년 넘게 해온 일이려니와 ‘독자들의 열화같은 성원’을 저버릴 수 없어 인연의 거점을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


세월은 책들의 켜로 드러난다. 300부 한정본 <한국의 고활자>, 중국 상하이에서 나온 <전당서>처럼 보는 사람이 제한되거나 값비싼 책과 <국문학개론> <국어사개설> 등 대학 초년생한테 잠시 필요한 범용서만 남는 것. 그 넓은 30년 간극은 소설책과 참고서 만화책이 채운다. <뉴욕 삼부작>(폴 오스터, 웅진), <인간단지>(김정한, 한얼문고)이 언뜻 눈에 띄었다.
주인이 앉은 뒤쪽 작은 공간에는 싱크대와 더불어 꾸리꾸리한 책이 쌓였다. 펼쳐놓아도 보는 사람이 없어서란다. 우선은 보여줄 것이 이것밖에 없다는 듯, 일제 때 나온 격주간 <신학세계> 10여권을 꺼내왔다. 경무국 검열필 도장이 찍힌 이 잡지에는 당시 사진이 한장 꼴로 실렸다.


 “몇해 전 마당에 쌓아둔 고서가 비에 젖어 절반이 떡이 되었어요. 겨우 열다섯 상자를 건졌는데 아직 정리를 못했어요.” 1944~46년 ‘똥지’로 만든 책이 많다면서 정리되면 한번 구경할 만할 것이라고 했다.
요즘은 책가뭄이다. 죽어가는 책을 살리곤 했던 교사 출신의 중간상들이 사라진 탓이 크다. 젊은 사람들 몇몇이 오토바이로 다니는 틈에 나이든 사람이 끼어들지 못한다. 더구나 자신처럼 혼자서 운영하는 책방은 운신할 수 없어 더 힘들다고 했다.

 그는 헌책방이 안 되는 이유로 입시제도를 꼽았다. 문제풀이 위주로 가르쳐 학생과 교사들이 책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 책방도 책방이지만 나라 앞날이 걱정이라고 했다.
 


한겨레신문 05.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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