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본다. 며칠 전 꺼내 겉먼지를 닦아내고 아직 한번도 날개를 돌리지 않았다. 병원에 들렀다가 세차게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을 피해 문 앞에서 서성거린 날이다. 아직은 실내가 더위보다는 추위에 가깝기도 하고 인공적인 바람이 싫은 이유도 있다. 선풍기는 불시에 들이닥칠 손님을 위해서다. 길거나 짧은 여행 뒤의 땀을 식힐. 그럼에도 시선이 자꾸 초록에 가까운 파랑에게 향한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흙 한줌 없는 집이 있다. 그 집을 보면 숨이 막힌다. 결벽증에 가까울 집주인의 부지런함도, 미성의 에누리 없는 말씨도, 맘에 들지 않는다. 나무에서 나뭇잎이 떨어지면 좀 어떤가. 바지런하게 쓸면 좋고 바빠서 혹은 게을러서 골목을 좀 어지럽힌들 어떤까. 살아있는 나무가 계절 따라 잎을 떨구고 열매를 맺는게 자연스런 이치지. 애완동물이나 화초에게 나눠줄 손톱만큼의 인정머리도 없는 이웃은 사절이다. 가식적인 인사치레도 피곤하다. 열매는 부실해도 정성스레 고추나무가 담긴 화분을 관리하는 이웃, 아욱이며 상치며 토란을 심어놓고 뜯어먹는 어떤 이웃, 철마다 이름도 모를 꽃씨를 얻어다 심어놓고 소복하게 올라온 모종이 자라면 몇 뿌리씩 나눠주는 즐거운 이웃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반짝 장마 뒤의 햇살은 얼마나 반가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