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본다. 며칠 전 꺼내 겉먼지를 닦아내고 아직 한번도 날개를 돌리지 않았다. 병원에 들렀다가 세차게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을 피해 문 앞에서 서성거린 날이다. 아직은 실내가 더위보다는 추위에 가깝기도 하고 인공적인 바람이 싫은 이유도 있다.  선풍기는 불시에 들이닥칠 손님을 위해서다. 길거나 짧은 여행 뒤의 땀을 식힐. 그럼에도 시선이 자꾸 초록에 가까운 파랑에게 향한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흙 한줌 없는 집이 있다. 그 집을 보면 숨이 막힌다. 결벽증에 가까울 집주인의 부지런함도, 미성의 에누리 없는 말씨도, 맘에 들지 않는다. 나무에서 나뭇잎이 떨어지면 좀 어떤가. 바지런하게 쓸면 좋고 바빠서 혹은 게을러서 골목을 좀 어지럽힌들 어떤까. 살아있는 나무가 계절 따라 잎을 떨구고 열매를 맺는게 자연스런 이치지. 애완동물이나 화초에게 나눠줄 손톱만큼의 인정머리도 없는 이웃은 사절이다. 가식적인 인사치레도 피곤하다. 열매는 부실해도 정성스레 고추나무가 담긴 화분을 관리하는 이웃, 아욱이며 상치며 토란을 심어놓고 뜯어먹는 어떤 이웃, 철마다 이름도 모를 꽃씨를 얻어다 심어놓고 소복하게 올라온 모종이 자라면 몇 뿌리씩 나눠주는 즐거운 이웃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반짝 장마 뒤의 햇살은 얼마나 반가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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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6-20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풍기 꺼내놓고 정작 한번도 돌리진 않았네요. 선풍기 바람을 직접쐬는 일은 호흡기환자에게 좋지 않으므로 가급적 간접 바람을 쐬시는게 좋습니다. 선풍기 날개 바람따라 미세먼지가 따라붙잖아요. 전, 우몽님의 글을 읽으면 우몽님댁 풍경을 한번 보고 싶어져요. 마당도 있고, 꽃나무도 있고, 뜯어먹을 뭣도 있고(우리집일쎄 ㅎㅎ)이런점에서 아파트 베란다의 화초들은 무지막지한 환경인자를 강제주입당하며 버티고 있는거죠. 아파트 건축물 자재 자체가 문제 덩어리잖습니까. 단독주택이 좋은건 마당이 있고, 흙이 있고, 화분이 아닌 땅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있다는 점이죠. 또 구석에 세워놓은 빗자루나, 물바가지, 살림살이가 자잘하게 널려 있어서 좋아요.

겨울 2008-06-27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제가 좀 늦었죠? 몸살인지 뭔지 며칠 아팠어요. 단독주택의 마당이 있고 나무가 있고 한켠에는 수돗가도 있어 걸레도 빨고 나물도 씻는 그런 집에 살아요. 상당히 낡았지만 올 봄에 페인트칠을 했더니 산뜻한 집이 되었어요. 여우님 사는 모습에서 저는 참 보고 배우는게 많아요. 소나무같기도 하고 대나무같기도 한 올곧은 모습이랑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 혹은 쓸 수 있는 것이 늘 경이로와요. 그리고 전 여우님댁을 제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