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영원히 싫은 사람도 영원히 좋은 사람도 없더라. 미움과 증오가 나의 힘인 것처럼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전진했던 시절을 생각하며 쓴웃음을 짓나니. 누군가를 사랑한 기억보다 미워한 기억 뿐. 세상과 사람을 향해 적대적인 감정만을 품었던 삶이 행복했을 리가 만무하고, 제대로 된 소통과 관계가 있었을 리도 없다. 그 때의 일기장엔 온통 과잉된 울분과 설움과 외로움으로 도배를 했다. 뚜렷한 사유도 모르고 존재 자체만으로 미움을 받았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얼마 전까지 코드가 안 맞느니 호감도 없느니 눈에서만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고 소원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의 독선과 아집이 실상은 나로선 상상이 불가한 상처투성이의 어린시절로부터 비롯된 방어라는 걸 알게 되자, 미움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이해와 연민만이 남았다. 그 사소한 앎으로 순식간에 입장을 달리하다니, 사람의 싫고 좋음은 얼마나 유치한 경계인가. 상식 비상식을 쉽게 가르지만 한 사람을 온전히 아는 데는 상식만으로는 모자람을 안다. 누군가를 덜떨어졌다고 이기적이라고 소심하다고 바보스럽다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 쉽게 뱉을 말도 아니다.


나 자신의 나약함과 불완전함 때문에 고민하면서도 타인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종종 잊는다. 내 시행착오로 몇 년의 시간을 허비하거나 관계를 단절한 뒤에 뒤늦게 회한에 젖으면서 누군가도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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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4-06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고두고 새기고 곱씹어야 할 말이로군요..
어리석지 않도록 노력은 하지만, 천성적으로 어리석은 인간인지.. 그런게 참 쉽지 않네요..

겨울 2005-04-06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반의 반도 몰랐음을 깨달을 때 참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신중하게 사람 대하기를 실천 중입니다.
 

 

종교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인간이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소식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를 보면서 몇 번이나 눈물도 닦아냈다. 그가 살아있을 적에도 몰랐던 사실들을 죽음 이후에 알게 되자 더 비통한 기분이 되었다. 그의 비범함과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과 소박함, 인간다움이 가슴을 후려쳤다. 진실한 신자였다면 며칠 낮밤을 통곡이라도 하였을까. 극진히 사랑하는 부모의 죽음처럼 애통했을까. 그만큼은 아니지만 우울하고 슬프다. 인류를 위해 기울인 그의 노력과 기도는 어느 나라의 누구에게로 이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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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쓴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 얼마나 아팠을까를 걱정하고 연민하며 소설을 읽은 적이 여태껏 있었던가. 아니, 한번도 없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은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나는 소설 속에 풍덩 몸을 던져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그리고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여 휘몰아치듯 읽어나갔다. 한 글자, 한 문장의 의미가 눈에 마음에 못 박히듯 절절하고 구체적이었던 적은 요 근래엔 없었던 일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소설에 중독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가를 만끽했다. 김형경, 당신과 당신의 이야기에 정말 감탄했다.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놓고 실은 당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지언정, 읽고 있는 순간만큼 나는 온전히 당신 소설의 일부로 있었다. 


소설 속의 두 여자는 어디에나 있다. 질풍노도의 연애를 하고 이별을 하고 또 다른 연애를 하는 인혜와 성의 불능은 사랑의 불능이며 삶 자체의 불능이라는 고통스런 자학과 분석을 거듭하는 세진은 여자들의 속에 있는 사랑을 선택하는 두 가지의 기준이다. 자유연애냐 성불능이냐는 독신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이기도 하다. 결혼이라는 제도권 안에서의 성은 안정적인 반면 여성으로서의 존재감은 박탈당하기 일쑤니까. 남자의 기대감 어린 눈빛에서 도망치는 인혜의 상처가 치유가 가능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대담성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연애방식에는 수긍이 간다.


내 안에 세진이 있었다는 어떤 독자의 글처럼, 세진은 누구에게나 부분으로 혹은 전부로써 존재한다. 얼핏 대수롭지 않을 유년의 상처들과 기억을 고집스럽게 끌어안고 끊임없이 분석하고 분열하며 응시하고 분노하는 세진은 비정상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똑같은 상처라도 누구는 쉽게 잊거나 극복을 하는데, 어째서 그녀의 자의식은 그처럼 명료한 것일까. 부모의 이혼, 냉정하고 엄격한 엄마라는 존재는 특별하거나 대단한 건 아니다. 최소한 학대하거나 버리지는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어디에나 있을 법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오직 나뿐이라는 상처는 있다. 그리고 대개는 그 상처를 죽는 날까지 품고 살아갈 것이다. 세진처럼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하여 처절한 몸부림을 치지는 않는다. 상처가 상처인줄도 모르고 억압이 억압인줄도 미처 모르고 일생을 산다고 해서 불행은 아니다. 왜, 너만 유별나게 구냐는 인혜의 의문처럼 세진 같은 부류의 여자는 끊임없이 허물을 벗어놓고 떠났다가 돌아오고 또 떠나기를 반복할 것이다.   


이런저런 불신과 의혹에도 불구하고 세진의 정신분석을 따라가는 동안에도 내 안의 어떤 상처를 발견하고 치유할 방법을 모색하기도 하면서 무뎌졌던 감성의 날을 벼리는 계기가 됐다. 정신분석에의 매혹은 한번도 꺼진 적이 없는 호기심이지만 한번도 충분히 채워진 적이 없다. 그것은 늘 삶의 언저리를 맴돌고 봉인된 기억 앞에서 서성인다. 멀고도 가깝고, 지식은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있지만 의미는 모호하고 거대해서 손을 담글 용기가 없다.


아직도 책의 무거움이 온몸과 정신을 짓누른다. 단지 한 권의 책일 뿐이었다고 하기엔 너무 깊이 침몰했다. 책의, 소설의, 인혜 혹은 세진의 심연에 닿았기 때문인가. 천천히 숨을 내쉬지만 여전히 숨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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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4-19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형경의 책을 딱 한권 읽었거든요.<사람풍경> 너무 "단정적인" 태도에 거부감을 느껴서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는 것을 미루고 또 미루고 있답니다.
근데...님의 글을 읽으니 읽고 싶어져요. 님이 얼마나 이 소설에 빠졌었는지 잘 느껴지는 글이예요.

겨울 2005-04-1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어서 산 책이 아닌 우연찮게 얻어 읽은 책인데, 흥미와 재미면에서 소설이 갖추어야할 모든 것이 있더군요. 김형경의 치열한 글쓰기는 어설픈 감상주의와는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소설가라는 타이틀이 그야말로 딱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고 그녀의 작품 전부가 좋다는 건 절대 아니구요. 소설을 읽는 사람마다의 방법의 차이에 대해 종종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나처럼 읽기를 바랄 수도 없거니와 가능하지도 않지요.
 

 

며칠 전 제주도엘 다녀오신 부모님께서 오징어를 사오셨다고 나눠 먹을 겸해서 다녀가셨다. 아무도 없는 집에 바리바리 싸들고 오신 먹거리를 살짝 놓아두고 가셨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보따리를 풀어놓고 바라보자니 마음이 그렇다. ‘쑥버무리’와 봄동(하루나)에서는 풋풋한 봄 냄새가 폴폴 났다. 주는 이의 마음에 비하면 받는 이의 마음은 허접임을 알고 있다. 무심코 쓰는 말 중에 그거 안 먹어도 사는데........ 라는 말이 있다. 시골에서 나는 이런저런 곡식과 채소를 가져다 먹으라는 말씀에 귀찮음과 시간 없음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룰 때의 일이다. 그러나 무성히 큰 열무나 상추, 파를 보면서 자식들 생각에 잠기는 부모의 마음은 다를 것이다. 덜 먹거나 못 먹지 않음을 알면서도 자식 입에 넣어주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즐거움의 미덕은 부모가 아닌 자식은 죽어도 모를 일이다. 다만 짐작하고 추측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되짚어 볼 따름. 내일은 정말 맛있게 잘 먹었노라고 거듭 인사를 드려야겠다. 배불리 잘 먹어서가 아닌 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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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쉽고 빠르게 읽히는 소설을 좋아한다. 반면 무겁고 최대한 느리게 읽어야 제 맛이 나는 소설도 나쁘지 않다. 전자로는 추리, 판타지 등의 모험물이 있는데 어저께 후다닥 읽어치운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가 그런 종류다. 며칠 몇 날이고 침대 옆에서 웅크리고 있는 진도가 나가질 않는 책들 사이에서 ‘천사와 악마’는 휘리릭 하고 책갈피가 넘어가는 기록을 세웠다. 도무지 일도 생각도 뜻대로 풀리지 않고 사람과의 관계도 매끄럽지 못한 요즘 같은 시절에는 도피 혹은 여행과도 같은 이런 책읽기를 추천한다.


댄 브라운과 ‘다빈치 코드’라는 베스트셀러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실상 별로 기억에 남은 것이 없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전작에 비해 어떻다는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했고 그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어떤 종교든 그 안에 깃든 사유와 성찰은 매혹적이고 과거를 거슬러가서 만나는 굴절과 왜곡은 더구나 흥미진진하다. 종교와 과학의 만남은 또 얼마나 놀랍고도 신비로운 세계인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이 역사 속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벌어지는 전대미문의 추기경 살인사건을 다룬 이야기 속에서 한번도 가본 적도 없는 도시 곳곳을 상상하고 또 상상하는 것, 그런 가운데 꿈에서 깨어나듯 마지막 장을 덮었다. 


아쉬움은 암살자의 모호함이다. 소설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던 암살자가 죽는 시점부터 이야기는 급격하게 긴장감과 설득력을 잃고 추락한다.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복수심이었다는 결론은 당황스러울 정도다. 교황의 순결서약의 의미가 스승이며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고 살의를 느낄 만큼 절대적인 것인가. 그리고 일루미나티라는 신비로운 집단의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일까. 이 소설의 백미는 단연 일루미나티라는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집단에 관한 것이다. 제목도 일루미나티였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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