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부터 검은 모기에게 세 방이나 물렸다. 버물리를 바르고 또 발라도 가려움이 가시질 않는다. 독한 놈. 9월 한낮의 극성스런 모기는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약이 올라 있다. 화단의 잡초 틈에 도사리고 있다가 야호! 환호를 지르며 달려들었겠지? 놈을 때려잡아서 내(?) 피를 봤어야 하는데, 원통해.




살금살금. 가을이 걷는다. 바쁠 것 없어. 바쁠 것 없어. 되뇌는 소리. 헐레벌떡 일어섰다가 아, 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기다리지 않아도 올 사람은 온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가을이, 저기, 어디쯤 있다는 거.




지는 꽃이 추하다고 잘라버릴 순 없지. 피는 신비를 고대하고 지켜보았듯이, 말라붙어 떨어지다가 푸른 잎에 걸린 옥잠화의 말로를 끝까지 견디는 것. 그게 도리야. 벌레 먹어 구멍이 숭숭 난 맨드라미 잎사귀를 봐.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잎만 무성하다고 타박했는데, 어떤 벌레의 맛난 밥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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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9-12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리지 않아도 올 사람은 온다. --> 사실인가요. 너무 지치게 하는 문구네요.^^

겨울 2007-09-20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심한 성격이죠.^^
 

 

젖은 나뭇잎이 시멘트 마당 위에 쩍쩍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아. 지겨워. 라는 말이 눈을 뜨면서 시작해서 눈을 감을 때 까지 터져 나오는데, 그것도 역시 지겨워. 젖은 신문지 조각, 붕 떠버린 벽지, 무덤처럼 쌓아놓은 책 냄새가 바이러스처럼 허공을 부유하는 것만 같아서 불쾌해. 천지사방이 비에 젖어 축축해. 오늘 밤엔 보일러를 돌려야 할 거야. 근데, 몸은, 말라비틀어진 북어처럼 버석거려. 건들면 마른 비듬이 우수수 떨어질듯이, 뼈대 앙상한 손가락 발가락이 무시무시해. 가을이면 앓는 알레르기는 불청객이지만 속수무책이야. 아침마다 눈 뜨기가 괴로워 몸부림을 치지만 이것도 곧 지나가겠지. 이대로, 무거운 눈까풀을 닫아걸고 책상에 엎드려 자버리고 싶은, 밤 같은 오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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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박군과 상담했던 생활부장(여교사)은 "상담은 30여분 정도 했다. 돈을 벌어 가게를 차리겠다고 하더라. 상담하면서 어려운 가정 형편을 이야기 했고, 울기도 했다. 하지만 특별히 마음의 상처를 입을 만한 말은 없었다"고 말했다. http://kr.news.yahoo.com/shellview.htm?linkid=33&articleid=2007083111442759124

 

어쨌든 책임을 면해 보려는 안간힘이 보이는데, 입을 열면 열수록 진흙탕에 뒹구는 듯. 어려운 가정 형편을 말하며 우는 학생에겐 그 상황 자체가 상처임을 모르나. 평소 모범생일수록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질책이나 충고 한마디가 엄청난 모멸로 느껴질 수 있다. 그동안 구축한 세계가 땅밑으로 꺼지는 듯 싶을 만큼. 학생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에 대해 학교는  전학이니 어쩌니 하면서 융통성 없이 굴며 엉덩이를 때리고 복도에 벌까지 세웠다. 초등학생도 중학생도 아니고 고등학교 2학년생에게. 그의 죽음에 영문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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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고 앉아 있었다. 머리는 맑았지만 현기증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의 입에서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그는 그걸 막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계절이 다시 바뀌기 전에, 모든 곡식이 비에 깨끗이 쓸려가고 햇볕에 마르고  바람에 씻기겠지. 나의 어머니가 이승을 살고 난 다음, 깨끗이 씻기고 날려가고 풀잎 속으로 빨려 들어갔듯이, 나의 손길이 닿은 곡식은 한 알도 남지 않게 되겠지.

그렇다면 도저히 두고 떠날 수 없는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곳에 나를 붙들어 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나야 하고, 우리들의 어머니를 떠나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집을 떠나지 못하고,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죽으려고 돌아와야 하는 그런 어린애들의 집안에서 태어난 어린애일까? 나는 내 어머니의 무릎에,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의 무릎에, 그렇게 수세대를 거슬러 올라가 모든 이가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죽는 그런 어린애들의 집안 말이다.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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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녀석에게 준다고 사 놓고는 내가 푹 빠져 읽어버린.

나뭇잎이라는 닌자 마을에 나루토라는 천방지축 외로운 꼬마가 살고 있었다. 설상가상, 꼬마는 만년 낙제생에 고아. 마을 사람들로부터의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며 그 반작용으로 일부러 말썽을 부리는 장난꾸러기지만 그런 소년에게 믿음을 준 선생님이 있었으니, 이름 하여 이루카 선생님. 실력은 제로면서 나중에 커서 호카게(대통령쯤?)가 될 거야, 라고 큰소리 뻥뻥 치는 나루토. 나는 나의 닌자의 길을 갈 테야. 일단 꿈을 크게 가져라 인가? 하하. 

며칠에 걸려 읽고 나니,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다. 매력적인데, 악당과 대립하는 선한 사람들의 정신 구조는 어느 만화에서나 비슷해서 차별성이 희미해지고 만다. 힘을 얻기 위해서, 강해지기 위해서는 일족이나 가족, 가장 친한 친구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패륜이라니. 이런 사상이 성장기의 애들에게 어떻게 비출까. 그러니까 악당이지 정도? 낙제생도 나루토 같은 근성만 있으면 된다는 적당한 교훈과 무엇보다 대단한 스승과 운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 하여튼 매력적인 만화고, 만화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맨드라미는 참, 싱싱하기도 하다. 어지간한 녀석들은 말라 죽거나 벌레에게 먹히거나 이유모를 병에 걸려 있는데, 이 녀석만은 생명력이 흘러 넘친다. 우리집 마당 구석구석은 지금 채송화와 맨드라미가 만개해 있다. 맨드라미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예쁘다는 말은 솔직히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꽃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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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28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드라미, 참 예쁘단 말 안 나오는 꽃이죠^^
그래도 색깔만은 얼마나 선명하고 성질 있게 보이는지...
우몽님, 8월도 가고 있네요^^

겨울 2007-08-28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올 8월은 유난히 길고 지루했어요.
성깔 있는 꽃, 맞아요.
남이 뭐라거나 말거나 우람한 핑크빛 꽃대를 세웁니다.

잉크냄새 2007-08-28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애로선인의 팬이랍니다.ㅎㅎ

겨울 2007-08-28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라, 보셨군요.^^
전 카리스마 가아라의 드라마틱한 인생전환에 감동 먹고 눈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