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고 앉아 있었다. 머리는 맑았지만 현기증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의 입에서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그는 그걸 막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계절이 다시 바뀌기 전에, 모든 곡식이 비에 깨끗이 쓸려가고 햇볕에 마르고  바람에 씻기겠지. 나의 어머니가 이승을 살고 난 다음, 깨끗이 씻기고 날려가고 풀잎 속으로 빨려 들어갔듯이, 나의 손길이 닿은 곡식은 한 알도 남지 않게 되겠지.

그렇다면 도저히 두고 떠날 수 없는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곳에 나를 붙들어 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나야 하고, 우리들의 어머니를 떠나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집을 떠나지 못하고,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죽으려고 돌아와야 하는 그런 어린애들의 집안에서 태어난 어린애일까? 나는 내 어머니의 무릎에,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의 무릎에, 그렇게 수세대를 거슬러 올라가 모든 이가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죽는 그런 어린애들의 집안 말이다. (16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카 녀석에게 준다고 사 놓고는 내가 푹 빠져 읽어버린.

나뭇잎이라는 닌자 마을에 나루토라는 천방지축 외로운 꼬마가 살고 있었다. 설상가상, 꼬마는 만년 낙제생에 고아. 마을 사람들로부터의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며 그 반작용으로 일부러 말썽을 부리는 장난꾸러기지만 그런 소년에게 믿음을 준 선생님이 있었으니, 이름 하여 이루카 선생님. 실력은 제로면서 나중에 커서 호카게(대통령쯤?)가 될 거야, 라고 큰소리 뻥뻥 치는 나루토. 나는 나의 닌자의 길을 갈 테야. 일단 꿈을 크게 가져라 인가? 하하. 

며칠에 걸려 읽고 나니,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다. 매력적인데, 악당과 대립하는 선한 사람들의 정신 구조는 어느 만화에서나 비슷해서 차별성이 희미해지고 만다. 힘을 얻기 위해서, 강해지기 위해서는 일족이나 가족, 가장 친한 친구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패륜이라니. 이런 사상이 성장기의 애들에게 어떻게 비출까. 그러니까 악당이지 정도? 낙제생도 나루토 같은 근성만 있으면 된다는 적당한 교훈과 무엇보다 대단한 스승과 운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 하여튼 매력적인 만화고, 만화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맨드라미는 참, 싱싱하기도 하다. 어지간한 녀석들은 말라 죽거나 벌레에게 먹히거나 이유모를 병에 걸려 있는데, 이 녀석만은 생명력이 흘러 넘친다. 우리집 마당 구석구석은 지금 채송화와 맨드라미가 만개해 있다. 맨드라미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예쁘다는 말은 솔직히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꽃은 꽃.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8-28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드라미, 참 예쁘단 말 안 나오는 꽃이죠^^
그래도 색깔만은 얼마나 선명하고 성질 있게 보이는지...
우몽님, 8월도 가고 있네요^^

겨울 2007-08-28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올 8월은 유난히 길고 지루했어요.
성깔 있는 꽃, 맞아요.
남이 뭐라거나 말거나 우람한 핑크빛 꽃대를 세웁니다.

잉크냄새 2007-08-28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애로선인의 팬이랍니다.ㅎㅎ

겨울 2007-08-28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라, 보셨군요.^^
전 카리스마 가아라의 드라마틱한 인생전환에 감동 먹고 눈물까지.....
 
8월, 당신의 추천 도서는?

 

 

 

 

어떤 사람이 다른 아이에 대해 “걘 야구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걔 머릴 열어보면 야구장이 들어 있을걸....... ”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이 하는 말 중 상당수가 단어들의 뜻 그대로의 의미가 아님을 아직 알기 전이었다. 나는 내 머리를 열어보면 그 속에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어머니에게 물어보자, 어머니는 “아가, 뇌가 들 어 있단다”라고 하고, 주름진 회색 덩어리의 그림을 보여 주었다. 나는 내 머릿속을 그걸로 채울 만큼 뇌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누구도 그렇게 흉한 것을 머릿속에 넣어 다니지 않으리라고 확신했었다.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야구장이나 아이스크림이나 소풍이 들어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회색 뇌가 들어 있음을 안다. 내 마음에 무엇이 담겨 있든, 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는, 그 그림이 잘못 만들어졌다는 증거 같았다.

내 머릿속에 든 것은 빛과 어둠과 중력과 우주와 칼과 식료품과 색깔과 숫자와 사람들과 온몸이 떨릴 만큼 아름다운 패턴들이다. 나는 아직도 왜 내가 다른 패턴이 아니라 이런 패턴들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책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 낸 질문들에 답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답하지 않았던 질문들을 생각했다. 나는 늘, 아무도 한 적이 없으니 내 질문들은 잘못된 질문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쩌면 다른 누구도 생각해 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둠이 먼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무지의 심해에 처음으로 닿은 빛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질문들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365~366쪽)

 

 

좋아하는 마저리에게 식사 한번 하자는 말조차 건네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보며 그것으로 됐노라고, 그녀의 주변 언저리의 공기나 그늘의 일부인 채로 만족하는 루의 여린 사랑을 쫓아가노라면 가슴이 저릿하다. 자폐를 가진 자신은 정상인 마저리로부터 결코 사랑 따위를 받을 순 없다고 체념하는 그러면서도 간절히 원하는 루의 섬세한 마음이라니. 소설에서 마저리와의 관계는 루의 사념들이 전부다. 통속적인 뭔가를 기대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정상인과 장애인과의 사랑 이야기는 아니니까. 마저리는 루가 현재의 익숙한 세계를 깨고 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계단 같은 존재다. 그 계단이 없이는 벽을 오를 수가 없다. 소설을 다 읽은 뒤,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에서는 안도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기억하기를 바라면서도 기억하지 못해서 다행(?)이라니, 참.




자폐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이 뜻인지 혹은 아닌지 의문을 느끼기도 하지만 루는 주어진 현재에 최선을 다한다. 그는 보고 듣고 배운 대로의 삶을 완벽하게 살아간다. 마치 프로그램화된 로봇처럼 기억 속의 매뉴얼을 따라서 반응하고 말하고 사고한다. 루에게 친구란 절대적 신뢰관계에 있다. 화를 내서도, 의심을 해서도, 해를 끼쳐서도 안 된다. 그렇게 구축한 불완전하지만 안전하다고 믿었던 세계가 친구라고 믿었던 돈으로부터 이유모를 공격과 폭언을 들으면서 깨어진다. 루는 조금씩이지만 변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가 가보지 못한 곳, 체념하거나 포기했던 꿈을 선택을 때임을 자각한다.




그 자신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싶은 순간들. 그가 정상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달라지는 호의적이지 않는 낯선 사람들의 시선과 질문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간절한, 간절한 소망의 실현이 그것이다. 그는 마음껏 별을 보고 싶지만 낯선 길이나 공간이 두려워 떠나지 못한다. 정상인들이 쓰는 말의 이면을 분석을 통해서가 아닌 그저 직감과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원한다. 그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존재들에 대해 그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열망을 자각하는 순간 그는 선택한다. 가진 것을 모두 잃을 수 있는,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안정된 직장, 그리고 생명까지도.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07-08-2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한번쯤 스스로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네요.^^
오랫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겨울 2007-08-2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낸다는 것에 회의가 느껴지는 즈음입니다.
아마도 권태일까요.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길.

물만두 2007-08-2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었습니다.
루를 보면서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고 부럽더군요^^

겨울 2007-08-28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읽어서 기분이 좋은데요?
사실, 저도 루가 여러가지 면에서 부러웠어요.
정상이라는 말이 얼마나 모호한 단어인지 생각했구요.
다시 한번 읽고 싶은 멋진 책이었어요.
 

 

 

 

 

 

 

 

 

밤의 고속도로를 달릴 땐, 이상스런 불안과 공포 속에서 설렌다.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이정표가 있음에도 막막한 앞, 반대 차선을 달리는 끝없는 자동차의 행렬이 마법에 걸린 듯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곳. 우울하고 우울하여 동반자살이라도 하고픈 충동이 솟구치는. 내게 밤의 고속도로는 그런 곳이다. <소풍>을 떠난 여자와 남자의 불협화음이 끝내 파국으로 치닫는 동안 내 마음도 딱 그대로였다. 밤의 고속도로에서 꿈꿀 수 있는 건 이게 다라고. 어떤 이는 휴게소에서의 우동 한 그릇, 김밥 한 줄의 추억을 말하지만 내 기억에 그것은 바람 불거나 눈, 비 오는 날의 을씨년스러움이 전부다. 맛도 모르고 배를 채우고,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에 갔다 와서는 비슷비슷한 차들 속에서 내가 타야할 차를 눈 부릅뜨고 찾아내는 고달픈 의무가 전부인.




<사육장 쪽으로>는 무시무시한 악몽 같은 소설이다. 절대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 지독한 꿈에 밤새 시달리다가 일어났을 때의 오한처럼. 파산선고를 받은 가장의 하루는 지겨워 죽을 것 같다고 웅얼거리면서도 끝장을 내지 못하는 일상의 안온한 늪이다. 자동화된 기계처럼 몸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척척 해치우고, 가족보다 익숙한 상사와 동료와 부하와 빌딩숲과 풍경에서 마음의 평화와 충만함을 느끼는. 치매 걸린 노모와 사육장을 탈출한 개에 물린 아이라니. 병원이 있다는 곳은 그 불길한 사육장 쪽이다. 흐느끼는 아내와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아이, 미친개들은 짖어대고, 자동차는 사육장으로 달려간다. 말도 안 돼. 비현실적이야. 이건 꿈이야. 깨야 해........ 그들은 과연 병원에 도착했을까. 

 

 

 

주구창창 번역소설만을 읽다가 만난 편혜영의 단편집은 신선하다 못해 놀랍다. 문장을 음미하며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투지를(?) 불태웠다는. 감질나는 이런 단편의 미덕에 새삼 감동을 받다니 이것도 나이듦인가. 이 소설집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이라면 여자, 남자, 그, 아내, 아들, 조, 김, 박, 송 등으로 불리는 등장인물들의 익명성이다. 작품속의 인물에 이름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읽는 이의 감정은 얽매임이 없이 자유롭다. 쓸데없는 감정이입도 필요없고 굳이 얼굴을 만들어내는 불필요한 낭비도 하지 않는다. 삶은 결코 달콤하지 않다. 그럼에도 망각하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 커 기억상실증 환자로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쩌면 소설가는 그렇게 잃어버린 어두운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기록하는 전달자일런지도 모르겠다.  






잘 계신가요?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잠깐 멈추었던 어느 오전이었어요.

반가운 이름에 잠깐 배시시 웃음이 나더군요.

어느 곳에서건 온 힘과 마음을 다하여 살아갈 청년을 오래오래 생각했어요.

선물 고마워요. 책이란 것은 단비와도 같이 서걱거리는 일상을 적셔주지요.

이 긴긴 열대야의 밤조차도 한 권의 서늘한 책에 비하면 우습네요.

상처가 되는 말과 사람 앞에서 때때로 흔들리더라도,

늘 강건하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 291

이른바 문명인들은 자신의 세계에 존재하는 악마는 인정하면서도 토착민들이 두려워하는 악마는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의 악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만, 토착민들의 악마는 번개와 같은 자연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문명인은 토착민의 신앙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을 문제삼는다. 우리가 야만인으로 규정한 우데헤들은 다른 종교에 대해 유럽인보다 훨씬 너그럽다. 오히려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우데헤들은 결코 타인의 신앙을 경멸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듯,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신앙도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데르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태껏 러시아 인이나 중국인의 신앙을 궁금해한 적이 없다. 자신이 중국인과 러시아 인의 삶을 이해할 수 없듯이, 그 신앙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데르수 우잘라. 이토록 선한 영혼이 또 있을까.

평생을 숲만 보며 숲을 사랑했던 사나이. 사냥꾼이자 파수꾼, 길잡이이며 호랑이와도 맞짱을 뜨는 귀여운 야만인인 그가 부르는 '사람'이라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친근한 생명을 뜻한다. 그의 만물과 공존하고 배려하는 삶이 경이로운 것은 '문명'의 삶에 지치고 쩔어서일까. 이 극동 시베리아 탐사 기행의 애초의 목적은 전쟁을 위해서였지만, 고리드인 데르수 우잘라의 삶을 조명하면서 문명의 반대로서의 야만의 의미가 아닌 우리가 살아본 적 없는 태고적 순수시대에 대한 영광을 떠올리고 향수를 자극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