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다른 아이에 대해 “걘 야구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걔 머릴 열어보면 야구장이 들어 있을걸....... ”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이 하는 말 중 상당수가 단어들의 뜻 그대로의 의미가 아님을 아직 알기 전이었다. 나는 내 머리를 열어보면 그 속에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어머니에게 물어보자, 어머니는 “아가, 뇌가 들 어 있단다”라고 하고, 주름진 회색 덩어리의 그림을 보여 주었다. 나는 내 머릿속을 그걸로 채울 만큼 뇌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누구도 그렇게 흉한 것을 머릿속에 넣어 다니지 않으리라고 확신했었다.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야구장이나 아이스크림이나 소풍이 들어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회색 뇌가 들어 있음을 안다. 내 마음에 무엇이 담겨 있든, 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는, 그 그림이 잘못 만들어졌다는 증거 같았다.
내 머릿속에 든 것은 빛과 어둠과 중력과 우주와 칼과 식료품과 색깔과 숫자와 사람들과 온몸이 떨릴 만큼 아름다운 패턴들이다. 나는 아직도 왜 내가 다른 패턴이 아니라 이런 패턴들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책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 낸 질문들에 답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답하지 않았던 질문들을 생각했다. 나는 늘, 아무도 한 적이 없으니 내 질문들은 잘못된 질문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쩌면 다른 누구도 생각해 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둠이 먼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무지의 심해에 처음으로 닿은 빛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질문들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365~366쪽)
좋아하는 마저리에게 식사 한번 하자는 말조차 건네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보며 그것으로 됐노라고, 그녀의 주변 언저리의 공기나 그늘의 일부인 채로 만족하는 루의 여린 사랑을 쫓아가노라면 가슴이 저릿하다. 자폐를 가진 자신은 정상인 마저리로부터 결코 사랑 따위를 받을 순 없다고 체념하는 그러면서도 간절히 원하는 루의 섬세한 마음이라니. 소설에서 마저리와의 관계는 루의 사념들이 전부다. 통속적인 뭔가를 기대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정상인과 장애인과의 사랑 이야기는 아니니까. 마저리는 루가 현재의 익숙한 세계를 깨고 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계단 같은 존재다. 그 계단이 없이는 벽을 오를 수가 없다. 소설을 다 읽은 뒤,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에서는 안도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기억하기를 바라면서도 기억하지 못해서 다행(?)이라니, 참.
자폐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이 뜻인지 혹은 아닌지 의문을 느끼기도 하지만 루는 주어진 현재에 최선을 다한다. 그는 보고 듣고 배운 대로의 삶을 완벽하게 살아간다. 마치 프로그램화된 로봇처럼 기억 속의 매뉴얼을 따라서 반응하고 말하고 사고한다. 루에게 친구란 절대적 신뢰관계에 있다. 화를 내서도, 의심을 해서도, 해를 끼쳐서도 안 된다. 그렇게 구축한 불완전하지만 안전하다고 믿었던 세계가 친구라고 믿었던 돈으로부터 이유모를 공격과 폭언을 들으면서 깨어진다. 루는 조금씩이지만 변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가 가보지 못한 곳, 체념하거나 포기했던 꿈을 선택을 때임을 자각한다.
그 자신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싶은 순간들. 그가 정상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달라지는 호의적이지 않는 낯선 사람들의 시선과 질문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간절한, 간절한 소망의 실현이 그것이다. 그는 마음껏 별을 보고 싶지만 낯선 길이나 공간이 두려워 떠나지 못한다. 정상인들이 쓰는 말의 이면을 분석을 통해서가 아닌 그저 직감과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원한다. 그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존재들에 대해 그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열망을 자각하는 순간 그는 선택한다. 가진 것을 모두 잃을 수 있는,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안정된 직장, 그리고 생명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