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긍정파워 - 행복과 성공을 부르는 긍정의 심리학
미아 퇴르블롬 지음, 윤영삼 옮김 / 북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서평단 도서에 이 책이 떴을 때 무조건 손을 든 이유는 제목의 포스 때문이다. 절대적으로다 내게 부족한 ‘자기 긍정 파워’. 제목만으로도 뭔가가 속에서 불끈 하지 않는가. 사실 이런 책은 읽을 기회가 없었다. 문학, 추리, 감상적인 산문 류가 취향인지라. 책읽기에 배어든 일정부분의 허영심은 그 이름이 ‘책’인 이상은 당연한 거라고 본다.

평소 자존감이 낮다는 자각을 해서인지 책은 흥미진진이다. 누군들 보다 나은 삶을 꿈꾸지 않고, 누군들 자신감이나 자존감의 가치를 모르랴. 아는 얘기다. 익히 아는 단순한 얘기지만, 그 가치만큼 실천하거나 얻기 어려운 거니까, 이렇듯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면서 세뇌훈련을 시키는 것이리라.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주변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은 지극히 사소한 비방에도 거의 인생이 끝장난 것처럼 울부짖으면서 말이다. (36쪽)

성격형성에서 자존감이 결여된 경우인가. 애초에 자신감이건 자존감이건 어려서부터의 훈련이 중요하단 건 누구나 아는 얘기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자신감)’이나 ‘자신만이 가진 특별한 가치에 대한 인식(자존감)’이나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진 않은데, 자신감이 아무리 높아도 자존감이 낮으면 비록 성공한 인생을 살아도 행복하거나 만족스럽지 않다는 게 요지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사람들의 탈선이 그 예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라. 살면서 수없이 듣고 읽는 말이다. 자기 학대, 반항, 좌절감, 질투심으로 타인에게 보이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에게 가혹한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러면 충고랍시고, 당신이 가진 것, 누리는 것의 가치도 대단하다고 떠들지만 당사자에겐 소귀에 경 읽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말, 충고, 코치는 쉽다.




나는 지금까지 수치스러운 일을 겪어왔다. 하지만 그 어떠한 경험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앞에서 이야기한 정신적, 육체적 학대로 얼룩진 관계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 (51쪽) 정말, 균형 잡힌 높은 자존감을 가지면 저렇게 될까. 가정에서, 사회에서, 학교에서 학대를 당하는 당사자들에게 자존감이 부족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의 자존감이 높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단지 자존감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지 않나. 저자는 마약 중독자였다고 고백한다. 사랑은 계속 실패하고, 교도소에 가는 등의 결코 평범하지 않는 경험들과 그녀가 리더십코치로서 만난 사람들과의 결과물이 일명 ‘자존감 프로그램’인 이 책이다. 그녀가 설득력 있는 언변가라면 글보다도 말이 호소력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의 내용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하다. 과거를 디딤돌 삼아 현재의 삶을 무조건 긍정하고 즐겨라. 자기애를 극대화 시켜라.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물으면 그 대답은  ‘바로, 당신’이라는. 세뇌를 넘어 최면을 걸어라?  




진실과 자신의 생각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자신이 너무 솔직해서 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이러한 솔직함은 정직과는 아무 상관없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느끼는 생각을 주변사람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이러한 솔직함이다. 어떤 사람의 스웨터가 마음에 안 든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 생각? 의견일 뿐이다. 굳이 이야기해야 할 만큼 중요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106쪽)

그러고 보니 생각이나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타인의 험담을 꽤 한 듯싶다. 인성의 결여도 자존감을 높이는 적이라는 말씀이다. 어째 뒤로 갈수록 공자님 말씀 투다. 어떤 사람은 맨 앞장만을 읽고 던져버릴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직접적인 사례를 통해 고개를 주억거릴 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저 제목만으로도 한 권의 가치와 맞먹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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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다녀오는 길. 몇 걸음 앞에 할머니와 손녀가 걸어가고 있다.




할머니; 오늘은 엄마한테 가서 자.

손 녀 ; 왜?

할머니; 그래야 엄마가 안 나가지.

손 녀 ; 싫어.

할머니; 엄마 붙잡고 나가지 말라고 울기도 하고 그래.

손 녀 ; ............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유치원생이거나 초등학교 1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가엾다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 입장에서야 며느리를 잡아놓을 수 있다면 무슨 말인들 못하랴 싶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너무 가혹한 현실이 아닌가. 보아하니 엄마랑 함께 사는 것도 아닌 듯한데. 옛 기억 속에 나도 싸우고 틀어진 부모님 사이에서 왔다갔다 말을 옮기느라 고달팠던 적이 있다. 그때야 시키는 대로 했지만 지금 같아선 확! 가출해 버린다. 어른들의 사정에 아이를 이용하는 건 진짜 잔인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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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글 곳곳에는 장애로 인한 시린 기억들이 묻혀있다. 그것은 그녀의 진솔한 삶과 책읽기에서 배어 나오는 향기처럼 자연스럽다. 문학의 숲을 거니는, 한가로운 산책처럼 친근하지만 심심하기도 해서 이 책에는 일찌감치 재미없음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기대한 것은 아마도 권태로운 일상을 뒤흔드는 치열한 글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혹은 알아도 간과한 무엇을 발견하기를 바랐는지도. 그건 사사로운 욕심이다. 읽는 책들 중에서 정말로, 정말로 맘에 쏙 들어 열광하는 건, 열에 하나 있을까 말까다. 다 읽은 책을 차마 놓기 싫어 머리맡에 모셔두거나, 그 책의 여운으로 잠 못 이루는 밤 같은........ 이건 단지 순전히 투정이다. 엄한 책을 붙들고 하는 엄한 투정이다. 왜 감동할 수 없는가. 서글프지만 말라버린 감성 때문이다. 책읽기는 점점 음식과 닮아간다. 편식이다. 어려서도 하지 않던, 스스로 차려 먹는 밥이니 고칠 길은 멀지 않을까. 책읽기에 타이밍이 있다면 이 책은 훨씬 오래 전, 이십 대나 십 대의 뜨겁고 팔팔한 청춘에나 어울리려나. 아니다. 사람마다 기호가 있으니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건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내게는 늦은 감이 있다.




그녀는 장 영희라는 이름 앞에 붙는 장애인이라는 말을 싫어하지만 타인은 그녀와 그녀의 장애를 따로 분리해서 바라볼 수가 없다. 그건 가령 특이한 머리모양이나 눈의 쌍꺼풀처럼 그녀를 결정짓는 인상 같은 거다. 어려운 문제다. 보면서 보지 않는 척,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 하는 것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 조셉 콘라드의 '암흑의 오지'는 영화에 대한 내 기억과 사뭇 다르다. 꽤나 좋아라 했던 영화..... 다시 봐야지.  

 

   
 

그러나 막상 현지에 도착하니 상황은 말로우가 상상했던 것과 판이했다. 커르츠는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이었다. 문명의 계율을 벗어난 '암흑의 오지'에서 그는 온갖 무자비한 수단을 다하여 상아를 긁어모으고, 총으로 제압한 원주민들로부터 살아 있는 신으로 숭배 받고, 불복종하는 원주민들을 죽여서 목을 잘라 장대에 꽂아 울타리를 치는 등 악의 화신이 되어 있었다. 커르츠는 여전히 자신의 위대한 명분을 웅변으로 떠들며 "야만인들의 씨를 말려라"라고 적혀 있는 문서를 말로우에게 준다. 그러나 커르츠는 콩고 강 귀항선상에서 "정말 끔찍하다. 끔찍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열병으로 죽는다. 문명의 가면을 벗은 인간의 악마성과 19세기 제국주의, 인종차별의 광기를 상징하는 인물 커르츠는 죽음의 순간에서야 자신의 삶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에 다다른 것이다.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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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04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장영희 교수님 정말 존경하는 분입니다... ㅠㅠ

로그인은귀찮아 2007-10-06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기도 많고 평도 너무 좋은데 말이죠. 책 속의 책들의 기억이 식상해서 일까요.
그나저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기소침하지 마시길.
사람이 모이는 곳은 어딜 가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법. -몽상-
 

 

안개비가 내리는 아침은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비가 올 듯도 하고 말 듯도 하고, 빨래를 할까 말까 잠시잠깐 고민도 되는, 아침이지만 저녁 같고, 점심이지만 아침 같은, 달력을 보니 오늘이 개천절이다.

그래서 골목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그리 크게 들렸던가 보다.

주중에 낀 공휴일만큼 신나는 날도 없으니까.

길에서 공돈을 줍는 듯 횡재한 그 기분을 안다.






6월에 담갔던 오디술을 걸렀다. 미루고 미루던 일이다. 3개월 정도 숙성시키면 좋다고 해서 9월 초에 걸러야지 했던 일인데, 오늘에서야 할 마음이 들었다.

술이 익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오묘하다. 몇 번이나 뜯어서 맛을 보고픈 충동과 싸워야 한다. 또, 처음 해보는 일이라, 잘 하고 있는지 실패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고, 끝없이 인내심을 시험 당한다. 건강에 이로운 귀한 술이라는 말에 혹해서 더욱 애지중지 하는 탓도 있지만 뽕나무에서 직접 따온 동생의 성의도 이유다.

옛날처럼 누에를 치는 것도 아니고 고향 마을 뽕나무들은 모두 아름드리가 되어 오디를 따는 것도 위험한 곡예와 같다. 어른 키만 한 뽕나무에 매달려 오디를 따 먹었던 추억은 그야말로 있을 법하지도 않는 먼 이야기. 다행히, 붉은 듯, 검게 우러난 오디술은 맛이 깊고 부드러워 감탄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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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10-03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익는 서재로군요.

겨울 2007-10-03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근 술은 눈으로, 냄새로, 기다림으로 마시는 것 같아요.
일명 자아도취술.
근데, 주당들은 과일주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서요?
 

 

밤 껍질은 단단하다. 그 안의 속껍질은 쓰고도 떫다. 두 개의 껍질을 뚫고 들어가 진을 친 밤벌레를 보면 몹시 신기하다. 징그러운 건 두 번째 문제다. 밤벌레는 밤을 먹고 성장한다. 밤벌레는 밤을 파먹고, 밤을 닮아 둥그러진 몸을 굴려 밤 밖으로 나오는 듯싶다. 처음 들어가는 구멍은 표시나지 않지만 나온 구멍만은 확실하다. 아무리 보관을 잘 한답시고 냉장고에 넣어도 밤벌레는 저절로 생겨 밤을 좀 먹는다. 어쩌면 밤벌레는 밤 속에서 태어나는 것일까? 밤벌레는 밖으로 나올 뿐,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일까? 추석 전, 밤나무 숲에서 주워 온 밤을 까면서 든 오만가지 생각 중의 하나다. 고향에 계신 큰아버지는 비탈진 밭을 염소방목장으로 만드셨다. 그 방목장 둘레는 온통 밤나무 천지인데, 추석 즈음에 가면 늘 탐스런 밤을 맘껏 주울 수가 있다. 밤 줍기의 재미남은 주워 본 사람만이 안다. 우수수 널린 밤을 주워 담는 재미와 간혹 밤나무를 발로 차서 송이 째 떨어지는 밤을 막대기를 동원해 발라내는 흥겨움이란. 소름이 오소소 돋는 짜릿한 기억이다. 올해는 그 밤을 쪄서 가루로 만든 다음 꿀에 개어 송편 속을 만들었다. 벌레에게 먹히기 전, 일부는 밤밥을 하려고 다듬었고, 일부는 까서 볕에 말리고 있는데, 오며 가며 이사람 저 사람이 하나씩 집어 먹으니 하나도 남지 않게 생겼다. 남이라도 사람 입이 낫지, 오동통하니 살찐 밤벌레를 발견하고 기겁을 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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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밤밤 노래하는 파란여우 2007-09-29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몽님, 밤은 껍질째 살짝 쪄서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먹을 때 다시 한 번 살 짝 쪄주면 먹을만합니다.

겨울 2007-10-02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그인 안 한 여우님, 반가워요^^
살짝 쪄서 냉동실에 보관은 새로운 비법이군요.
네이버에도 없어요. 소문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