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비가 내리는 아침은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비가 올 듯도 하고 말 듯도 하고, 빨래를 할까 말까 잠시잠깐 고민도 되는, 아침이지만 저녁 같고, 점심이지만 아침 같은, 달력을 보니 오늘이 개천절이다.
그래서 골목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그리 크게 들렸던가 보다.
주중에 낀 공휴일만큼 신나는 날도 없으니까.
길에서 공돈을 줍는 듯 횡재한 그 기분을 안다.

6월에 담갔던 오디술을 걸렀다. 미루고 미루던 일이다. 3개월 정도 숙성시키면 좋다고 해서 9월 초에 걸러야지 했던 일인데, 오늘에서야 할 마음이 들었다.
술이 익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오묘하다. 몇 번이나 뜯어서 맛을 보고픈 충동과 싸워야 한다. 또, 처음 해보는 일이라, 잘 하고 있는지 실패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고, 끝없이 인내심을 시험 당한다. 건강에 이로운 귀한 술이라는 말에 혹해서 더욱 애지중지 하는 탓도 있지만 뽕나무에서 직접 따온 동생의 성의도 이유다.
옛날처럼 누에를 치는 것도 아니고 고향 마을 뽕나무들은 모두 아름드리가 되어 오디를 따는 것도 위험한 곡예와 같다. 어른 키만 한 뽕나무에 매달려 오디를 따 먹었던 추억은 그야말로 있을 법하지도 않는 먼 이야기. 다행히, 붉은 듯, 검게 우러난 오디술은 맛이 깊고 부드러워 감탄이 절로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