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는 개 한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가 살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양이 한 마리뿐이다. 깊은 새벽녘, 무슨 일로 집 밖으로 나섰는지 차에 치어 죽었더란다. 산 깊숙한 골짜기에 어인 차가 그리 많아서, 이른 산책을 나간 그 녀석을 죽게 했을까. 눈도, 코도, 입도 모두 몽실몽실한 털 속에 숨어, 멀리서 바라보면 털 뭉치 하나가 또르르 굴러다니는 듯 하여 뭉치라고 불렀는데, 살아있던 짐승의 죽음에 가슴이 시큰하고 답답하다. 비슷한 시기에 살게 된 새끼 고양이는 성깔이 제법이어서, 제 몸의 두 배가 넘는 뭉치 앞에서 갖은 잘난 척을 많이도 했다. 꼬리털을 곤두세우고 으름장을 놓는 쪼끄만 고양이 앞에서 뭉치는 겁먹은 티를 팍팍 내며 몸을 사렸다. 눈치 빠르고 얍삽한 고양이 녀석은 얄미워서 발로 차고 손으로도 던지고 구박을 하면서, 순한 애교덩어리 뭉치는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는데, 무슨 명이 그리도 짧은지....... 너른 풀밭에서 쏜살같이 달려갔다가 다시 달려오는 뭉치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을 맴돈다. 엄마의 신발 한 짝을 물어다, 앞을 보고, 뒤를 보고, 핥아보고, 깨물어보며 좋아하더니 이제는 시골집도 쓸쓸하겠다. 다행인 것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뭉치의 날들은 아낌없이 행복했으리란 것. 저를 가두는 울타리도, 목줄도 없이 산과, 들에서 흙을 지치며 뛰놀았으니, 개로 태어나 누리는 삶 중에서 그만하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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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1-0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통사고로 죽는 동물들이 넘 많아서 가슴 아픕니다.

겨울 2005-01-09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정이 들만큼 자주 보질 못했어요.....
 
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마지막 날까지 붙잡고 놓지 못한 책 중에 하나다. 가볍게 건성으로 읽을 성질의 책도 아니거니와 덮어두었던 상처를 헤집는 듯한 불편함을 느끼며 읽느라 속도는 붙지를 않고 생각만 많았다. 스스로를 작다고 몇 번이나 말하는 저자에 대한 선입견은 독하고 빈틈이 없으며 서릿발이 뚝뚝 떨어지듯 냉정할 거라는 것. 그녀의 소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와 ‘세월’을 읽은 선뜩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고, 이후의 작품에 대해서는 읽은 바가 없어 조금은 긴장을 하고 펴들었던 책이다. 


책의 처음에서 밝히듯 이 글들은 작가 스스로가 받은 정신분석의 기록임과 동시에 여행 중에 만나거나 겪은 사람과 기억들에 대한 관찰과 사유다. 정신분석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으로서 작가의 생각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말하지는 못하겠다. 보편적인 적과 지극히 사사로운 것을 적당히 가르고, 어떤 것에는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적잖은 반감이 생기기도 했다. 대부분은 수긍을 하면서도 모두가 틀린 것이 아니듯 모두가 맞지도 않다고 적당히 에둘러 가려는 내 속에도 어린 시절을 엄마가 아닌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보낸 성장기가 상처가 된 탓일까. 유아기의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그녀의 사유가 내게는 내내 힘들게 읽혔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심연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언제, 어느 때가 될지는 몰라도 그것과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주저앉아 패배를 시인하는 것보다는 싸워 이기고 싶다. 방어기제를 다룰 줄 모르는 유아나 유년의 상처가 일생을 지배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또 다른 상처임을 자각하자 분노라는 감정이 먼저 생겼다. 마치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억지로 강요받아 듣고 난 후의 불쾌감처럼 온몸에 칭칭 감겨왔다. 분석자들은 이 분노의  파편조차도 이름을 달아 걸어두려 하겠지.


분노가 억압되어 있는 사람의 내면은 상대방에게 주먹을 휘두를까 봐 자신의 손목을 절단하는 듯한 삶을 산다고? 경악하는 한편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수긍한다. 사람에 따라서, 필요에 의해서 저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지나친 사람의 마음이 유리알처럼 깨지기가 쉽고, 상처도 잘 받고 그 상처가 오래도록 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화를 잘 내지 않고 참기를 잘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그런 사람 속을 들여다보면 벼랑 끝일 경우가 허다했다. 생각해 보면 진실의 잔혹함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가면을 쓰고 필사적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존재라면 가능하려나. 가령 신이나 정신분석의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앉기가 수월하니까.


예전처럼 예민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참을 수 없어할 때가 있다.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므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도대체 왜 저럴까 하는 의문에 머리가 지끈댄다.

‘네가 싫어하는 것이 실은 네 자신의 일부이다’

그 혹은 그녀의 미치도록 싫은 점이 사실은 나 자신이라고? 뒷머리를 치는 식이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편해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아니면 무관심하기라고 할까. 하지만 이것도 어쩌다 보는 사람에게나 가능하다. 매일 마주치는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내 정신의 분석으로 해탈을 얻는다고 끝이 아니다. 이후로도 생활은 계속되니까


파란색 볼펜으로 노란 포스트 잇 메모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는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 바라보기 위한 목적이다.

‘타인에게 충고하기 좋아하고 남을 가르치는 말투를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심리도 방어의식이다. 그런 이들은 충고와 조언으로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타인을 지배할 수 있어야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이들은 타인들로부터 어느 정도 신망도 얻고 있어 상담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실천해야 할 덕목들을 타인의 삶에 충고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가 내게 그러했고, 누군가에게 내가 그러했던 충고라는 이름의 이면은 적잖은 고민꺼리를 안겨주었다. 그랬을까, 정말 그랬을까.


책을 통한 무의식과 내면으로의 짧은 여행은 불편하면서도 유익했다. 정리가 안 된 단어와 생각들이 두둥실 머릿속을 떠다니지만, 몰랐던 것보다는 백배쯤 낫다는 생각도 한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 정신분석의를 만날 일도 없을뿐더러, 적금을 깨서 세계여행을 떠날 일도 없는, 소시민의 평범한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란 고작 책읽기가 전부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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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5-01-04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타인에 대한 배려가 지나친 사람의 마음이 유리알처럼 깨지기가 쉽고, 상처도 잘 받고 그 상처가 오래도록 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제 친구 중에 이런 친구가 있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잘해줘요.

모두를 위한 5분 대기조라고나 할까....자기 생활의 중심이 없어요. 다른 사람과의 만남,관계를 통해서 자기의 의미를 찾아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에너지를 얻는다고 하면서...하지만 에너지를 얻는게 10이라면 100만큼 상처를 받아요.그래서 가끔씩 분노를 폭발시켜요. 저는....그 친구가...부담스러워요.

겨울 2005-01-0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친 배려는 무관심만 못하다는 말을 들은 후로 엄청 고민에 빠졌던 적이..... 그러나 의식적으로 배려하지 않기도 무척 힘이 들더군요. 제 주변에도 배려가 지나쳐 앞서가는 분이 있는데, 그 사람을 향해 웃을 때는 얼굴이 막 당깁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분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kleinsusun 2005-01-0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님도 그런 경험이 있군요.

배려가 지나쳐 앞서가는 사람.

자신의 배려가 배려의 대상을 오히려 당혹스럽게 하거나 부담스럽게 했다는걸 알았을 때, 앞서가는 사람은 상처 받아요. 그 상처가 쌓여서 분노가 되고...

제가 말한 그 친구, 그 친구한테 상처를 준 것 같아 너무 미안해요.

하지만 그 친구가 엄청난 배려를 퍼부을 때의 그 갑갑함과 부담감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겨울 2005-01-05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독히도 자기 중심적인 사람을 만났을 때의 분노와 씁쓸함만 하겠어요.... 현실의 복잡한 문제와 고민, 혹은 상처를 타인을 향한 관심과 보살핌에 쏟아붓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그분에게 고맙다는 말을 자주해요. 어쩌면 그것은 SOS 신호일런지도 모르잖아요. 드라마 제목처럼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조금 낯간지럽다면 고맙다라고.....
 

 

오랜만에 김수영의 시집과 산문집을 꺼내 읽는다. 시인이란 태생이 천형을 짊어진 죄인인가, 어쩌면 이렇게 비감하고 여린가. 시를 반역하는 생활을 한탄하고 또 한탄하는 시인을 떠올리자니 가슴이 아리다. 예전엔 몰랐는데, 이 사람의 시에는 유난히 ‘설움’이라는 단어가 많다. 삶에, 생활에, 현실에 자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비루함, 구차함, 불만족을 토로하는데 철부지 아이 같기도 하고, 이렇게 순수하고 결백하니 시인이지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 슬며시 웃음도 난다.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거미>


비가 그친 후 어느 날

나의 방안에 설움이 충만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


나는 구태여 생각하여본다

그리고 비교하여본다

나는 모자와 함께 나의 마음의 한 모퉁이를 모자 속에 놓고 온 것이라고

설운 마음의 한 모퉁이를. <시골 선물>


오늘은 필경 여러 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보다.   <긍지의 날>


영사판 양편에 하나씩 서있는

설움이 합쳐지는 내 마음 우에. <영사판>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헬리콥터>


마음을 쉰다는 것이 남에게도 나에게도

속임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쉰다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면서)

쉬어야 하는 설움이여.   <휴식>


모두들 공부하는 속에 와보면 나도 옛날에 공부하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 당시의 시대가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고

누구나 어른들은 말하고 있으나

나는 그 우열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고

구태여 달관하고 있는 지금의 내 마음에

샘솟아 나오려는 이 설움은 무엇인가. <국립도서관>


남의 일하는 곳에 와서 덧없이 앉았으면 비로소 설워진다

어떻게 하리

어떻게 하리.   <사무실>


질서와 무질서와의 사이에

움직이는 나의 생활은

섧지가 않아 시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여름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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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뭔가를 쓰려고 노력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의무적으로 독후감을 쓴 학창시절 이후로는 애써 시간을 내어 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살았다. 알라딘을 이용해 책을 사고, 읽고, 다른 분들의 리뷰며, 페이퍼를 읽게 되면서, 시간을 쪼개 끙끙거리며 짧은 글을 완성하고 자족하는 요즘이 그래서 무척 행복하다. 그러다보니 예전에 읽고 쌓아둔 책들을 보면 별점은커녕 감상 한 줄 못 남긴 게 미안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도 그런 경우다. 술술 읽히는 재미에 한 권씩 사 모았지만 이렇다할 코멘트 하나 달아주지 못했다. 거기다 얼마 전에 조카아이에게 안겨버렸으니 아무리 말 못하는 책일지라도 서운할 테다. 요즘엔 좀 덜하지만, 어떤 책이 좋으면 그 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20대의 그런 치기와 열정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30대에 들어서며 퇴색하였다. 읽고 난 책에 연연하지 않고 빌려주고, 나눠주고 돌려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 되었다. 무엇이든 많이 소유할수록 삶의 무게가 나간다. 굳이 욕심을 부려 손에 얻은들, 그 즐거움도 잠시고 지키기에 급급하니, 비어있는 마음만 못하다는 뜬금없는 생각........ 요컨대, <로마인 이야기>가 있던 책장의 빈자리가 쓸쓸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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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2-20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인 이야기를 읽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네요. 일년에 한권씩 완성한다는 시오노 나나미에 보조를 맞추어 읽어볼까 했는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5권이후로는 손에 잡히지 않아서 읽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겨울 2004-12-20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 10권 정도 읽었는데, 건성건성 꾸역꾸역 이었어요. 처음 몇권은 신나고 재밌었는데 점점 의무감에 읽히더라구요. 덥썩 보따리를 싸서 넘긴 걸 봐도 그다지 애착을 느끼지 않는 책인 모양입니다.
 
벼랑에서 살다
조은 지음, 김홍희 사진 / 마음산책 / 2001년 2월
평점 :
품절


 

홀로서기란 벼랑 끝에서 사는 것인가. 제목의 의미에 갸우뚱 한 것도 잠시, 몇 페이지를 읽어나가기도 전에 수긍을 한다. 사노라면 종종 너무 이질적이어서 생경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닮은꼴에 반해서 무한정의 친밀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시인의 산문에서 발견한 익숙한 일화들과 생각에 허허로운 웃음이 자꾸만 터진다. 그다지 유쾌한 얘기도 아닌데 웃는 것이 미안하지만 살아보니 비슷하게 겪었거나 앞으로 닥칠 것만 같아서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기고 사노라면 이런저런 편견들과 맞서게 된다. 대개는 가벼운 농담반 진담반으로 넘기지만 호기심을 넘어 의도적인 비방을 하는 사람을 이따금 만난다. 타고난 그의 천성이 그러하니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 후유증에 며칠을 앓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사람 보는 눈이 제법 영악해진 요즘은, 아니다 싶은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멀리 돌아간다. 그리고 어쩌다 운이 나빠 만나더라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시인은 혼자 살고 있다. 그녀는 빈말이라도 자신의 생활이 멋들어지거나 고고하다 말하지 않는다. 때론 어둠 속에서 낯선 이에게 쫓겨 대문을 열기도 하고, 만일을 대비해 종을 달아 놓는가 하면, 주변에 사는 극성스런 아줌마 군단과 맞서 외로운 싸움을 하기도 한다.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는 혼자만의 삶에는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은 것이다. 대부분의 독신여성들이 들려주는 적당히 과장된 아름답고도 당당한 삶과는 사뭇 다르지만, 실상 이것은 누구나가 겪는 삶의 빼놓을 수 없는 일부다.


곁들인 작은 크기의 사진 탓인지, 소탈하고 솔직한 글을 읽는 내내 눈과 마음이 즐거웠는데, 글 속의 사진은 실제 시인이 사는 집과 마을의 일부를 담은 것이란다. 13. 75평의 대지 위에 지어진 작은 집에서 오로지 시를 쓰기 위해 사는 여류시인의 삶은 어쩔 수 없는 비루함과 함께 한 겨울 푸른 소나무처럼 결백하고 단단하다. 그리고 쉬이 꺾이지 않을 고집이 묻어난다. 오염되지 않은 땅에 두 발을 굳건히 딛고 선 아름다운 영혼을 만난 오늘, 미뤘던 숙제를 하듯 생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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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4-12-19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벼랑에서 살다>를 읽고, "~척"하지 않은 솔직하고 절제된 글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결혼하지 않는 이유를 조은 시은은 이렇게 대답했죠.
"삶을 확장시키고 싶지 않다."
공감이 되면서도 마음이 저릿저릿한..... 아직 읽지 않았지만 조은 시은의 두번째 산문집 <조용한 열정>도 샀답니다.

2004-12-22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