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들 - 완전 무삭제판, 태원 5월 할인행사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마이클 피트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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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더라, 암 예술이야. ‘몽상가들’을 본 어떤 이의 코멘트에 자극을 받아 귀찮음을 무릅쓰고 본 영화다. 어째서 제목이 몽상가들인가, 보기 전에는 어지간히 재미도 없다고 궁시렁 댔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제목도 예술이네. 지리멸렬한 일상도 영화의 한 장면이 되면 근사한 판타지가 된다는 것을 알고, 영화 같은 영화처럼 산다는 것에 전부를 바치는 빛나는 시절에 관한 영화를 바라보는 여자라니. 오직 하루, 단 하루만을 위한 삶 같은 건 더 이상 흥미도 없고 있을 턱도 없고 가당치도 않다. 그래서 우울한 건가. 바람 빠진 타이어가 터덜터덜 굴러가는 기분인가.


삼인삼색의 이사벨 테오 매튜의 공명과 일탈과 사랑과 그 영화 속의 또 다른 영화를 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눈부신 이사벨의 나신이 화면을 압도할 땐, 그 조화로운 아름다움에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예술이건 포르노건 옷을 벗은 여자만큼 아찔한 건 없다. 벌거벗은 남자에게도 물론 시선이 머물지만, 당신은 무엇, 나는 누구냐는 시선으로 걸어 나오는 이사벨은 이 영화가 보여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칭 그들은 분리 된 샴쌍둥이다. 그래서 한 침대에서 벌거벗고 자고 일어나고, 욕실을 함께 사용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게임에서 졌다고 자위하는 벌칙을 주는 이사벨이나 시키는 대로 곧장 벽을 마주보고 앉아 자위를 하는 테오를 보면서 영화 밖의 사람들은 다들 무슨 생각을 할까. 사실 따지고 보면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영화 밖의 관객도 몽상가들이라서 대개는 그런 거야라고 납득을 하고 지나갈 것이다. 영화를 보며 손가락을 내밀 인간이라면 애초에 이 영화를 선택하지도 않을 테지. 그러나 몽상은 언젠가는 깨어진다. 그리고 그 순간은 느닷없이 찾아온다. 일생을 몽상가로 사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걸 누가 바랄까.


벌거벗은 애벌레처럼 뒤엉킨 알몸을 드러내고 잠이 든 이사벨과 테오, 매튜가 여행에서 돌아온 부모님의 시선에 노출된 순간, 이게 끝인가 싶었다. 끝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쌍둥이의 부모는 수표를 써서 머리맡에 고이 놓아두고 조용히 그 집을 나선다. 경악도 분노도 없이 살그머니 딸과 아들이 잠든 집을 나와 차에 올라탄다. 그것은 지나친 믿음일까, 혹은 구원일까, 아니면 회피일까. 잠에서 깨어난 이사벨은 수표를 확인하고 가스 밸브를 열어 호스를 연결한다. 사랑하는 두 남자를 동반한 달콤한 죽음을 꿈꾸는 그 극단으로 치닫는 행위에 숨을 죽이는데, 와장창 유리창을 깨트리고 돌맹이가 날아든다. 몽상을 깨우는 현실이다. 그들은 거리로 나가 데모의 행렬에 합류하고 이사벨과 테오는 화염병을 집어 든다. 그들은 과연 언제까지나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까.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파리, 68혁명. 영화 밑바탕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코드와 상징들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은 누군가의 몫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순수하게 보이고 들리는 것 외에는 이해도 관심도 불능이다. 다만 망각된 청춘의 한 때를 추억하다가 잠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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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5-09-02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죠. 이 영화 보고 싶어집니다. ^^ 9월로 접어들었지만 오늘 무더위가 만만치 않네요. 건강하게 지내시길..

겨울 2005-09-03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 태풍이 온다네요. 별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의 감회라니. 이게 어인 떡이냐. 속으로는 웃음을 감추고, 껄렁한 표정으로 책방 주인에게 얼마냐고 묻고, 가격을 흥정하고, 예상대로 거저나 다름없는 값에 낙찰을 본 후, 너무 좋아서 역시 속으로만 웃었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뭔가를 좋아해서 가지고 싶다고 해서 당장에 그것을 찾아다니는 열정이 부족한 나는 이렇게 우연찮게 원하던 것을 얻었을 때가 진짜로 행복하다. 돌부리를 걷어찼는데 굴러가던 돌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오백 원짜리를 토했을 때랄까? 비유가 이상하네. 사바스 카페를 처음 접한 게 8년 전 쯤? 막 만화책의 재미에 빠져들 즈음이었다. 일본만화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되어 그 후 정신없이 온갖 만화를 다 읽기 시작했다. 가질 수만 있다면 꼭 가지고 싶은 만화 1순위였지만 막연히 구하기 쉽지 않은 만화려니 하고서 포기했는데, 이런 우연한 행운이 따라주다니. 아, 행복해서 죽을 지경이다.


아름다운 건 월요일의 아이

품위가 있는 건 화요일의 아이

울상을 짓는 건 수요일의 아이

여행을 떠나는 건 목요일의 아이

매력적인 건 금요일의 아이

고생하는 건 토요일의 아이

귀엽고 명랑하고 마음씨가 고운 건 일요일에 태어난 아이 


<목요일의 아이>라는 소설도 있었는데, 친구들과 돌려가며 읽고 나름 심각한 대화도 나누고, 하나같이 모두 여행을 떠나는 목요일의 아이를 꿈꿨었는데. ‘마더구즈’의 노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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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8-14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바스카페.. 너무 좋지요? ^^ 이 책 보면 저는 행복해지더라구요..
좋은 책 구하신거 축하드려요~

로드무비 2005-08-1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오래 전 운좋게 구했답니다.
우울과 몽상님이 좋아하시는 모습 보니 덩달아 기분 좋네요.^^

겨울 2005-08-1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로드무비님, 반갑습니다. ^^ 출판사에서 덤핑 처리한 책인지라 귀퉁이에 약간의 칼질을 당했지만 상태가 아주 양호합니다. 워낙 오래된 책이라 누렇게 색이 바랜 것은 감수하구요. 두 분 다 이 책을 가지고 계시다니, 기분이 두 배로 좋아집니다. ^^

딸기 2005-08-14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몽상님, 오랜만인듯해요 :)

겨울 2006-08-30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딸기님! 그동안 귀차니즘 병에 시달리느라요. 오늘 말복인데 맛난 것 드셨나요? 전 토마토와 옥수수, 오이를 주식으로 삼아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는 방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습니다. 어젯밤, 만화책을 읽느라 잠을 못자서 정신이 몽롱한지라 마당가에 쑥쑥 자란 잡초를 뽑은 후 샤워를 하고 나서 낮잠이나 잘까 합니다. ^^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다.(p. 154)


이 책은 에둘러 비유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게 아니다 라고 말한다. 고개를 똑바로 들고서 하늘을 바라보기를 부끄럽게 만든다. 잘 못 알고 있는 것, 감추어진 진실, 허위의식, 가면을 집어던지라고 한다. 이제까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한 것을 부끄럽게 만든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눈물 따위 쉽게 가볍게 흘리지 말라고 한다. 연민이라고 믿은 것이 혹여 쾌감이 아닌가를 묻는다.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섣불리 강한 척을 하거나 손가락 하나 내미는 것으로 동정의 의무를 다했노라 교만하지 말라 한다.


어떤 곳을 지옥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람들을 그 지옥에서 어떻게 빼내올 수 있는지, 그 지옥의 불길을 어떻게 사그라지게 만들 수 있는 지까지 대답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타인과 공유하는 이 세상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낸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를 인정하고, 그런 자각을 넓혀나가는 것도 아직까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일인 듯하다. 이 세상에 온갖 악행이 존재하고 있다는 데 매번 놀라는 사람, 인간이 얼마나 섬뜩한 방식으로 타인에게 잔인한 해코지를 손수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를 볼 때마다 끊임없이 환멸을 느끼는 사람은 도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인물이다. 나이가 얼마나 됐든지 간에, 무릇 사람이라면 이럴 정도로 무지할 뿐만 아니라 세상만사를 망각할 만큼 순수하고 천박해질 수 있을 권리가 전혀 없다.   (p. 167)


아프가니스탄 카불시의 한 화상병동을 취재한 방송을 보았다. 이제 막 열두 살이 된 소녀가 등유를 온몸에 들이부었다. 아버지에게 팔려 시집을 갔으나 남편과 시어머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분신을 기도했단다. 이웃의 남자가 주변을 맴돌며 관심을 보였다는 이유로 분신을 기도하여 전신에 화상을 입고 아프다고 소리치는 소녀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버지나 남편이 아닌 남자로부터의 그러한 행위는 강간과도 같다. 그래서 소녀는 순결을 잃었다고 믿으며 등유를 들이부은 것이다. 며칠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텔레비전의 그 이미지를 통해서 나는 내가 거기에서 태어나지 않았음을 안도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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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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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늘은 일요일이다. 많고 많은 일요일 중의 하나지만, 누군가에겐 특별한 하루일 수도 있는 일요일이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넘어가지 않는 밥을 한 숟가락 밀어 넣고, 컴퓨터의 전원을 넣어 부팅을 시킨 후, 대강의 청소와 쓰레기를 분리수거 했다. 그리고 겉잡을 수 없이 자란 화단의 무성한 풀들을 두려운 시선으로 노려보다가 역시나 손을 댈 엄두를 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무시무시하게 뜨거운 햇살을 보니 커튼을 걷어 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세탁기를 돌리고, 내친 김에 욕실도 세척락스를 분무기로 뿌려가며 매끈하게 닦아주고, 마침내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앉았다.


나의 일요일은 할머니의 전화 한통으로 시작을 했다. 건강하신지 식사는 하셨는지 잘 지내시라는 안부전화는 부쩍 아파진 다리를 끌고 청소며 빨래며 밥을 홀로 챙기는 그 쓸쓸함에 미치면서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대개의 경우 나의 일요일은 방콕이다. 밀린 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온종일 컴퓨터를 붙잡고 있다. 한마디로 대문 밖으로는 한발자국도 떼놓지 않는다. 일요일에 누가 온다거나 간다거나 하는 걸 아주 싫어하기에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하게 홀로 보내는 이런 시간이야말로 행복의 극치다.


요시다 슈이치의 ‘일요일들’이란 소설을 화장실에 두고 읽기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끝낸 일요일 아침이다. 손에 가벼운 두께의 하얀 책을 보노라니 그렇다면 나의 일요일들은 어떤 그림일지가 궁금해졌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와서 미래의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한사람의 평범하고 단순해 보이는 삶에는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담겨있는지는, 나란 인간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소설가는 마술사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작가는 매력적이다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무엇이 어째서인지는 불분명하다. 뚜렷하게 이 소설의 무엇이 좋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닌데, 이 작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정도를 넘어선다. 그는 나의 무언가를 건드렸고 절묘하게 글로서 표현했다. 무엇이지? 무엇일까.


‘일요일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읽으면서 급기야는 눈물도 몇 방울 흘렸다. 엄마를 찾아 떠난 형제가 등장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하더니, 일요일의 어느 날 도쿄의 어느 호텔에서, 입양되어간 동생과 만나는 형을 따라간 노리코의 이야기는 절정이었다. 세상의 끝에 다다른 듯 낙심해 있던 노리코도 생각하지 않던가.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라고. 인생이 막다른 골목에 왔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다시 일어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어영부영 개기고 있던 일요일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런 날들은 수없이 많았고,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기억이 되고 만다.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일요일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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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기만 하면 자신과 주변인의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사람이 있다. 어디서 그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대단한 기억력이란 감탄을 하며 넋을 놓고 들을 때가 있다. 남달리 사랑도 많고 미움도 많고 근심도 많고 좋아하는 것만큼 싫어하는 것도 많은 결과적으로 욕심이 많은 사람인 그는 일 또한 열정적으로 몸이 부서져라 한다. 삶에 대한 그러한 의욕과 애착, 집착과 체력을 나는 단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를 만나 그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얻는다.


감정이나 갈등을 마음에 쌓아두기를 반복하는 사람은 병이 들기 십상이다. 반면 어떤 경로든 누굴 향해서든 뱉어내고 표현하고자 애쓰는 사람은 굉장히 큰 상심이나 상처일지라도 미약하나마 치유가 되거나 짊어진 짐의 무게를 덜기 마련이다. 현실이 끔찍하도록 암담한 상황에 처해진 어떤 이는 어떻게든 낙관하고 긍정하려 안간힘을 쓰며 좋았던 날들을 추억하고 끄집어내면서 넘칠 정도로 너무 많은 것을 가졌던 대가의 의미로 현재를 살아간다고 했다. 그녀 또한 달변가다.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한 물 흐르듯 매끈한 그녀의 수다는 몇 시간이고 계속된다.


주변을 둘러보면 뭔가를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정작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건 어른이건 여자건 남자건 사소한 빌미만 제공하면 속 깊은 얘기를 줄줄 흘리는 시대, 정작 그들은 자기 말들에 취해 타인의 말은 들을 줄 모르면서, 누구라도 제 속에 쌓이고 쌓인 화를 제발 말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시대, 어쨌건 수다는 힘이고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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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7-3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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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듣고 있는게 편하더라구요... ^^


겨울 2005-07-31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 또한 주로 듣는 쪽입니다. 사실 말하기보다 듣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해요. 적절할 순간에 대꾸를 넣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데요. 사람을 사귀면서 가장 지루할 때는 상대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 아무말도 없을 때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