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의 형식에 대한 글을 읽었을 땐 머리를 끄덕였다. 국어교과서의 장황한 해설을 읽는 기분이긴 했지만 다음 중 가장 훌륭하고 합당한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났다면 딱 좋을 정답이었다. 타의에 의해 혹은 스스로가 전문서평가라 칭한다면 저 매뉴얼을 숙지하여 좋은 서평을 쓰기 위한 노력을 어느 정도는 기울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 서평이지 간단한 감상 글을 의무가 아닌 자족감에 의해 쓰는 사람에게 그것은 올가미다. 숨이 턱 막힌다. 감시하고 검열 당하는 기분에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이름을 내걸고 쓰는 전문서평이 아닌 다음에야 인터넷 서점에 우후죽순처럼 올라오는 짧고 긴 서평들을 가지고 지나치게 질과 양을 따지는 건 창살 없는 감옥처럼 답답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은 쓰는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는 글들이다. 읽는 사람과 책이 어울리는 솔직하고 담백한 글들. 매혹적인 읽기와 후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런 글들. 전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쓴 글들. 하지만 좋은 글이든 나쁜 글이든 이 세상에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글의 참과 거짓, 품위와 격은 다를 수밖에 없다. 위선이든 악이든 그 나름의 가치는 있다고 본다. 내가 가진 것을 잣대로 멋대로 재단할 권리 없다. 마음에 안 차고 싫고 거슬려도 그건 그 사정이다. 주관적인 서평을 읽고 맞지 않은 책을 선택했다면 그 한 번의 실수로 서평이 책을 선택하는 최선이 아님을 배우면 된다. 잘못된 선택의 책임이 전적으로 글을 쓴 사람만이 아니라는 거다. 솔직히 읽으면서 그 글이 주관적인지 객관적인지도 모른다면 유구무언이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으라는 강요는 논술강사가 학생들을 상대로 해서나 가능한 것이다. 책을 읽는 목적? 숨 쉬는 목적이 뭐냐고 묻는 거와 같지 않을까.
알라딘의 서재 개편. 기대보다는 기다려진다. 계절따라 커튼을 바꾸고 가끔 가구 위치를 바꾸는 걸로 기분전환을 하듯이, 이 서재라는 공간의 바랜 커튼과 낡은 가구에 변화가 생긴다니 기분은 좋다. 어떤 식의 변화인지는 몰라도 초심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