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할 말을 잃었다. 꽤 긴 시간을 병석에 누워계셨다. 곧 큰일을 치룰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訃音의 알싸하고 먹먹한 느낌은 남은 잠을 쫓기에 충분했다.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일생은 고약한 술버릇과 함께 일년 사계절을 놀면서 먹기가 전부였다. 명색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서 할머니가 논일 밭일로 허리가 구부러지는 동안에도 뒷짐을 지고 동네 어귀를 어슬렁어슬렁 한가로이 다니셨다. 어린 시절, 기억에 박힌 모습도 돋보기안경을 쓰고 신문을 읽거나 붓글씨를 쓰거나 아니면 곤두레만두레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거였다. 할머니를 상대로, 아들을 상대로 혹은 며느리를 상대로 한 주정은 온 동네가 다 알 정도로 유명했다. 그러니 할아버지 하면 떠올리는 감정이 부끄러움일 수밖에 없었다.
몇년 전, 할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후, 그 죽음의 원인으로 할아버지의 지독한 구박을 꼽으며 얼마나 원망과 미움을 쏟았던지. 슬하에 8남매를 두었지만 온전히 가르치고 보살핀 자식도 없고, 비교적 건강하셨다가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아버지조차 할아버지가 덜컥 앓아누우셨어도 이렇다할 감정 표현이 없으셨다. 그 뒤로 바깥출입을 거의 못하고 계신 할아버지는 고립무원이었다. 이미 인심을 잃을 대로 잃어서 누구도 선뜻 할아버지를 동정하고 애달파 하지 않았다. 나도 시골집엘 다니러 가면서도 지척에 있는 할아버지를 찾아뵙는 기특한 생각은 싹조차 틔우질 않았다.
할아버지의 부음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하필 이렇게 바쁜 시기에다. 가을걷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부모님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할 타격이 걱정이다. 그리고 그 혼란의 와중에 계실 외할머니의 건강. 노인들은 주변의 죽음에 대해 민감한 까닭이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아버지인데 내가 이렇게 몰인정해도 되는 건가. 속으로는 몰라도 겉으로는 눈물도 흘리고 슬퍼하는 연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예전 기억 속의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천년 만 년이라도 살 줄 알았다. 허리 꼿꼿이 세우고 뒷짐을 진 커다란 체구로 집 앞을 지나가시던 그 분이 병들어 일생을 마감하셨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은 아직도 내게 생경하기 짝이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큰아버지가 간암으로, 이제 할아버지가 운명을 달리 하셨다. 무의식중에 다음 차례를 헤아리는 내가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