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전통 술을 빚는 양조장집 딸내미 나츠코의 파란만장한 분투기를 그린 이 만화에서 내 혼을 빼앗아 간 건 술에 관한 집념이나 애정이 아닌 농사꾼들의 농사짓는 이야기다. 전통 술의 원료인 쌀에서부터 최고의 술이 만들어진다는 신념아래 나츠코가 배워가는 농사짓는 법과 농부의 마음, 결국에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은 바로 이 시대의 내가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인 것이다. 먼 미래의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인 비옥한 땅을 과도한 농약살포로 산성화시켜 황폐케 하는 현재의 농사법의 부조리함을 성토하는 만화속의 인물을 통해서 가슴 먹먹한 비애에 빠져들었다. 물론 일부에서 유기농을 실현하고 있으나 아직도 멀었다. 농업에 미래는 없다는 패배주의적 사고가 팽배했을 뿐이다. 2차 쌀 시장 개방을 앞두고 연일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누구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용하고 있는 농약을 폐기처분하고 땅을 살리자고, 그 땅에 우리의 미래가 걸려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적은 양이라도 인간에게 이로운 건강한 쌀을 생산하면 높은 가격에 수매하겠다는 약속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런 생각에 젖는 나는 어쩔 수 없는 농사꾼의 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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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4-11-11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을 빚기 위해 쌀부터 재배하는 나츠코의 집념과 노력이 대단했던 작품이죠.. 나츠코의 할머니가 주인공인 명가의 술 2부도 있습니다. 보셨나요?

저는 저 책을 본 후로 전통주만 찾아서 먹기도 했습니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맛을 음미해가며요..ㅎㅎ

변화란건 갑작스럽게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기농을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거기에 따라 점점 농약 사용이 줄어들고.. 깨달음이 너무 늦지 않기만을 바랄뿐입니다..


겨울 2004-11-12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2부는 읽지 못했지만, 꼭 읽어볼 생각입니다. 유기농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만하고 화만 낼 뿐 무엇하나 능동적으로 개선할 의지가 없는 나부터 문제가 큽니다. 돌아가 살 곳은 거기라고 생각은 하지만 농사를 짓겠다는 각오는 없으니까요.
 

 

알라딘이 개편으로 오락가락 하는 동안 나는 죽도록 앓았다. 날 잡아 농사일을 돕는답시고 일요일 하루 새벽부터 저녁까지 막노동을 한 결과다. 뭐, 처음부터 몸살이 날 각오는 단단히 하였지만 정작 앓아누우니 딱 죽을 것 같았다. 여름, 가을에 걸쳐 그 힘든 노동을 하시는 부모님 앞에서 주름을 잡을 수도 없고 설마 죽기야 하겠냐고 큰소리 탕탕 쳤는데, 역시나 몸은 정직하다. 팔과 다리에 알이 밴 것은 물론이고 목과 가슴까지 욱신거린다. 하도 호되게 앓아서 살아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줄 모를 정도다.


성큼 다가온 겨울의 느낌에 몸은 움츠러들지만 마음은 꽝꽝 언 호수처럼 고요한 것이, 이럴 때 떠오르는 것은 한적한 산사다. 들리는 건 바람소리, 들짐승과 벌레소리가 전부인 깊고 깊은 산 속의 작은 절. 원하지 않아도 사람에 치이고 치이는 생활이 견디기 어려운 순간에 떠나는 일종의 몽상이지만 심신을 다스리는 데 큰 힘이 된다. 지금은 몸이 아팠던 탓으로 맘이 약해져 있어 상상하는 것만으로 만족감이 차오른다. 여행을 동경하나 쉬이 떠나지 못하는 내가 즐기는 이를테면 영혼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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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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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화장실에서 읽었다. 그럴만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어느 날 아침에 얇고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걸린 게 이 책이었고, 생각 의외로 짧은 이야기들은 굳이 집중이 필요치 않아, 아침마다 볼 일을 보며 읽기를 마쳤다.


어찌 보면 사사로운 이야기임이 분명한 저자의 성장기에 등장하는 이런 저런 책들을 훑어  가노라면 ‘퍽이나 운이 좋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건 몰라도 읽을거리만은 풍요로운 환경이었음이다. 위로 있는 형들의 영향도 지대해서 서 경식의 독서편력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거기에 적당한 감성과 섬세함을 더하여 정체성을 두고 고민하는 모습은 아름답기조차 하다. 그는 불운을 색칠하고 절망을 다듬이질 하여,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글로써, 타인의 잠든 오감을 흔들어 깨우는가 하면, 가슴을 온통 절절한 애국심으로 들끓게 한다. 그의 사색과 번뇌 앞에서 목이 메이 지 않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어린아이의 눈물에 관해 저자가 인용한, <하늘을 나는 교실>이란 책을 내가 읽은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그가 기억하는 여비가 없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소년 이야기는 나 역시 제일로 슬퍼했던 이야기다. 같은 책을 읽으며 유사한 상념에 젖었다는 발견 아닌 발견이 새삼 기쁜 것은 순전히 저자에 대한 애정 때문이리라. 그가 읽었던 책과 그가 쓴 어떤 책이 인생의 굽이굽이에서 가쁘게 숨을 내쉬던 순간마다, 내게 큰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까. 그는, 잊고 있던 오래된 책에 대한 애정을 새록새록 돋아나게 한다. 낡아서 누렇게 색이 바랜 옛 책을 다시 꺼내 먼지를 닦아내게 만든다. 그 책의 줄거리 뿐 아니라, 그 책을 사게 된 경위며 시절을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책의 운명은 그 주인과 함께 다한다는 진리에 설레는 오늘, 나는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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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9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10-29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주문 또 깜빡했네요.
꼭 읽고싶은 책이거든요.
님의 글 읽으니 더 땡깁니다.

겨울 2004-10-29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로드무비님 메이지로 썼다가 매이지로 고친 거였어요ㅠㅠ

픽팍 2004-11-14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흠 대학 들어와서는 용돈이 쪼들리다 보니

책을 사기보단 자꾸 학교에서 빌려 읽게 되니깐

책을 사는 즐거움을 느낀지가 참 오래 된 것 같습니당

역시 좋은 책은 사는 것도좋을듯;;;;

겨울 2004-11-15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사는 것은 역시 좋겠지만, 빌릴 수 있는 한은 빌려보심이. 책값이 장난이 아닙니다. 어떤 책들을 빌려보는 대신에 선택받지 못한 다른 책들을 산다해도 세상에 책들은 무궁무진하더이다.
 

멸치를 다듬어 본 사람은 안다. 멸치에게도 얼굴이, 표정이 있다는 것을. 펄펄 끓는 가마솥, 죽음을 기다리는 최후의 순간, 체념을 하고, 다소곳이 눈을 감고, 입을 다문 멸치들 속에 있는, 한껏 입을 벌린 불가해한 존재를. 그 순간 내질렀을 비명, 아우성, 외침, 흐느낌의 덩어리가 확하고 달려드는 불가해한 느낌을. 오늘, 저녁 반찬거리를 준비하면서 신문지 위에 펼쳐 놓은 한 무더기의 잔해 속에서, 나는 아주 기이한 존재들을 만났다. 살아서는 은빛으로 찬란했을 아름다운 꼬리와 총기로 번뜩였을 눈동자가 이제는 공허만을 담고 있음에 ‘가련하다’ 하면서, 나는 시뻘건 고추장에 너를 찍어 통째로 씹어 삼킨다. 애초에 죽인 것은 내가 아니라고 발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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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4-10-28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린 감성이십니다요.. 그저 먹을거리로밖에 보아지지 않는 이 무감동함을 저는 어찌하면 좋습니까..ㅡ.ㅡ;;

프레이야 2004-10-28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진 사념입니다.^^

잉크냄새 2004-10-29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고추장에 찍힌 멸치를 떠올리며 술한잔 생각나는 이 사념은 또 무엇인가요^^

겨울 2004-10-29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자고 쓴 얘기입니다.^^
 


새벽 다섯 시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할 말을 잃었다. 꽤 긴 시간을 병석에 누워계셨다. 곧 큰일을 치룰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訃音의 알싸하고 먹먹한 느낌은 남은 잠을 쫓기에 충분했다.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일생은 고약한 술버릇과 함께 일년 사계절을 놀면서 먹기가 전부였다. 명색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서 할머니가 논일 밭일로 허리가 구부러지는 동안에도 뒷짐을 지고 동네 어귀를 어슬렁어슬렁 한가로이 다니셨다. 어린 시절, 기억에 박힌 모습도 돋보기안경을 쓰고 신문을 읽거나 붓글씨를 쓰거나 아니면 곤두레만두레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거였다. 할머니를 상대로, 아들을 상대로 혹은 며느리를 상대로 한 주정은 온 동네가 다 알 정도로 유명했다. 그러니 할아버지 하면 떠올리는 감정이 부끄러움일 수밖에 없었다.




몇년 전, 할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후, 그 죽음의 원인으로 할아버지의 지독한 구박을 꼽으며 얼마나 원망과 미움을 쏟았던지. 슬하에 8남매를 두었지만 온전히 가르치고 보살핀 자식도 없고, 비교적 건강하셨다가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아버지조차 할아버지가 덜컥 앓아누우셨어도 이렇다할 감정 표현이 없으셨다. 그 뒤로 바깥출입을 거의 못하고 계신 할아버지는 고립무원이었다. 이미 인심을 잃을 대로 잃어서 누구도 선뜻 할아버지를 동정하고 애달파 하지 않았다. 나도 시골집엘 다니러 가면서도 지척에 있는 할아버지를 찾아뵙는 기특한 생각은 싹조차 틔우질 않았다. 




할아버지의 부음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하필 이렇게 바쁜 시기에다. 가을걷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부모님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할 타격이 걱정이다. 그리고 그 혼란의 와중에 계실 외할머니의 건강. 노인들은 주변의 죽음에 대해 민감한 까닭이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아버지인데 내가 이렇게 몰인정해도 되는 건가. 속으로는 몰라도 겉으로는 눈물도 흘리고 슬퍼하는 연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예전 기억 속의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천년 만 년이라도 살 줄 알았다. 허리 꼿꼿이 세우고 뒷짐을 진 커다란 체구로 집 앞을 지나가시던 그 분이 병들어 일생을 마감하셨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은 아직도 내게 생경하기 짝이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큰아버지가 간암으로, 이제 할아버지가 운명을 달리 하셨다. 무의식중에 다음 차례를 헤아리는 내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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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0-2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들 나이를 먹어가면 무의식중에 다음 차례를 헤아리는 경우가 있는것 같습니다.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전부 비슷한 연배의 부모님들을 둔 친구들의 마음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