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전날, 이유 없이 마당에서 넘어지셨다는 할머니, 괜찮으려니 하시면서 병원에도 안가고 버팅기시다가, 오늘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시다. 웬 교통사고 환자가 그리도 많은지, 가족들이 떼를 지어 들이닥치는 응급실 한 귀퉁이에서 그래도 가장 무난해 보이는 할머니를 보는 마음이 짠한 것이.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보니 손목뼈 부근에 작은 조각들이....... 일단 반 깁스를 하고, 낼 전문의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응급의가 설명한다. 조각이라니, 부러지거나 금이 간 것보다 더 나쁜 상황 아닌가? 며칠간 통증도 심하셨을 텐데 어떻게 참으셨는지. 노인들의 괜찮다는 말은 절대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데, 그나저나 큰일이다. 두고 온 할머니가 못내 걱적되어 쓰라린 마음과는 달리, 돌아오는 길은 생각 외로 수월했다. ........ 그래서, 덜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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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9-18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빨리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할머님들은 늘 그러시더라구요. ㅠ.ㅠ

겨울 2005-09-19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문의의 진찰을 받은 결과 뼈가 부서진 것은 아니고 인대가 늘어난 정도랍니다. 손목이 많이 붓고 통증도 굉장히 심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한시름 놓았습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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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은 유난히도 힘겨웠다. 먹고 자고 일어나는 기본적인 일상을 지속하는 것조차 버거워 헐떡였다. 그리고 기력이 쇠한 이유를 나이 탓으로 돌렸다. 먹을 만큼 먹었잖아. 힘든 게 당연해. 더 이상 핑계 댈 마땅한 게 없으니 가장 만만한 나이를 들먹이는 허접함, 동정표를 기대하는 비겁함에 이를 악물며 울음을 참아냈다. 그나마 잘한 일이지 암, 잘했어.


그리고 스밀라, 그녀를 만났다. 아름다운 눈 위의 스밀라, 무소의 뿔처럼 돌진하는 스밀라, 참을성이나 신중함, 두려움과 공포를 모르는 얼음공주 스밀라와 만났다. 사춘기 시절 가슴에 품었던 제인 에어의 독기와 고집을 닮은 이 여주인공의 매력에 소설을 읽는 내내 낄낄 웃어댔다. 행복해서, 그녀가 사랑스러워서, 내가 처한 세속적인 문제들을 그까짓 꺼, 라는 한마디로 무시할 것 같은 여자라서 흥에 겨웠다. 그래서 주문처럼 스밀라, 스밀라, 스밀라 하고 부르면 삶의 해법을 제시해 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의 처음은 빠르게 읽히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어린 이사야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에둘러 가거나 속도를 내는 건 불가하다. 아이에 대한 묘사와 스밀라의 기억과 마주치면 주춤 읽기를 멈추고 숨을 참아야한다. 등장하는 하나하나의 인물들이 저마다 비밀과 신비를 품고 있지만 그 중, 누구보다 눈부신 존재는 단연 이사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아이를 까마득한 지붕 위에서 천길 아래 차가운 눈 속으로 밀어낸 어떤 존재, 거대한 그 무엇의 실체를 감지하고 무모하고 과격하게 전사처럼 달려가는 스밀라를 놓칠 수가 없다.


어머니의 죽음이후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속하거나 지배받기를 거부했던 스밀라가 유일하게 소통했던 이웃, 작은 소년 이사야는 스밀라의 고향과 닮았다. 불모의 땅 그린란드, 강인하고 민첩한 이누이트 여인이었던 어머니의 나라, 이제는 갈 수 없는 땅에 대한 그리움과 상처 그리고 동경을 공유했던 사랑하는 이사야가 죽었다. 경찰은 단순한 실족사로 단정하나 눈 위의 발자국을 따라서 스밀라에게만 보이는 지도에는 그 사건이 사고가 아닌 살인임을 알아챈다. 


스밀라를 스밀라이게 하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서 어머니가 있다. 스밀라의 속절없는 상처, 혹은 열정과 냉소는 그녀로부터 왔다. 스밀라는 척박한 땅, 그린란드의 생존방식인 추적과 사냥의 습성을 문명세계에서도 그대로 답습한다. 마치 자궁으로의 회귀를 꿈꾸듯이, 야만과 문명의 경계에서, 스밀라의 사색과 고독은 달콤한 초콜릿 같은 유혹의 냄새를 흩뿌린다. 그리하여, 기꺼이 중독 되어지기를.

 

아직 겨울은 멀지만 그 겨울이 어서 오기를, 그리하여 스밀라의 감각으로 눈과 얼음의 결정을 들여다보는 몽상에 잠긴다. 늦더위에 숨을 몰아쉬며 걷다가도 스밀라의 눈을 떠올리면 서늘한 기운과 함께 정신이 명료해지는 듯한 착각, 물론 과도한 감정이입과 상상력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 멋대로의 방식에 대해 누가 뭐랄 것인가.


보통 한번이면 충분하지만 이 책은 처음보다 느리게 다시 읽고 싶다. 스토리에 빠져들어 원치 않음에도 중반부터 후반까지를 너무 빨리 읽고야 말았다. 


진흙탕을 지나 수면으로 떠올라온 듯한 기분이 드는 아침이 있다. 발은 시멘트 덩어리에 묶인 채로. 밤사이에 숨을 거두어버렸다는 것과 벌써 죽어버려서 생명력 없는 기관들을 이식해줄 수도 없다는 것 외에는 별로 좋아할 만한 일도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와 같은 기분. 일주일의 일곱 번 아침 중의 여섯 번이 그렇다. 


이런 사유는 밑줄을 그어가며 천천히 읽고프다. 무릎을 탁 치면서. 책의 첫 장을 열었을 땐 누가 이사야를 죽였는가에 대한 통렬한 분노로 떨었으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은 그 연약한 아이를 무방비상태로 방치하고 제물로 내어준 무력하고 나약한 알코올중독자인 엄마, 율리아네에 대한 분노로 떨린다. 그녀는 왜 스밀라와 스밀라의 어머니처럼 강하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이사야는 죽지 않았을 테지. 그리고 이 소설을 읽을 수도 없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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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9-17 0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어보고 싶지만, 책을 구입만 해놓은터라.. 잠시 미룹니다..;;
우울과 몽상님,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__)
 

 

부침개 두 장에 막걸리 반잔을 마시고 났더니 머리가 핑 돈다. 술에 얽힌 기억들이 워낙 심란한 관계로 술자리도 술을 마시는 것도 즐기질 않지만 술은 제법 마신다. 특히 소주의 씁쓰레하니 쏘는 맛이 좋아서 유쾌하게 권하는 한잔 정도는 찡그리는 법도 없이 넘긴다. 물론 정신을 잃을 만치 취한 적은 불행히도 없다. 대대로 술에 강한 족보이기도 하고 식구들도 할머니를 비롯하여 술을 거절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주변에는 술이 들어가면 인격이 변하는 인물이 있다. 이런 인간을 보면 술의 해악에 소름이 돋는다. 낮술을 마셔 벌건 얼굴을 하고 시비 같은 농담을 던지는 인간에게도 불쾌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술 한 잔의 힘을, 일터에서 쌓인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마법을, 좋아하는 사람과의 허물없는 대화에 등장하는 쨍하는 건배의 술잔을, 울고 웃으며 고뇌하고 후회하는 반성의 술잔을 좋아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죽은 듯이 잠에 빠지는 취한 이를 연민한다.


하루 동안 맹렬히 미워마지 않던 J, 웃으며 다가와 착한 척(?)을 하니 마주보고 웃어진다. J야, 나는 네가 가엽고 애잔하다. 타고난 악인도 아니고 영악하지도 아니하며 마땅히 부려야할 세속의 욕심이란 한점도 가지도 있지 않음이 원통하다. 너의 선량함을 있는 그대로 칭찬만 할 수가 없어 속상하다. 너는 한번도 내 보인 적 없는 네가 받았을 상처들이 나의 상처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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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9-3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는 한번도 내보인 적 없는 네가 받았을 상처들이 나의 상처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사랑니를 빼러갔다가 잡혀서 당분간은 계속 치과에 다녀야 한다. 그래서 우울 중이다. 오래도록 행복하게 사랑스럽게 예쁘게 살기를 소망했는데, 처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후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 J, 때문에 우울하다. 나쁜 일은 어째서 한꺼번에 밀어 닥칠까. 언제나 그렇다. 감기에 걸리면 몸살이 따라오고, 덤으로 마술에 걸리곤 했지. 설마 하다가 역시나, 엉망진창이 된 고달픈 심신을 붙잡고 하소연 하나마나.


거기다 살면서 절대적으로 상종하기 싫은 인간과의 대면이 있었다. 물론 이전에 그랬듯이 앞으로도 상식 밖의 저런 인간은 무수히도 만나겠지만, 사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기분을 토닥여 보지만 바닥까지 떨어진 기분이 영 되살아날 징조가 없다. 난 우울하면 잔다. 슬퍼도 잔다. 아파도 역시 들입다 잔다. 거기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이런 밤, 천둥이나 번개, 기둥뿌리를 뒤흔들 바람도 없는 밤이라니, 최악이다.


그래서 철딱서니 없는 망상을 한다. 광폭한 태풍이 부는, 마당의 감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그래서 정전으로 세상천지가 암흑이 되는 엄한 상상에 몸을 맡긴다.


가족이란, 버릴 수도 품을 수도 없는 가족의 인연이란, 정말이지 비극이다. 녀석들을 어쩌면 좋을까. 실수하고 용서하고 또 실수하고 그래도 용서하고 다시 실수를 반복하는 어리석음의 극치 앞에서 더 이상 말을 잃고 갈피를 못 잡겠다. 타인이라면 도대체가 반성이나 개선의 여지가 없는 인간을 몇 번이나 보듬었을까. 절대 그럴 리가 없지. 단호히 잘라내고 돌아서서는 결코 뒤돌아보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무정한 인간이,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고 만다. 요는 그 인내심의 한계가 과연 어디까지일지 궁금하다는 것이다, 우습게도.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나겠지만, 지금 내 이성은 신발을 벗어던지고 도망치고 있다. 쫓아가서 잡아야겠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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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9-14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 웃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겨울 2005-09-1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제 다 나았어요. ^^ 다행인 건 우울도 슬픔도 아픔도 길지가 않다는 것, 하루면 충분하다는 것.
 

 

어저껜가 막내의 전화를 받았다. 화단의 무성한 잡초와 자잘한 정원수와 보리수나무 등등, 남김없이 몽땅 베어 버렸다는 얘기였다. 말로는 잘했다고 했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대충 받아들였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마당을 보고는 헉하고 놀랐다. 말 그대로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 딱 한 가지. 베어낸 자리에서 올라온 목련은 남겨두었다. 작년에 흉하도록 높고 우람한 목련을 베고는 여름이 가도록 후회를 했으니까. 굳건히 버티고 서 있을 땐 몰랐다가 사라지니까 드러나는 효용성이랄까. 그 커다란 백목련은 마당 한 구석에서 우뚝 서서는 뜨겁게 내리쪼이는 햇볕을 가려주었던 것. 봄마다 피어 올리던 화사한 꽃송이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어리석게도 떨어지는 꽃과 잎이 지겹다고, 혹은 이웃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고 베어버리겠다고 원망을 퍼붓던 소심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자각한들 이제 와서 무엇하랴만. 다행히도 나무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어여쁜 줄기와 넙적한 이파리를 여름동안 만들어냈다. 올 겨울, 내년 봄을 지나면 두 배 아니 그보다 더 훌쩍 자랄 것을 믿는다.


자리공과 망초 등의 잡초들로 무성했던 올 여름이, 나는 사실 싫지가 않았다. 놀러왔던 지인이 물만 흐르면 계곡이 따로 없다고 할 정도로 거실 창을 활짝 열고 소파에 기대 바라보는 초록의 이파리들은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 주었고, 심심찮게 새들도 와서 놀다 갔다. 뽑아내고 뽑아내도 올라오는 돌 틈 사이의 잡초를 바라보며 흙과 공기와 나의 존재이유에 대한 소소한 즐거움도 발견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여름이 지나면 손에 몸에 걸리는 것들을 조금씩 베어내고 뽑고 버릴 생각이긴 했지만, 막내가 그 아이의 성격과 방식으로 모조리 정리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잘했다고 연신 잘했노라고 말했다. 잡초를 뽑아서 서운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당장 사용하지 않으면 무조건 처분하는 막내, 밥도 반찬도 딱 한 끼 먹을 것만 만들고 나머지는 가차 없이 버리는 막내의 생활방식을 나와는 다르다 해서 뭐랄 건 없다. 사소한 무엇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고 또 쌓아두는 내 성격을 썩 좋아하지도 않으니, 주변에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막내가 있음은 오히려 자극이 될 수도 있다. 단지, 시커먼 돌들이 흉하게 알몸을 드러낸 마당을 바라보는 심정은 여전히 허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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