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껜가 막내의 전화를 받았다. 화단의 무성한 잡초와 자잘한 정원수와 보리수나무 등등, 남김없이 몽땅 베어 버렸다는 얘기였다. 말로는 잘했다고 했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대충 받아들였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마당을 보고는 헉하고 놀랐다. 말 그대로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 딱 한 가지. 베어낸 자리에서 올라온 목련은 남겨두었다. 작년에 흉하도록 높고 우람한 목련을 베고는 여름이 가도록 후회를 했으니까. 굳건히 버티고 서 있을 땐 몰랐다가 사라지니까 드러나는 효용성이랄까. 그 커다란 백목련은 마당 한 구석에서 우뚝 서서는 뜨겁게 내리쪼이는 햇볕을 가려주었던 것. 봄마다 피어 올리던 화사한 꽃송이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어리석게도 떨어지는 꽃과 잎이 지겹다고, 혹은 이웃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고 베어버리겠다고 원망을 퍼붓던 소심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자각한들 이제 와서 무엇하랴만. 다행히도 나무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어여쁜 줄기와 넙적한 이파리를 여름동안 만들어냈다. 올 겨울, 내년 봄을 지나면 두 배 아니 그보다 더 훌쩍 자랄 것을 믿는다.


자리공과 망초 등의 잡초들로 무성했던 올 여름이, 나는 사실 싫지가 않았다. 놀러왔던 지인이 물만 흐르면 계곡이 따로 없다고 할 정도로 거실 창을 활짝 열고 소파에 기대 바라보는 초록의 이파리들은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 주었고, 심심찮게 새들도 와서 놀다 갔다. 뽑아내고 뽑아내도 올라오는 돌 틈 사이의 잡초를 바라보며 흙과 공기와 나의 존재이유에 대한 소소한 즐거움도 발견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여름이 지나면 손에 몸에 걸리는 것들을 조금씩 베어내고 뽑고 버릴 생각이긴 했지만, 막내가 그 아이의 성격과 방식으로 모조리 정리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잘했다고 연신 잘했노라고 말했다. 잡초를 뽑아서 서운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당장 사용하지 않으면 무조건 처분하는 막내, 밥도 반찬도 딱 한 끼 먹을 것만 만들고 나머지는 가차 없이 버리는 막내의 생활방식을 나와는 다르다 해서 뭐랄 건 없다. 사소한 무엇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고 또 쌓아두는 내 성격을 썩 좋아하지도 않으니, 주변에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막내가 있음은 오히려 자극이 될 수도 있다. 단지, 시커먼 돌들이 흉하게 알몸을 드러낸 마당을 바라보는 심정은 여전히 허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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