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텔레비전 한 프로그램에서 이 책 이름이 거론되었을 때, 사람들은 제목만 듣고 말라리야라는 병을 떠올렸다며 신기해했었고, 그렇게 이 책을 처음 접한 나도 이 책의 입에 잘 붙지 않는 제목에 당황하면서도 궁금했다.
너도 하늘말나리 라는 것인지, 너도 하늘말나리야 라는 것인지, 그 이름 조차 정확히 파악 되지 않았고, 혹시 나리꽃의 일종인가? 하는 추측만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이름에 대한 호기심으로 처음 만난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동화이기도 하지만 누구나를 위한 이야기 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늘에 대한 동경이 있다고 생각한다.
옛날부터 인류는 하늘에 대한 동경으로 하늘을 나는 꿈을 꿔왔고, 그 결과로 지금 우리는 누구나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 책은 하늘말나리라는 식물을 내세워서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키워온 하늘을 나는 꿈처럼, 아이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키우는 꿈과 희망을 이야기 해준다.
하늘말나리는 나리꽃 종류의 하나로 다른 나리꽃 종류들과는 달리 하늘을 향해 피는 진홍빛의 꽃이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세명의 아이들은 하늘말나리 같은 아이들이다.
어쩌면, 이 책 속에 나오는 아이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하늘말나리 일지도 모르겠지만.
1. 미르 이야기.
용이라는 뜻의 예쁜 이름을 가진 미르.
엄마 아빠의 이혼을 받아드릴 수 없고, 엄마의 잘못이라 생각한다.
엄마를 따라 이사 온 달밭마을의 진료소가 어색하기만 하다. 아이들과도 어울리고 싶지 않다.
미르를 위로하는 것은 진료소 앞에 서 있는 오백년 된 느티나무 뿐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말을 하지 않는 바우가 신경쓰인다. 저 애를 꼭 내가 말하게 하고 싶다.
2. 소희 이야기.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아빠와 아빠가 돌아가신 후, 재혼 한 엄마.
아빠와 엄마 모두 얼굴조차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립지도 않다. 원래 추억이 많으면 그리운 법이다. 하지만 난 아빠 엄마와의 추억이 없어서 그립지 않다. 그리고 할머니가 내 엄마고 아빠니까.
엄마가 보고싶은 적은 없었는데, 새로오신 보건소 소장님 때문에 엄마가 그리워진다.
난 미르가 부러운데, 미르는 자꾸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이 안쓰럽다.
3. 바우 이야기.
난 말을 하지 않는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같이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깨달은 어느 날부터 마음으로 엄마와 대화를 할 뿐이다.
엄마는 내가 점을 찍어놓고 새라고 해도 이해해주셨다.
내가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빠와 소희 누나, 그리고 소희 누나의 할머니.
그런데 왠지 미르에게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미르와 소희, 바우는 모두 아픔을 지닌 아이들이다. 그리고 아픔을 닫고 마음으로 이야기 하는 법을 너무 빨리 깨달은 아이들이다.
하지만, 서서히 깨닫게 된다. 서로에겐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 줄 힘이 있다는 것을.
한참 키가 큰 어른들도 때론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어, 쳐다보려고도 하지않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바라보고 보듬어주는 것, 아이들은 그렇게 순수하고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주 맑은 물에서는 그 속에 살고있는 생명체들을 관찰할 수 있듯, 맑은 아이들은 남의 아픔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볼 수 있게 된다.
다른 친구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비로소 자신의 아픔을 정확히 보게 되는 아이들은 아프기도 하고 서로 치유해주기도 하고 때론 그 아픔이 곪게 놔두기도 하면서 자라난다.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 줄 수 있는 힘. 그 힘이 아이들을 자라나게 하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대게 하고, 다시 웃을 수 있게 한다.
오백년간 많은 아이들을 매달리게 하며, 많은 세상의 일들을 겪으며 이제 그 나뭇가지가 밑으로 쳐지고 뿌리고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따뜻하고 기댈 수 있는 느티나무처럼 슬픔을 매달고 세상 일을 겪은 아이들은 따뜻하고 기댈 수 있는 누군가로 성장해 간다.
하늘말나리 같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키워가면서.
책과 만나며, 나도 미르와 소희, 바우와 친구가 되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픔을 이해하며, 내 아픔을 바라보는 법을 나도 그 아이들을 통해 배우고 있었다.
참 따뜻한 동화책이다.
내게 묻는다. 늘 핸드폰 액정에 하늘 바라보기라고 입력해 두면서도, 정작 하루에 한 번 하늘보기가 왜 그렇게 힘이 들었냐고...
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차마, 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먼저 흘러버린 내 시간이 무거워 고개를 숙인 것이라고 말하기 창피했다.
다시 내게 말한다.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말라고, 그저 흘러가게 두어야 하는 것이 시간이라고.
그러니 다시 하늘말나리가 되어 하늘을 보라고, 그러면 다시 꿈꾸게 될 것이라고.
내 마음을 바라보는 법을 알려준 이 책을 꼭 안아줘본다. 나도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