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탐구에 대한 의지.

어스시의 마법사 ㅣ 어스시 전집 1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책이 너무 예뻣다. 정말 마법사의 책같은 기분.

　

　아직 다 크지 못한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취향인 것인지, 반지의 제왕 같은 스케일이 큰 환타지 보다는 해리포터 같은 아기자기한 환타지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도 어스시가 뭐야? 하는 궁금증보다는 마법사라는 말에 두근거림이 더 컸다. 동화책을 읽는 듯도 하고, 꿈을 꾸는 듯도 하는 아기자기한 환타지가 펼쳐지길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아기자기한 환타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스시란 말에 의문을 좀 가져봤다면, 아기자기하지 않으리란 생각은 할 수 있었을텐데...

　Earth Sea의 한국어 표기, 어스시.

　지구가 아직은 평평하다고 생각되는 그 시절, 끝 땅(책에서 나오는 가장 마지막 땅의 지명)보다 더 멀리 나아가면 낭떠러지처럼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던 그 시절,  주인공 게드가 펼치는 모험이 이루어지는 곳은 바로 어스시.

　그만큼 큰 스케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리고 조금은 특별한 환타지이다.

　반지의 제왕같은 선과 악의 확실한 대립이 주를 이루는 웅장함도 나니아 연대기(아직 나니아는 접해보지 않았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같은 신화적 배경이 뚜렷한 웅장함도 아닌 자기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자신이 만들어 낸 의문 속에서 스스로 답을 구하는 철학적인 성찰이 웅장함을 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나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같은 김춘수 시인의 시에서 나타나는

　강한 존재탐구의 의지가 듬뿍 묻어난다.

　

　어스시의 마법사(마술사와는 확연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들에게 마법을 배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진정한 이름을 아는 것이다.

　그 진정한 이름은 원시시대부터 불리어 오던 그것의 이름, 즉 지금은 불리우지 않는 이름.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것의 본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된다.

　그러기에 마법사들도 자신들의 진정한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진정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그들의 본질을 내보이는 것이므로 너무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을 나타낼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주로 사용하고 진정한 이름은 그 이름을 만들어 준 사람과 자신밖엔 알지 못한다.

　혹여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 이름을 말해 주는 수가 있으며,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알려준다는 것은 자신의 진정한 신뢰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처음부터 작가는 존재에 대한 마법사들의 강한 의지를 내비춘다.

　

　새매라 불리는 주인공 게드는 자존심 때문에 죽은 영혼을 불러오는 마법을 수행하다 뜻하지 않게 어둠의 세계에서 악의 그림자를 부르게 되고 그것에 위협을 받는다.

　그 악의 그림자가 게드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게드는 진정한 자신을 잃게되고 결국 게드가 가진 엄청난 잠재적인 마법의 힘이 악으로 변질 되어 사용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게드는 자신의 잘못에 대항하여 계속 대항하는 여행을 하지만 결국은 알게 된다.

　그것에 이겨내는 방법은 진정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것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했다는

　윤동주 시인의 시처럼 진정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게드의 여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그리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나서야 그는 악의 그림자를 떨치고 위대한 마법사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환타지는 아니었지만, 너무 큰 스케일을 머리로 쫓지 못해 가끔은 헉헉거렸지만

　지금까지 인간이 줄곧 가져왔고, 앞으로도 계속 갖게 될 자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를 환타지에 결부시켜 이렇게 웅장한 내용을 만들어 냈다는 데에는 정말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책장을 덮은 순간부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아마, 또 어스시의 그 큰 배경 속에서 허우적거리겠지만

　좁다면 좁고 넓다면 끝없이 넓어보이기도 하는 이 지구 속에서 허우적대며 내 존재를 찾고 있는 내게,어스시의 배경 속에서 허우적대며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 왠지 지금의 내 모습 같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