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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이 책은 누구에게도 이야기 해주고 싶지 않다. 김영하씨를 비롯해 몇몇 분들이 이 책을 추천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리고 사실 나도 그런 루트를 통해 이 책을 만나게 되었지만 나로써 끝내고 싶은 책이다. (그런데 찾아보니 예전에 카페에 이 책에 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라는 당황스런 맘으로 지금이라도 게시물을 삭제 시켜버렸다. 다행이 답글이 없었기에 아무렇지 않게 지우고서야 맘이 놓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읽기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그 비참함에 꼼짝도 할 수 없어서 책을 다 읽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지 몇달이 지나서야 서평을 써 보는 이유는 그럴만한 이유가 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고, 갑자기 이 책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도서관에서 빌린 것이라 책이 집에 없어서 너무 안타까울 뿐.. 아마 소장하고 있었다면 다시 그 비참함에 허우적 댔으리라.) 하지만 이 책의 서평은 어디에도 가져가지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나로써 끝내고 싶다.
이 책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많은 유명 작가들의 추천작품이기도 했지만 제 2의 밀란쿤데라라는 수식이 붙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느낄 수 있지만 밀란쿤데라 작품에서 느껴지는 전반적인 은유가 이 책엔 나타나있지 않다. 그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 속에서 비참함을 배로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은 후 느껴지는 이 책의 매력은 무겁게 읽히진 않지만 그 느낌은 너무 묵직해서 차마 들 수 없는 그 무게감에 있다. 이 책은 (상) (중) (하) 세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가가 처음부터 세권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단지 책을 쓰는 과정에서 스토리들이 묘하게 연결이 되며 세권으로 연결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그 진실의 다양한 변화들에 과연 이것이 하나의 이야기가 맞는지 하는 의심이 들게된다. 하지만 가만히 책을 되짚어보면 그 묘한 연결관계에 감탄을 하게 되는데, 그 역시 이 책의 묘한 매력이라고 볼 수 있다.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경험을 하며, 단지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을 단련해 나가는 쌍둥이는 몸이 아닌 마음을 단련해 나간다. 단지 삶에 미련을 두지 않아야 하는 현실에 익숙해지기 위한 단련일 뿐이다. 윤리의식이나 도덕의식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은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알아버린 쌍둥이는 무서울만큼 잔혹하고 삭막하게 세상 속에 자신들을 형성해 나간다. 전쟁 후 헤어져버린 쌍둥이는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만나게 되지만, 결국 다시 분열해버린다. 마치 그들의 이름인 Claus와 Lucas(철자의 조합이 다를 뿐, 같은 철자로만 이루어진 이름이라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같이 말이다.
난 아직도 내가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아니, 그 누구도 이 책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철저히 작가의 경험으로 이루어 졌으며(그렇지 않을리 없다.),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작가와 동일한 경험 속에서 동일한 삶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과 (비록 세권을 한 이야기처럼 묶어낸 것이지만 그 제목은 상당히 잘 지어냈다고 생각한다.) 낱권의 소제목 -1. 비밀노트 / 2.타인의 증거 / 3.50년간의 고독-이 그 의미를 생각해보는데 조금 도움은 준다.
마음을 움켜쥐는 잔인함과 그 잔인함을 풀어내는 삭막함과 냉혹함. 그것은 한 개인이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닌, 한 시대가 이 세상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 비참함에 몸서리가 쳐지면서 우리는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안도감이 내어진다. 하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는 없다. 이 모든 것 역시 거짓말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