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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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전과없는 사람들이면 별 상관없는거 아냐?"
"그렇지. 아, 근데 아빠 경찰이 조사하면 하나 나올껄?"
"응? 뭐? 아빠 뭐 했었어?"
"예전에 밤 새 술먹다가 데모한다고 애들 몰려가는데 따라갔었거든. 그래서 집시법 위반으로 하루동안 노원 경찰서 유치장에 잡혀있었어. 그거 나올껄?"
"그럼 그렇지.. 난 또 뭐라고. 니 아빠가 혼자 뭔 일 할 배짱은 또 없어."
 
 한참, 法쪽에 잠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들을 보고 있을 때 문뜩 어떤 화제를 갖고 아빠랑 대화를 나누다가 저런 이야기까지 나왔었다. 엄마는 웃으며 아빠를 깍아내리셨지만 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는 집시법 위반에 관한 이야기에 아빠가 잠시 달리 보였었다.
 그리고, 그 무렵 수업시간 교수님께선 예전 자신의 대학시절을 회상하셨다. 일년에 반 이상을 수업할 수 없었던 그 때. 교문에 경찰이 배치되고 학생들을 감시하고 맘 편히 공부할 수 없었던 그 때, 교수님은 도서관에 앉아서 온갖 책들을 읽으셨다고 한다. 난 그 교수님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아니 오히려 그 교수님 때문에 잠시 관심을 갖고있던 法쪽에의 꿈을 접어버렸지만 그래도 그 때 잠시의 그 이야기에 지금 우리로써는 상상할 수도 없는 그 때의 학생운동의 기운을 잠시 생각해보았었다.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는 '공중그네'와 '인터풀'이란 책으로 낯이 익은 작가였다. 하지만 그동안 그의 책을 접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책에 대한 서평이 모두 '유쾌하다' '웃기다'라는 그의 위트에의 칭찬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재밌어? 라고 생각될만큼 위트 위주의 서평이 오히려 나에게는 그의 책에 접근하는 것의 바리게이트처럼 작용했었다. 이 책 역시 출판사의 리뷰를 보고 끌린 이유로 보게 되었지만, 사실 그 표지는 약간 거부감을 들게 했었다. 그의 전작을 위트가 난무하는 작품이라 평가했던 사람들의 지지를 다시 바라는냥 부리부리하고 날카로운 인상의 한 남성이 강해보이지만 재미있게 그려있었기 때문이다.
 
 
 카스트로와의 인연도 은근히 자랑하는 이 아버지라는 사람은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고 있으면서도 현관에 체 게바라의 사진을 붙여놓고 아나키스트임을 내세우며 국가의 피지배층이 되는 것을 전면적으로 대항하고 있는 인간이다. 학교 갈 필요따윈 없다 하고 수학여행 비 따윈 내줄 수 없다며 학교에 매일 팩스를 보내고 이 인간... 과연 아버지인가 하는 의심조차 든다. 아키라 아저씨라는 사람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부모의 몰랐던 과거를 하나 둘 알아가게 되던 차에, 부모의 엄청 수상스런 과거와 그 과거에 메달려있는 현재의 사건들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버지가 그렇게 노래부르던 남쪽 섬으로 가게된다. 하지만 거기서도 사건은 매한가지... 역시 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소리에 시달리고 타인 소유권지에 집을 짓고 개인 사유지가 된 그 땅을 포기할 수 없다고 싸우는 건 도쿄나 이 곳 이리오모테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왠지 점점 아버지가 아버지처럼 보이고, 가족도 가족답게 되고, 지로도 계속 부정하고만 싶던 아버지의 입장과 부러워보이기도 했던 지배층의 입장을 생각해보게 된다.
 
 
 나도 학교를 다니며 소위 운동권이라는 사람들을 봐 왔고, 이야기 들었고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했었다. 수배자가 되어 도망다니며 현 체제를 부정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난 멋있다는 생각보다도 가끔은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우는건가? 하는 의심을 가질 때가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학생운동하면 보여지는 그 열정과 패기넘치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도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모르는 채, 언젠가 정치가가 되었을 때 자신의 이력을 수식해줄 그저 혁명이라는 꼬리표, 그리고 운동권이라는 이름표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것 같아 같은 학생의 입장에서 위해줘야겠다는 것보다는 쯧쯧쯧하고 볼 때도 많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젊은 우리들이 간과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이런 문제를 집어줄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 작가가 멋있어 보인다. 그것도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유쾌하고 가볍게 이야기 하는 것이 대단하다. 물론 사건을 일으키는 중심에 늘 서 있는 아버지란 존재는 사실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늘 엉뚱해보이는 그의 발상 자체가 우리에게 웃음을 더욱 안겨주지만 그가 안겨주는 이 웃음이라는 것이 자세히 생각해 보면 사실 우슬 만한 일은 아니다. 그의 말은 백이면 백 다 옳은 구석이 있다. 이렇게 우리에게 잊혀질 법한 문제부터 시작해 이 작품 구석구석엔 현대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알차게 담겨있다. 꼭 어렸을 때 선물받던 과자 종합세트를 받은 기분이다. 부담스런 선물이 아닌 것 같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하나하나가 너무너무 맛있는 과자 종합세트.
 
 그렇다고 이 책이 온전히 사회문제만 꼬집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소년의 가족사이면서 소년 자신의 성장기 역시 담겨져있다. 그 나이에 고민할 만한 것들, 그 나이에 느끼는 세상에 대한 괴리감, 그 나이에 느낄 수 있는 어른이란 존재의 무력감 그리고 강함, 그 나이에 느끼게 되는 자아성찰감 그 모든 것 역시 두권의 책에 온전히 담아낸다.
 
 이 책은 서평만으로는 짐작도 할 수 없을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아마 그의 전작 공중그네와 인더풀도 그랬을 것이라 생각된다. 단지 그 많은 이야기를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짧게 전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위트를 강조해 그 속에 감춰진 많은 진실들을 이야기 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독자들의 감상이 따라가기 힘든 작가의 힘. 그 속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온전히 빠져들었다. 이 책, 과거에 대한 재고를 하게 해줌과 함께 현대 사회에 스며들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제시하고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안겨준다. 정말 종합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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