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몸으로 춤을 추는 여자였다
쥘리 보니 지음, 박명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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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시오랑의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를 생각했다.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 토로하며 죽음의 환희를 기다리는 사색자의 글을 곱씹으며 함께 어둠의 나락으로 빠졌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왜 우리는 태어나서 이 모든 고통을 경험해야 하는지, 죽음의 공포를 경험할 것을, 신은 왜 나를 이 곳에 내려놓았는지 의문은 점점 내 머리를 짓눌렀다.

 

그 책을 떠올린 것은 출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이 책의 내용 때문일 것이다.

출산은 생명을 태어나게 하는 것이고 죽음을 태어나게 하는 것이라던 한 문장이 이 책을 깊이있게 한다. 스트립댄서를 선택한 삶, 그 안에서 생겨난 사랑, 사랑이 만들어 낸 생명의 신비, 신비로운 경험이 제공한 꺾여버린 날개, 날개가 땅을 끌리는 순간 보이기 시작한 수많은 여자들의 고통과 환희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는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전 스트립 댄서의 추억과 현실의 비애, 그리고 그녀가 경험하는 다양한 산모의 모습들은 자유를 갈망하나 현실에 좌절하고 마는 사람들의 모습과 대부분이 공유하는 혹은 공유할 삶의 한 부분 속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나는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준다.

 

원제가 <2호실chambre 2> 이기 때문에 한국어 제목이 더욱 선정적으로 비춰졌다. 마케팅 전략이라기엔 탐탁치 않은 원제와 번역본 제목 사이의 갭이 불편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알고난 후 원제보다는 한국어 제목에 더 마음이 간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것이다. 우리가 가장 자유로웠을 때는 아마 태어난 직후가 아니었을까. 그 때 우린 모두 알몸이었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세상을 향해 울음을 터트린 그 순간, 우린 가장 원시적이었고 삶의 기운이 가장 충만했으며 그 어떤 것도 가릴 것이 없었기에 순수한 감정은 표출되었다. 배가 고프면 울었고 사랑 받고 싶으면 울었다. 그 가장 원시적인 자유의 모습이 베아트리체의 스트립 댄서에 대한 열망으로 대변되는 느낌, 그것이 아마 그녀를 가장 고귀하게 이해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어 제목은 꽤나 책 내용을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물론 그것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목차가 매력적이다. 특히 목차의 두 번째 페이지를 옮기자면

- 오늘 저녁에는 비가 내린다 61

- 6호실 67

- 나는 현대식 카바레에서 춤추던 시절의 삶을 사랑했다 74

- 나는 죽었어야만 했다 82

- 7호실은 아무 문제가 없다, 그건 분명하다 87

- 춤을 춘다 92

- 그래서 10호실에 가면 언제나 화가 난다 102

- 삶을 계속되었다, 콘서트와 길처럼 105

- 8호실에는 아이를 잃은 부인이 있다 110

 

이 목차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감각적인 목차는 때로, 제목의 선정성을, 내용의 다소 부실함을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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