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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죽이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읽었다. 작가만의 재기와 상상력에 빠져 한동안 노통브의 책들을 다 섭렵하다가 어느 순간 손을 떼게 되었었다. 가독성과 재미, 두 가지 요소가 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임에는 틀림 없었으나, 어느 순간 그녀의 패턴이 비슷해 보였던 탓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그 때 느꼈던 그런 감정마저 희미하게 만들기 마련이라, 문득 궁금했던 것 같다. 다작한다는 그녀가, 프랑스에선 노통브 신드롬을 일으킨다는 그녀가, 여전히 재미있는 글을 쓰고 있을지가 말이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노통브의 시간에 관심이 갔다. 제목 『아버지 죽이기』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풀어내고 있을 것임을 짐작하게 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이젠 진부한 그 소재를 풀어냈을지 호기심이 일었다. 분명 노통브라면 독특한 방식으로 진부하지 않게 그 뻔한 이야기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예상은 맞았다. 노통브는 자신의 방식으로 수 많은 방식으로 되풀이 되어 왔던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풀어내야 하는 주인공 조는 아버지가 없다. 어머니는 너무 많은 남자와 잠자리를 했기 때문에 그 중 누가 조의 아버지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어린 조는 그 많은 남자들 때문에 자신의 집에서 쫓겨난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미워해야 하지만 어머니란 사람은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고 미워해야 할 아버지는 부재했다. 가족의 부재,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근본적인 상실감은 조에게 가족에 대한 갈망과 더불어 광기를 제공한다.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던 스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도, 그를 파괴시키고 싶어하는 조의 심리는 크리스티나를 향한 사랑과 그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 속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스승인 노먼에게 조는 당신을 아버지로 선택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그가 자라오며 보여줬던 그 모든 행위는 그를 아버지로 인정했던 것이며 그를 넘어서려는 내면과 외면적인 투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소설의 반전은 노먼의 행동에서 보여진다. 보는 순간 자신의 반 쪽임을 알았다던 크리스티나를 외면하고 단지 조의 믿음이 잘못 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조의 뒤를 밟는 노먼의 모습은 자식이 자신보다 잘 되길 바라면서도 자신과의 관계를 끊임 없이 유지한 채 가길 바라는 것으로 그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부모들의 일반성과 다르지 않다. 자신이 가진 기술과 철학을 가르쳤고, 최고가 되길 바래왔지만 결국 관계 앞에서 노먼 역시 자신과 조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박탈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습에서 물고 물릴 수 밖에 없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두드러지게 보여지고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노통브는 여전히 가독성과 더불어 특유의 힘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녀작에서부터 아버지와의 관계를 드러내던 그녀가 이 작품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독립했음을 선언했다. 그렇다면 다음 작품은 어떤 변화된 양상으로 독자를 찾아올까. 그것이 심히 궁금하다. 그 궁금증으로 나는 다시 노통브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