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싶은 집은 - 건축가 이일훈과 국어선생 송승훈이 e메일로 지은 집, 잔서완석루
이일훈.송승훈 지음, 신승은 그림, 진효숙 사진 / 서해문집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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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하는 건축가』를 보았다. 마을 회관을 짓기에 앞서 정기용 건축가는 그 곳을 실질적으로 찾는 노인분들에게 어떤 것이 가장 필요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는 마을 회관에 공공목욕탕을 짓는다. 외관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한들 그 곳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거나 주변의 자연과 어울리지 못하면 그것은 진정한 건축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이론이었다. 그 말에 공감하기에,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의 건축에게 축복을 받고 자랐기에-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살던 집 옆에는 대전 정부청사가 있고, 그 곳에는 권력과 시민을 일치시키자는 정기용 건축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그의 마지막에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이처럼 건축이란 사람을 위한 것이기에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살게 하는 환경이 먼저여야 한다. 그것을 글로서 보여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건축가 이일훈이 어느 날 개인주택 건설을 의뢰받는다. 의뢰인은 다름아닌 국어교사 송승훈. 이일훈은 개인주택을 짓는 일을 탐탁지 않아 했지만, 자신의 마인드와 비슷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 송승훈 선생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의 집을 짓기로 한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은 이메일을 통해 조율되고, 송승훈 선생의 집은 조금씩 구체화 된다. 그렇게 오고 간 이메일이 82통, 그 사이 집은 완성 되었고 그 이메일은 그들의 생각이 쌓여 집이 된 것처럼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그러니 이 책은 한 국어교사의 감상과 이상이 담긴 생활에세이임과 동시에 한 건축가의 신념이 담긴 예술에세이이기도 하다.

어쩌면 국어 교사이기에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건축가 이일훈은 글로 그가 살고 싶은 집을 적어보길 권한다. 그의 생각, 그의 꿈을 알기에 글만큼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그의 그런 제안이 담긴 이메일을 보고 나는 나의 집을 생각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오르는 집이었으면 좋겠다. 엉뚱하고 개성이 넘쳐서 어디로 튈지 모르겠지만 그 뼈대는 시간이 지나도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집. 그래서 사람보다 책이 우선이여도 이상하지 않고, 책보다 고양이 두마리가 우선인 것이 납득이 가면 좋겠다. 내 생각은 이렇게도 추상적이다. 하지만 그런 글에서 건축가는 선생의 의도를 읽고, 선생은 건축가를 신뢰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공감해 가며 사람을 얻고 공간을 얻는다. 소유라는 것이 무소유보다 더 아름답게 다가온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사진을 보며 몇 번이고 미래의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구상했다. 나는 햇볕에 기운을 차리는 사람이니, 창은 동쪽에서 남쪽을 지나 서쪽까지 길게 나 있었으면 좋겠다. 집의 구석구석에는 엉뚱하게 책이 들어가 있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주방 찬장 사이에 책장이 있거나, 기둥 가운데가 뚫려 책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거실 한 벽면에는 공간박스가 캣타워 처럼 연결 되어서 책 꽂이 역할도 하며 고양이 놀이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고 고양이는 집안을 활보하는 모습이 그림처럼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그 꿈들이 모이고 커져 책을 읽는 내내 자신의 공간을 소유한 송승훈 선생이 부러웠다. 하지만, 꿈은 꿀 때 더 아름다울 수도 있는 법. 그런 자기합리화로 마음을 가라앉힌다. 아직 나는 정리할 시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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