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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몽뚜 장의 상상발전소
김하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6월
평점 :
호접지몽이란 말에 대해 생각한다. 그 단어를 알고 난 후부터니까 내 인생의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종종 이 단어를 떠올렸었다. 꿈에서 깨었을 때, 특히 꿈이 내 욕망을 반영하고 있었을 때, 그 때마다 나는 우주 어딘가에 또 다른 내가 여럿 살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또 다른 나들은 내가 욕망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여기의 나는 또 다른 나 중 누군가의 욕망이다,라고 생각하면 그 어떤 외로운 순간에도 외롭지 않았다. 내가 나비일 수도, 나비가 나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렇기에 살 수 있었다. 욕망이 반영 된 상상이 있었고 상상이 곧 꿈이 되었고 꿈은 현실이 되기도 현실을 좌절시키기도 했으나 이것은 늘 랜덤이었으니까.
이 책을 읽다가 까물까물 잠이 들었다. 아니,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비틀거렸다. 속눈썹 위에 아슬하게 매달려있는 형광등의 불빛과 메트로늄같이 일정하게 내 몸을 스치는 내 고양이의 꼬리털이 현실을 알려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 꿈에서 나는 더 상상해보라는, 더 끝까지 들어가보라는 레몽뚜 장의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허구 속에서 내 상상 속으로 들어 온 그는 남자 같기도 했고 여자 같기도 했고 사람이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내 상상 속으로 들어옴으로써 하나의 실재가 되었다.
그를 하나의 실제로 받아들였기에 물고 물리는 이야기 속에서 자유롭게 두려울 수 있었다. 자신이 주인공인 소설을 발견한 책 속 인물의 공포처럼 내게도 그 공포가 찾아왔다. 팍팍한 현실에 대한 거부, 그 거부 때문에 만들어 지는 불안이 제공하는 욕망과 그 욕망들과 맞지 않아 더 팍팍해지는 현실, 이런 큰 순환적 요소가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각각의 이야기가 되어 맞물리고 굴러가기 때문에 이 책 속에서 나를 찾기란, 내 불안이 만들어 낸 공포를 찾기란, 그 공포가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욕망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낯설 수도 있는 이 구조의 이야기에 숨도 못 쉬고 빨려 들어간 것은 그런 이유 였을 것이다.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초콜릿 공장을 견학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욕망을 이미지화 하는 건 어떻게의 문제일 뿐 무엇을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완전하게 깨어날 순간이 왔다. 이 완전이라는 두 글자에 의심이 들었다. 과연 완전하게 깨어나는 것이란 있을까. 나는 현실에서 여전히 무사하지 않을 것인데 깨어나는 것이 과연 의미는 있을까. 의미가 있을지 없을지란 알 수 없지만, 결국 살아봐야 알 일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눈을 떴고 책은 덮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