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번지는 유럽의 붉은 지붕 - 지붕을 찾아 떠난 유럽 여행 이야기 In the Blue 5
백승선 지음 / 쉼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아무대나 펼친 후에 그 페이지만 봐도 좋은 책이 있다. 그런 책을 읽는다는 건 어렸을 때 머리 속으로만 상상하던 세계여행의 방식과 동일하기도 하다. 세계 지도를 펼친 후, 눈을 감고 손가락을 지도의 한 군데를 찍으면 그 나라로 떠나는 것. 상상만 해도 얼마나 짜릿했었던가. 그런 여행은 현실로 오지 못했지만, 그 대신에 그 어떤 페이지에도 설렘이 가득한 책을 만나는 재미를 알았으니 다행이다.

이 책에는 텍스트가 많지 않다. 대신 사진이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제목처럼 붉은 지붕들이 그 어떤 페이지에도 빠지지 않고 이어진다. 귓가에선 메리포핀스가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부르던 노래 'Chim Chim Cheree'가 들리기 시작한다. 비록 직접 보는 것은 아니지만, 설렘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아니 어쩌면 종이를 통해 보고 있기에 더 설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직접 보길 바라는 마음, 내가 당장 달려가지 않아도 이 풍경들은 언제나 나를 기다려 줄 것만 같은 기대감, 그런 것들이 피어오른다. 삶에 열정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면, 무언가에 지쳐있었다면 그 감정들은 더 커질 것이고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히 치유 받을 수 있다.

이런 풍경들 앞에서 말이란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그걸 아는 듯 작가는 말을 충분히 아낀다. 그가 하는 이야기라곤 나라를 구분 짓기 위한 단상들 뿐이니 그 정도면 적당하다. 지붕을 건너 뛰면 다음 나라로 넘어간다. 한 나라에서 머무르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그것이 여행자들에겐 더 낭만적일 수도 있다. 『결혼. 여름』에서 카뮈 역시 '티파사'라는 고장을 언급하며 그 고장에 감탄하기 위하여 하루 낮을 넘도록 머물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짧은 여행은 아쉬움은 남기겠지만, 그 고장의 민낯을 숨김으로써 우리에게 더 큰 환상으로 남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책이 주선하는 짧은 소개팅에도 훗날을 기약하며 너무 아쉬워 하지는 않기로 하자.

예전에 고모는 내게 어떤 특정 사물들만 사진으로 찍어볼 것을 권유했었다. 지붕이라고 해도 동네마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다른 것인데 그런 것을 찍어서 모아놓으면 얼마나 멋있겠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그 땐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느 새 나도 무언가를 찍고 있었다. 그게 이 책 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무심코 이뤄진 반복행위였지만 오늘 그 사진들을 꺼내어 본다. 이 책을 통해선 가보지 못한 곳을 사전답사했지만 내 사진을 통해선 내 지난 시간들을 복습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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