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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이븐 - 에드가 앨런 포 단편집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40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심은경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12년 5월
평점 :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역할이 작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 된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검은 고양이'를 접한 이후 나 역시도 고양이에 대한 극한 공포가 생겼고, 그 공포가 성인이 된 이후까지 이어져 왔다. 고양이를 무서워했을 때의 나는, 내가 가는 길목에 고양이만 있어도 지나치지 못했다. 어린 시절 머리 속을 강력하게 파고 들어 온 하나의 영상은 그것들을 피하게 하기 충분했다. 고양이 두마리와 함께 복작복작 살고 있는 지금 생각하면 웃을 일이긴 하다. 그러나 나의 경험에서도 드러나듯, 어린 시절에 강하게 들어 온 하나의 영상은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기에 충분하고, 텍스트만으로 그런 영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고전이 가진 힘이기도 하다.
에드거 앨런 포를 내세운 영화가 개봉되는 탓인지 영화와 같은 <더 레이븐>이란 제목으로 그의 단편들이 출간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갈까마귀'라는 제목으로 소개 되었고, (책에는 '갈가마귀'로 표기되어 있길래 순간 헷깔렸다. 맞춤법상 '갈까마귀'가 맞다.) 이 책 속에서도 소제목은 '갈까마귀'로 되어 있지만 제목만 이렇게 정해진 듯 하다.
초등학교 때의 충격을 기억에 간직한 채 몇 번이고 '검은 고양이'를 다시 읽어보고 싶었지만 마땅한 기회가 없었던 지라, 영화를 보기 전에 다시 한 번 그의 단편들을 읽어보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 읽는 그의 단편들은 여전히 무서울지, 아니면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일지, 궁금했다.여전히 '검은 고양이'는 무서웠고, 내 기억 속에 다른 충격으로 자리 잡았던 '절름발이 개구리'도 무서웠지만 그것은 감정의 일관성이라기보단 그 때와 다른 방식의 공포였다. 시간이 흐르며, 사회를 경험하며, 내가 알게 된 악에 대한 모습들이 그 단편들과 오버랩 되었다. 세상에는 이유가 없는 악이라는 것이 있다. 즉 분출하는 악에 개연성이나 정당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악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존재한다고 해도 그 이면에는 죄책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악이 강하면 강할 수록 이 죄책감이라는 것은 자기합리화에 의해 뭉개지고 말지만 어떤 각성에 의해 죄책감이 고개를 들면 그건 자기가 표출한 악보다 더 큰 공포로 돌아온다. 그것이 바로 '검은 고양이'였고 그렇기에 이 단편은 무서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 하나의 극한 공포는 '절름발이 개구리'에서 보여지는데, 권력을 가진 자의 지배욕이 피지배자에게 얼마나 큰 적대감과 더불어 복수심을 유발시키는지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단편이 무서운 것은 권력계층의 오만한 지배욕이 비단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보여지고 있기에 피지배계층 사이에서 쌓이고 있을 그 적대감에 오싹해 지는 것이고 그것이 조만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도 한 바탕 발현되지 않겠느냐라는 걱정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이 두 단편이 포함 된 '공포'와 '추리', '환상' 이렇게 세 섹션으로 이뤄져 있다. '추리'와 '환상'은 앞선 '공포'만큼 다가오지 않는데 고전으로 분류되는 '추리'라는 것은 시대가 지나면서 점점 치밀해지고 거대해졌기 때문에 이것이 파격적으로 보이진 않고 '환상' 역시 시대에 포함 된 요소들이 많아지고 과거의 요소들이 사라지면서 더 이상은 환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까닭도 있다. 쌓이고 쌓인 사회의 부산물들에 의해 과거의 이유있는 걸작들이 시들해지는 느낌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정해야 할 것들이다.
그럼에도 고전을 읽는 시간은 늘 축복이다. 과거의 예술들이 아주 많은 시간을 건너 내게 오고있다는 느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이 책으로 다시 한 번 그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영화로 만날 존 쿠삭의 에드거 엘런 포를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