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그들처럼 - 열한 번 치명적 사랑의 기억들과 만나다
박애희 지음 / 서해문집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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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읽는 사랑 이야기는 유난히 더 달달하다. 마음을 시큰하게도 만들었다가 울렁대게도 만든다. 아마 피어나는 생명처럼 사랑 역시 피어나길 기대하는 마음 탓일 것이다. 하지만 남의 사랑 이야기에 크게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니라 이런 책은 여전히 낯 간지러운 도전이다. 특히 실화를 다룬 내용 앞에서는 더더욱 손발이 오그라든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내게는 아직 깊이 다가온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마음이 달큰해질 때면, 말랑말랑한 소설을 찾았더랬다. 드라마나 영화를 한 편 보는 것처럼 가볍게 허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가슴은 더 두근거릴지언정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전제가 있었기에 그렇게 낯 간지럽지도 환타지를 가득 안기지도 않았었다. 그래서 이 책, 내게는 조금 다른 경험이 되었다.

라디오에서 소개 된 사랑이야기라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밤 10시면 라디오를 듣던 날들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DJ들이 하차한 이후로 라디오와의 인연이 좀 끊겨져 버렸지만 그래도 그 시간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그 늦은 밤,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달큰한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가 전하던 누군가의 사연들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전해줬었다. 그리고 하루에 하나씩 들리던 사랑 이야기들,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하면서도 이런 이야기들엔 몸을 쥐어트는 건조함도 있었기에 그 이야기들이 들리면 가족들과 텔레비전을 보다 야한 장면이 나왔을 때의 청소년들처럼 괜히 딴 짓을 하는 척도 했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세상 어딘가에는 정말 뜨거운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뿐이지 나 역시 한 편으론 그런 걸 꿈꾸고 있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단지, 그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결국 들켜버렸다. 이 책에 나온 11개의 사랑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 한 쪽이 간질간질하면서도 알싸한 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세상 어딘가에 이런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어버렸으면서도 가장 슬프고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은 여전했다. 자존감이 내겐 가장 큰 이유인건지, 내 자신을 포기하며 타인을 사랑하는 법 같은 것은 알지 못하는 터에 얼마나 사랑하기에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포기하고 목숨까지 내 놓을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예전에 모딜리아니와 잔느의 작품 전시회에 가서도 몇 번이고 이해해 보려고 한 감성이었지만, 그 때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변한 것이 없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 이전에 나를 내려놓는 삶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클라라 슈만과 브람스, 혹은 존 스트어트 밀과 해리엇 테일러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해한다는 말을 전제로 나는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일방적인 배려는 그 어느 관계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두근대는 사랑이야기는 내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외롭다고, 누군가를 만나야겠다고, 이젠 결혼이라는 것에 긍정적인 생각을 해 봐야겠다고 하면서도 관계의 최우선에는 내가 있었다. 주도권을 쥐는 사람도 나였고, 그것이 휘청거리면 내가 감당할 수 없어했다. 모든 것을 내가 조정할 수 있어야 나는 직성이 풀렸고, 그걸 감당해 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것이 맞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건 상대방의 일방적인 사랑일 뿐이라는 것을 결코 생각지 않았다. 그걸 인정하는 것조차 내 약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책이 내 마음을 무너트린 걸까, 아니면 봄바람 탓일까. 이 모든 것이 내 잘못이었다는 얕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나를 놓지 않고 상대만 자신을 놓기를 바랐던 이기심, 그 이기심은 여전하고 끝이 없어 보인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던가, 그런데도 문득 다른 바람이 든다. 그런 나를 변하게 하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고. 난 여전히 사랑 앞에 이기적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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