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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민낯 - 잡동사니로 보는 유쾌한 사물들의 인류학
김지룡.갈릴레오 SNC 지음 / 애플북스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요즘엔 이런 책들을 읽는 것이 즐겁다. 뭔가 내가 놓치고 살아온 것만 같은 것들을 일깨워 주는 책들 말이다. 이런 책들을 읽고 있자면 주변의 사소한 것들조차도 관찰을 하게 된다. 주위가 산만한 나는 늘 예리하고 진중한 관찰자의 시선을 가지고 싶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하나를 가만히 관찰해본다면 그것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나올텐데, 나의 상상력의 한계는 나의 성격과도 맞닿아 있다. 생각해보면 나의 고양이들만 해도 그렇다. 나는 분명 그들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 행복하고 즐겁지만,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면 잠이 스르르 오고만다. 이렇게 나는 관찰자로서의 재능은 전혀 없지만, 관찰자로서의 나를 단 5분 정도라도 불러 올 수 있는 책을 읽는 능력은 좀 가지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다.
이 책에서는 약 50개의 사물을 다섯개의 카테고리로 구분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은밀한 것들>, <익숙한 것들>, <맛있는 것들>, <신기한 것들>, <재미있는 것들>이 다섯개의 카테고리의 공통점은 '흔한common 것들'이라는 점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그래서 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사물들의 미시사를 보여준다. 이런 사물들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많이 가지고 있다. 우리가 정력제로만 생각해왔던 '비아그라'가 바다표범과 순록의 개체를 유지하는데 일조했던 것이나 포크가 한 때는 신성모독을 하는 물건으로 생각되었다는 이야기, 마요네즈가 이것저것 섞다가 생긴 소스라는 이야기, 콘프레이크가 처음엔 청소년들의 자위를 예방하는 음식으로 선전되었다는 이야기 등은 뒷통수를 확 후려치는 듯한 신선한 자극을 준다. 물론 어떤 이야기는 그 당시의 짧은 의학 수준과 의식 수준 때문에 가능했던 오해이기도 하겠지만, 이런 역사를 가진 물건 앞에서 우린 그들의 모든 것을 안다는 듯 행동했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들 속에는 당연히 물건들이 생겨난 시대의 상황이나 물건이 헤쳐 온 시간의 역사 등도 포함되어 있다. 즉, 한 물건의 미시사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과도 같다. 그 점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도 허투루 흘릴 것이 없다. 한 물건이 보여주는 자신의 역사는 3-4 페이지의 짧은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시간의 흐름을 생각해 볼 때 가볍게 보고 넘길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무엇도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의 흐름의 혜택을 보고 살아오는 것인지 새삼스러운 경외심마저 생겨난다. 그렇기에 이런 책을 읽는 것이 더욱 즐거워지는 것이다. 이런 책이 없었다면 계속 놓치고 살았을 것이 아닌가. 피임약이 핵폭탄과 우주비행선보다도 더 획기적인 발견이라는 사실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