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지아 쿠피 - 폭력의 역사를 뚫고 스스로 태양이 된 여인
파지아 쿠피 지음, 나선숙 옮김 / 애플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그 나라는 내 안에서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 나라의 급변하는 정세처럼, 내 안에서의 모습도 다양히 바뀌어 간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 나라는 그렇게 모습을 바꾸며 어느 것이 실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잘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짐작 해 볼 수 있을 것은 같다. 아니, 내 안에 있던 그 나라의 모습 중 가장 부정적인 이미지, 가장 어둡던 이미지가 거짓이라는 것은 적어도 알 것만 같다. 지금 내 안에서 그 나라의 모습은 찬란한 희망이 깃드는 새벽의 노란 빛이다.
여성에게 큰 지위를 허락하지 않는 것은 비단 그 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아시아는 유럽보다 그 변화를 천천히 이뤄냈고, 하지만 꾸준히 이뤄냈다. 그러니 나는 파지아 쿠피의 발걸음이 시작일 뿐이지 후퇴는 없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경청한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뱉는 수 많은 말 속에는 저런 진정성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물론 요새 쓰이는 진정성이라는 단어의 가벼움은 인정한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무게를 망각한 채 진정성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거짓과 잘못을 덮어버린다. 그 단어가 얼마나 감당하기 힘든 말인 줄을 안다면 우리나라의 각 정치인들도 그렇게 가벼이 그 단어를 쓰지는 못할 것이다.
탈레반 정권 아래에서의 그녀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나는 그녀가 겪은 그 시절의 암울을 「천개의 찬란한 태양」에서 보았고 이슬람 세계의 가부장 제도에 관해서도 「적절한 균형」이나 발리우드의 몇몇 영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이야기가 뜨거웠던 까닭은 그 속을 온전하게 헤쳐나온 한 여자의 강인함이 곳곳에서 배여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것이 시간이 만들어 내는 한 사람의 경험치이자, 한 인생에 대한 존엄성이다. 그래서 여성으로서 그녀에게 박수와 응원과 존경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운명은 답습된다, 그런 말들을 엄마의 운명을 닮아가는 딸들을 보며 우리도 종종 뱉곤하고 그녀 역시 아버지를 일찍 잃었어야 하는 그녀의 딸들을 보며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말이 진실이라면, 그녀의 딸들이 있기에 아프간의 미래는 더 이상 어둡지 않다. 오히려 천천히 아침의 햇살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그녀의 딸들은 엄마의 운명을 닮았을지언정, 그 딸들의 딸은 그런 답습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 딸의 엄마인 '파지아 쿠피'가 한 생을 걸고 바꾸는 세상의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로서의 그녀는 더욱 멋진 존재가 된다.
이런 낙관적인 미래를 보면서도 여전히 아프간에 대한 내 인식 속 한구석은 어둡다. 그 어둠은 30년간 내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해 왔기 때문에 이런 인식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이름은 기억될 것이다. 앞으로 그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암살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질지, 그녀가 아프간의 새 지도자로 임명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희망의 소식이 전해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기억 할 것이다. 그래서 그 어둠 속에서도 늘 한 줄기 희망을 기대할 것이다. '파지아 쿠피' 이 여자는 이렇게 멋진 일들을 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