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 농촌총각의 투르크 원정기
안효원 지음 / 이야기쟁이낙타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책 속 글을 읽다보면 저자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상대의 말씨라던지 사소한 버릇들이 그려지는 것이다. 슬그머니 웃기도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하고, 때론 진지한 표정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상대의 이야기가 끝날 때쯤 책의 뒷면은 덮히고 꼴깍 침을 삼켜본다. 너무 수다를 오래 떨면 목이 마르듯 마른 침이 넘어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좋은 대화를 나누고 난 후에는 뿌듯하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참 반갑고 고마운 일임에 틀림없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여행 에세이에 수록 되어있는 그 흔한 지도도,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주지 않는 친절하지 못한 여행자는 자신의 이야기와 감성을 친절하게 풀어 놓음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 했던 것들이 배제 된 여행도 사람과 이야기만 있다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낯선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낯선 길을 걷는다는 것은 두려움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두려움은 즐길 수 있는 무엇이 되고 그 때 깨닫는 것이다. 여행은 남의 삶에 잠시 들어가는 것이며 나의 삶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p.235) 자신과 전혀 만날 일이 없을 것 같던 먼 곳의 타인과 나 사이에 생기는 삶이라는 교집합 속에서 우린 지나온 시간과 지금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함께 할 사람들에게 고마워지는 수 밖에 없다. 그 마음을 알기에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함께 걸으며 많은 대화를 함께 하고 많은 공감을 나눈 것 같은 느낌은 강렬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터키라는 나라를 생각한다. 형제의 나라라 불리며 이상하리만치 친밀하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멀리 떨어진 나라. 왜 하필이면 터키였을까. 갑자기 찾아 온 병과 힘들게 싸운 후 찾은 곳이 그곳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까. '그냥' 이라고 저자는 말할 것 같고 난 그럴 줄 알았다며 웃을 것 같다. 삶이 계획대로 진행 된다면 여행의 매력도 반감되고 말 것이다. 삶은 늘 예상치 못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고, 우리의 여행도 마찬가지다. 사전 준비가 아무리 철저하다 해도 여행은 단 한 번도 계획대로 우리를 움직이게 허락하지 않는다. 마치 넌 삶을 배우러 길을 떠난 것이라고 말하듯 원치 않는 우연과 시련들을 툭툭 던져준다. 그렇기에 계산 된 여행보다는 계산되지 않은 여행이 더 즐거울 수 밖에 없다.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럴 줄 알았다는 긍정의 힘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갑자기 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오고 그 때 떠날 준비를 하고 그렇게 걷다 보면 '그냥' 시작 된 여행은 단순한 '그냥'이 아닌 단순한 '열정' 으로 변해 버린다. 이 책 속에도 그런 열정들이 피어 오른다. 삶에 대한 열정,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한 열정, 나 스스로에 대한 열정. 이것들을 길에서 배운 저자의 마음 속에 고마움이 피어나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때론 삶이 우리를 배신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원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자꾸 날 밀어내는 것 같고, 나에게 일어나지 않아도 좋을 것만 같은 일들이 하필 나에게 일어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어둠이 자꾸 날 덮치는 것 같은 기분. 하지만 분명 그런 시간은 지나간다. 그리고 그런 시간 뒤에는 더 괜찮은 날과, 더 괜찮은 나와, 더 괜찮은 인연들이 남는다. 그러나 그런 시간들이 찾아와도 우린 자주 고맙다는 표현을 잊고 만다. 이 책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여행하는 법이 아니다. 단지 우리의 지난 시간에 고맙다고 말하는 법, 지금 우리의 시간에 고맙다고 말하는 법,. 그리고 찾아 올 우리 미래에 고맙다고 말하는 법, 이 쉽고도 어려운 일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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