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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최근 어떤 기업들이 신입사원 모집에 특정 학교의 학생들의 지원을 받지 않겠다는 발표를 했다. 학교 측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학생들의 움직임이 없는 것을 비난하는 일격이었다. 그 발표에 힘입어 여러 논란이 확산 되고 있고 난 이 책을 떠올렸다. 누구나 가슴에 울분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 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양심적인 움직임을 갖기엔 거대한 힘의 보복이 두렵지 않을 수가 없다. 그 힘에 복종하는 것은 결국 나의 미래를 보증해 주는 일종의 백주수표와도 같다. 그래서 쉽게 반기를 들 수가 없다. 잘못 된 행위임을 몰라서가 아니라 잘못 된 행위임을 알지만, 그것에 반하는 것이 내게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너무도 쉽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에 눈을 감고 모르쇠로 일관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엔 반대 쪽에서 강한 압박이 들어온 것이다. 왜 그렇게 안이한 사람들이냐고 비난을 하며 너 같은 안이한 태도는 우리도 필요치 않다고 한다. 우린 과연 이런 양 쪽의 억압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모두의 가슴 속에는 시대의 고통에 의한 울분이 가득찬다. 개인적인 울분이 아닌 시대가 만들어 놓은 풀 수 없는 순환고리는 50년이 지나도록 전 세계적으로 계속 되어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필립 로스가 그려내는 청춘의 격정은 놀랍도록 현실적이다. 70이 넘은 노작가가 그려 낸 이야기라곤 믿을 수 없는 청춘들의 강렬한 자화상이다. 한국에서 비행기로도 한참을 가야 하는 미국에 있는 한 청년이 한국전쟁이라는 시대 상황에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떤 절망을 해야 하는지는 지금의 청년들의 모습과도 너무 닮아있다. 시대는 하나의 방향, 하나의 지위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전쟁에 참전해야 하는 젊은이였으며 한 가정의 기대를 받는 아들이었고 한 여자를 지키고 싶은 남성이었다. 그 지위들은 때때로 무참히 충돌을 해서 그 어떤 선택도 바람직하지 않게 개인을 옥죄어 온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은 결국 개인의 울분이 되고 한 개인의 역사를 통채로 뒤흔들어 버린다. 어디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버리는 주인공 마커스의 모습은 마치 그 어떤 현실도 도피하고 싶은 그 당시의, 그리고 젊은이들의 표상같아 보인다. 결국 그의 끝은 참혹하다. 불안한 선택이 결국 불안한 현실과 갈 수 없는 미래를 안긴 것이다.
과거의 이야기들이 현실과 너무도 닮아있을 때 우린 또 한 번 좌절해야 한다. 바뀌지 않는 사회에 우리가 종속되어 있고 앞으로 우리가 낳을 아이들이 종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고통이고 비극이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가 미래에 희망을 거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렇게 시간이 흘러도 지옥같은 모습들은 변화되지 않는데 무엇이 우리의 상상 속에 미래의 푸른 빛을 주입시키는 것일까.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 나왔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봄이 되면 종달새는 울지 않을 수 없다.' 그 말이 맞다면, 더디게도 봄은 오고 있고 결국은 올 것이란 말인가? 이렇게 많은 청춘들이 보이지 않는 울분에 휩싸여 들리지 않는 울음을 그렇게도 세차게 울어대는 것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