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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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책을 볼 때면 괜히 속상해 지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좋은 책들이 꽁꽁 숨어있는 건지. 허먼 멜빌이라면 떠올리는 책은 '모비딕' 뿐인 채로 지금껏 살아왔고 누군가 이렇게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면 난 그렇게 알고 계속 살아갔을 것에 대해.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제라도 알게 된 것에 대한 안도감이랄까.

     바틀비는 의심할 여지 없이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고 중얼거렸고, 그 다음 날 아침 출근을 위해 눈을 부비며 '출근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고 상사가 일을 시킬 때마다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입 안에서 오물거렸다. 사회에 어울릴 수 없는 그의 무능함을 한탄하면서도 그의 지조있는 그 태도에 전염 되어 가는 나는 우스웠다.

     그리고 문득 찾아오는 왜? 라는 의문. 책은 끝까지 바틀비가 '하지 않는 편을 택한'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다 독자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말을 따라하게 되는 순간 '왜?' 라는 의문은 찾아온다. 왜 그는 하지 않는 편을 택해야 했고 왜 나는 이 말을 따라하고 있는지. 그 의문에 대한 약간의 실마리라도 생각하게 된다면, 이 책이 주는 수려한 매력은 빛이 난다.

       내가 가진 능력보다 월급이 형편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절대 이의를 제기 하지 않으려는 모습, 그들이 나의 진면목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공적'인 관계로 묶인 이들에게 무슨 기대를 할까 생각하며 불만을 갖지 못하는 모습,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당장의 안전 때문에 거부하지 않는 모습, 이 모든 모습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에 바틀비의 모습은 한탄스러우면서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는 우리가 하지 않는 그 모든 무의식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작은 사무실 한 구석자리에 앉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꾸준히 해 나가지만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일엔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신념, 그리고 이 일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일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자신의 동선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란 지금 우리가 타의적으로 자의적으로 더 크게는 사회가 돌아가는 원칙이라는 큰 힘에 의해 억압 당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바틀비는 거부한다. 하지만 거부한다는 그를 순순히 용납할 세계가 아닌 이 곳에서 그는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거부권을 실행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심금을 울리게 될 수 밖에 없다.

     저자인 허먼멜빌에 대해 생각한다. 글을 쓰고 싶었고, 글을 쓰며 살고 싶었지만 그의 편이 아니었던 세계 탓에 힘이 들었고 단 몇 푼이라도 벌기 위해 짧은 글이라도 기계적으로 써 냈을 그의 모습 안에는 바틀비를 동경하는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그 당시의 허먼멜빌과 다를 바가 없음은 물론이다. 그러기에 바틀비는 그 시대나 지금이나 상징적인 인물이다. 우리의 해소할 수 없는 욕망을 대신 실현해 주는 그런 인물이기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나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가 아닌 '하지 않는 편을 택하고 싶다'를. 그의 말처럼 그렇게 단호하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하나 뿐이다. '바틀비를 폄하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 이런 좋은 책들을 모르고 살아가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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