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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미스테리 소설에 영 취미가 없는 내가, 어찌된 일인지 연속해서 미스테리 소설을 읽고 있다. 책을 읽고 잠을 자면, 책 속 기운이 꿈까지 전해 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는 덕분에 좋지 않은 꿈자리를 갖고 만다. 어젯 밤, 바람이 불고 번개는 치고 난 외딴 섬에 홀로 고립 되어 있었다. 무섭진 않았지만 섬뜩한 기분이 온 몸을 감쌌고 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섬의 한 가운데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왜 여기서 이렇게 가만히 있는 거지? 난 뭘 기다리는 거지?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난 가만히 생각만 했던 것 같다. 현실 속 게으름 병은 꿈 속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작가가 국내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소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를 난 읽지 않았다. 쏟아지는 호평 속에서도 시큰둥했던 것은 추리소설이기 때문도 했고, 표지가 내 취향이 아니라는 단순한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시간은 취향도 변하게 하는 까닭에 몇몇 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그 중 몇몇에 열광했고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쾌감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추리 소설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그 열정을 쉬이 가시지 못하는 것이며, 그런 사람 중 몇몇을 다시 추리 소설 작가로 만들어 내는 것일까. 그 물고 물리는 순환이 생겨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악에 대한 인간의 본성과 그것을 찾아 처단하는 영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원하게 되기 때문일까?
이 책은 그런 물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조금이나마 그 답을 알려줄 수 있을 듯 하다. 고전 추리 소설의 오마주 형태인 이 책 속 단편들을 살펴보면, 작가는 기존의 틀을 비꼬면서도 그것을 이어가고 싶은 면모를 보여준다. 작가가 사건의 배경으로 사용하는 밀실살인 같은 경우는 조금 식상할 수도 있는 고전 추리물의 단골 소재이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전혀 색다른 모습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다. 표제작이기도 한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독자를 아주 당혹케 한다.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춘 기존의 '명탐정'이라는 틀에 박힌 인물을 살짝 비꼬아, 완벽하지만 돈을 밝히는 인물로 희화화 한다. 한 발 더 나가, 그 명탐정은 살해당한다. 기존 어떤 추리 소설에서 명탐정이 극 중간에 죽는단 말인가. 하지만 거기에서 밝혀지는 전말과 반전은 황당하면서도 수긍을 하게 만든다. 자신이 열렬히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순수를 지키고 싶은 마음. 어쩌면 작가가 밀실살인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생존자, 1명>에서는 추리소설도 시대상과 사회상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야비해지고 이기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죽음이 다가온 순간, 자신이 지켜온 믿음이나 신념 따위도 아무렇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이 본성이며 그렇기에 악은 늘 우리 주변에 있음이 몇 번의 반전과 더불어 독자를 서늘하게 만든다.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봤음직한 장면들이지만 상상을 자극시키며 우리 곁에 붙어 있는 듯한 현실감은 그런 기시감을 무력하게 한다. 마지막 단편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 역시 뛰어나다. 작가의 극한 추리와 서늘한 공포를 원했던 독자들에겐 지루하고 실망스러운 것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고전 추리물에 대한 오마주 형식을 빌려 작가의 추리물에 대한 애정이 아주 듬뿍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사건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손금에도 겁이 많은 것이 드러날 정도로 겁쟁이인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섬뜩했다. 창 밖은 어두웠고, 난 실내에 정적이 흐르는 것을 선호하기에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고, 고양이들의 사박거리는 발소리만 간간히 들렸을 뿐이다. 고개를 들었을 때, 허공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내 고양이 두마리가 보였다.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 눈을 돌리는 순간 등에서 식은 땀이 살짝 솟아났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평화로운 이런 시간에도 공포란 찾아오는가. 그것은 다름아닌, 악이 우리 주변에 늘상 존재한다는 믿기 싫어도 믿을 수 밖에 없는 끔찍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이런 책들이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도 현실과 첨예하게 붙어 가상의 공포를 만들어내는 체험적 환상을 불러 일으켜 주며 그런 현실을 일깨우기 때문일 것이다.